난 네게 반했어

기타라도 배워뒀으면 나중에 가족끼리 합주라도 가능했을 거 같은데

by 추억바라기
우리 아들은 드럼을 친다. 아니 드럼을 쳤었다.


아들 초등학교 2학년 때, 보통의 엄마들처럼 아내도 아이에게 여러 가지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어 했다. 그런 생각의 실천 중 하나로 아내는 아이에게 악기 하나쯤은 배우게 하고 싶어 했고, 아이들 의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내는 늘 그렇듯이 아이에게 악기를 배워보지 않겠냐는 의견을 물어봤다. 아들은 선 듯 싫다는 소리는 안 했고, 아내는 일반적으로 접근이 쉬웠던 피아노나 기타를 배워보는 것을 권해 보았다. 9살 아들에게는 크게 매력은 없었겠지만 그렇다고 크게 싫지도 않은 듯 아이는 군소리 없이 아내의 손을 잡고 집 근처에 있는 음악학원을 찾았다.


막상 학원을 찾아 원장 선생님과 상담하던 아내는 다른 곳에 관심을 갖는 아들의 시선이 눈에 들어왔고, 아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보니 드럼이 놓여있는 연습실이었다. 아이의 이런 관심을 존중해줄 겸 아이에게 드럼을 한 번 쳐보도록 했고, 이 날 이후로 꽤 긴 시간을 아이는 다른 악기가 아닌 자신이 선택한 드럼을 배우며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매일 다니는 학원도 아닌 데다가 일반 가정집에 들일 수 있는 악기도 아닌지라 난 아이의 드럼 치는 모습을 좀처럼 감상할 기회가 없었다. 그나마 1년에 한 번 정도 학원에서 가족들을 초청해 아이들이 1년을 갈고닦은 실력을 선보일 기회가 있어서 아들의 드럼 치는 모습을 연례행사로 감상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저학년 때에는 우리가 들어서 '와우'라는 탄성을 자아낼만한 연주는 아니었고, 그냥 내 아들이니까 열심히 방청하는 정도였지 싶다.


하지만, 역시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라고 하는 속담이 있듯이 1주일에 한 번씩 다니는 드럼 학원이라도 수년이 지나니 그 실력은 눈에 띄게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본인이 즐기다 보니 이 또한 어느 정도 선한 영향력을 주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눈에 띄게 연주 실력이 늘더니 그 해 연주회 때 영화 국가대표 OST였던 러브홀릭스의 'Butterfly'을 선보였는데 오랜만에 본 아들의 드럼 실력에 깜짝 놀랐고, 그 연주에 흠뻑 취했었다.


이렇게 1년이 더 지나 6학년 때에는 우리 가족뿐만이 아니라 아들의 초등학교 5학년 때 은사님도 자리를 함께해서 빛내 주셨고, 이 날의 선곡은 지금도 내겐 어느 연주보다 멋졌던 YB의 '나는 나비'라는 곡이었다. 촬영을 하면서도 아들의 퍼포먼스에 난 그 순간만큼은 아들의 팬이었고, 아이의 드럼 치는 수줍음을 감춘 열정적인 모습에 '찐' 박수를 보냈다.


막상 아들이 드럼을 치는 모습을 보니 예전 기타를 배우려고, 친구 기타로 코드 몇 개 잡는 법을 배우고 서툰 실력으로 로망스(Romance)를 연주하던 30년 전 내 모습이 그 순간에 떠올랐다. 몇 개 코드만으로 로망스(Romance) 연주가 가능했던 난 기타 입문을 앞두고 어려운 코드를 잡아보며 어려움을 깨닫고 쉽게 포기해 버렸다. 그때 제대로 배워뒀으면 아들과도 합주라는 걸 해봤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밤이었다. 이렇게 쉽게 포기한 나를 생각해보면 아들의 꾸준함이 너무 대견해 보였고, 이렇게 계속 드럼 연주하는 모습을 봤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봤다.


이런 내 바람은 뜻대로 되지 않았고, 중학교 1학년 때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오면서 아들의 드럼 연주는 막을 내렸고, 가끔 집 근처에 있는 드럼 자유 연습실에 몇 번 다니는 모습을 본 게 전부였다. 이제 입시에 쫓기는 고등학생이 되고 났더니 좀처럼 여유가 없어서 그런지 드럼 치러 다니는 모습은 사라졌고, 내게는 초등학교 5, 6학년 때 연주했던 영상만 남게 되었다. 나중에 아들이 어른이 되어서라도 다시 드럼 연주하는 모습을 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아들, 그때엔 너 드럼 연주하는 모습에 아빠가 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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