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만 틀어 생각을 바꿨다

동물농장을 보고 알게 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

by 추억바라기
벌써 3주째다.

지친 몸과 마음이 1주일에 이틀의 휴일로는 회복이 되지 않는다.


하는 일이 힘들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힘든 일 때문에 짜증이 나는 건지 좀처럼 텐션이 끓어오르지 않는다. 하긴 내 나이 이제 곧 반백살 끓어 올릴 텐션이 있다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할까 싶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도 하기 싫었던 업무, 그중에서도 가장 손에 잡히지 않았던 게 내 업무 전임자들이 작성했던 문서의 수정 보완해야 하는 일이 싫었다. 너무 하기 싫어서 그랬던가 방향도 잡히지 않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내내 뭘 쓰고 있는 건지 조차 헷갈릴 때가 많았다. 요청했던 시일을 지나 차일피일 변명을 만들어 미루고 미루던 난 이제 벼랑 끝에 선 심정이다.


모든 업무들이 기한이라는 것이 존재하듯이 지금 내가 하는 문서도 그 기한의 범주에 걸쳐있다. 정확히는 혼자 일을 하다 보니 내가 그 기한의 범주 끝에 걸쳐 놓았다. 오늘도 주고받는 메일 속에서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도 자꾸 쓰이는 그 문서 때문에 종일 자리를 지켰다. 능률은 오르지 않고, 차오르는 건 짜증과 불만만 가득이다.


금주 중에 작성해서 외부에 보내야 하는 문서이기에 금요일이 오는 하루하루가 이렇게 부담되고, 싫기는 처음 있는 일인 듯하다. 지난 한 주 지친 몸이라도 쉬게 하기 위해 월요일 하루 휴가를 썼다. 하지만 휴가를 낸 월요일 내내 몸은 편할지언정 그 마음만은 오롯이 편히 뉘이지 못한 듯했다. 말 그대로 화요일이 걱정되어서 편치 않았다.


화요일 아침에 출근을 하고 모니터를 켜면서도 연신 오늘 하루 문서와 싸울 생각에 커피까지 더 쓰게 느껴졌다. 하지만 난 커피 한 모금을 입에 물고 잠시 머릿속에 스쳐간 다른 생각을 떠올려 봤다. 일요일 아침 혼자 글을 쓰다 내 시선을 끌었던 TV 프로그램이 있었고, 그 프로그램은 우리 주변의 다양한 동물 가족들 이야기를 소개하는 '동물 농장'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이야기는 이랬다.


산책을 무척 좋아하는 반려견 웰시코기와 견주의 이야기였다. 그 반려견은 산책만 나갔다 하면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섯 시간은 기본으로 산책을 즐겼다. 매번 이렇게 산책하는 건 견주에게는 무척이나 곤욕이었지만 적당히 산책하다 들어가려고 하면 이 개는 산책을 계속하기 위해서인지 견주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버티거나 그 자리에 누워버리기 일쑤였다. 처음에는 어르고 달래도 보고, 그래도 듣질 않아 개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까지 생겼다. 매번 이런 행동이 있을 때마다 무거운 반려견을 안고 집에 오기에는 산책 나온 길이 멀기도 했지만 견주가 60대의 여성이어서 더 힘에 부쳐했다.


하지만 이 문제의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했다. 집에 가려던 견주에게 대항해 버티던 개의 목줄을 견주는 전문가의 지시대로 잡고 있던 손은 그대로 하고 자신의 몸만 개가 가고자 하는 반대방향 즉 집으로 가는 방향으로 돌리고 끌었다. 그랬더니 그렇게 고집을 피우며 버티던 개가 의외로 쉽게 견주가 이끄는 방향대로 따라오는 것이었다. 몇 달을 고생스럽게 산책을 나섰던 견주로서는 전문가의 조언 한마디로 매직 같은 일을 경험했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까지 쓰기 싫어서 미뤄뒀던 문서를 다시 열어보고 나도 전문가적인 시선으로 매직을 생각해봤지만, TV에서 본 것 같은 믿기지 않는 매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시작하지 않은 문서를 손보려던 답답한 생각에서는 벗어나 처음부터 내가 다시 쓸 생각으로 문서 쓰기를 시작했더니 마음 가득 채워져 있었던 짜증과 불만은 금세 줄어든 것 같았다. 가끔은 풀리지 않은 어려운 문제도 아주 사소한 생각의 차이만으로 기가 막힌 해결방안을 내놓을 때가 있다. 어렵게 꼬여있던 문제일수록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생각의 전환만으로 세상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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