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 여자에게 매번 당한다

매번 당하면서도 행복한 건 왜일까요

by 추억바라기
난 집에서 우리 집 두 여자들에게 매번 당한다. 아니 당해준다.


딸아이는 어릴 적부터 아들과는 다르게 자기가 맘에 들지 않는 옷이면 매번 옷 입힐 때마다 애를 먹이고는 했었다. 어렸을 적에는 유독 푸른색 계열의 옷이나 검은색 계열의 옷을 싫어했고, 일부러 물려주려고 했던 건 아니었지만 큰 아이에겐 워낙 스타일이 좋은 옷들이 많았고, 옷도 깨끗하게 입었던 터라 딸아이에게 아들의 옷을 종종 입혔다. 물론 개중에는 딸아이도 별 불만 없이 입던 옷도 있지만 아무래도 남자아이 옷이라 검은색 옷들이 많았고, 우리가 봤을 때는 보이시하고 잘 어울리는데도 왜 그렇게도 싫어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던 딸아이가 요즘은 자기 옷을 인터넷을 보고 직접 고르고, 아내에게 결재해달라고 조르곤 한다. 아내가 봤을 때는 딸아이의 취향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옷이 천지였다. 아무리 다들 '개취(개인의 취향)'라고 하지만 아이와 정말 어울리지 않거나 너무 튀는 옷들이 있을 때면 아내는 당연히 브레이크를 걸곤 했다. 가끔 인터넷에서 구매한 옷들이 잘 맞지 않고, 어울리지 않을 때면 아내는 엄마 말을 안 듣고 인터넷에서 구매하니 그런 거 아니냐고 아이에게 핀잔을 준다. 이렇게 아내와 딸이 말로 티격태격할 때만큼은 난 아내와 다른 생각을 하곤 한다.


딸아이가 아내랑 티격태격할 정도로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


아내와 난 아이들을 키우며 남들과 조금은 다른 양육을 고집한다. 사람들의 기본권인 '의식주' 중에 유독 '의'에 대한 생각은 더 철저하게 남들과 다름을 고집한다. 특히 아내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옷이나 신발 등은 꼭 아내의 통장에서 지출을 하지만 아이들이 원해서 사는 옷이나 신발, 특히 꼭 필요하지는 않아 보이는데 옷을 구매할 때면 아내의 통장에서 지출은 일절 없던가 일부분을 아이에게 부담하라고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두 아이 모두 이렇게 키워서 그런가 이런 지출 방식을 아이들도 크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내의 주변 분들이 이런 방식을 아이들이 잘 따라주는걸 더 신기해한다.

휴가를 보내고 있었던 평일 오후 아내와 난 아이의 옷 투정에 아이를 데리고 백화점에 갔다. 딸아이의 바지를 사기 위해서 백화점 내에 아이가 입을만한 옷 매장을 돌아다녔고, 여느 때처럼 아이와 아내는 옷을 고르고, 의견을 교환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는 옷이 있었고, 아내는 그 매장에서 이 옷, 저 옷을 고르며 딸아이에게 입어보라고 권했다. 이렇게 고른 게 바지 두 벌이었고, 계산을 하기 위해 바지 두 벌을 안고 아내는 점원이 있는 계산대로 갔다. 아내는 주변에 '세일' 푯말이 많이 서있는 걸 보고 매장 직원에게 말했다.


"혹시 이 바지들은 세일 안 하나요?" 아내는 약간의 기대를 갖고 직원에게 물었다.

"잠시만요. 음, 계산하려는 상품 두 개 모두 세일 상품이 아니네요." 세일 여부를 위해 모니터를 보며 확인하던 직원분이 조금은 안타까워하는 표정으로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는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딸아이와 본인이 마음에 드는 옷을 찾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계산을 요청했다.


"손님, 바지 두 개 해서 88,000원입니다. 일시불로 해드릴까요?"

"네."

아내는 생각보다 많이 나온 바지 가격을 보며 딸아이에게 당연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지수야, 이 멜빵바지는 엄마가 사주는 거니까 돈 안 줘도 되는데. 이 반바지는 네 돈으로 하는 거니까 집에 가서 엄마한테 돈 줘."

"엥? 엄마가 둘 다 사주는 거 아니야? 반바지가 얼만데?" 딸아이는 아내의 태도에 조금 당황한 말투로 반바지의 가격을 물었다.

"응, 39,000원. 집에 가서 줘. 알았지?"

"너무 비싸. 나 안 살래." 딸아이는 이내 자신의 지출 금액이 크다고 생각했는지 맘에 들던 바지를 안 산다고 투덜거렸고, 난 한 시간이 넘게 둘러보고 맘에 드는 옷을 고른 딸아이가 딱해서 아내와 딸아이의 대화에 껴서 해결책을 제시했다.


"지수야, 아빠가 2만 원 줄테니까 그냥 사자. 어차피 너 반바지 하나 더 사려고 했잖아." 난 내 용돈에서 나갈 2만 원이 조금은 아쉬웠지만 딸아이가 입었을 때 잘 어울렸던 옷이라 아이가 잘 입으면 예쁠 거라는 생각에 덥석 '떡밥'을 물었다.

"그래, 아빠 고마워." 아이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내가 문 '떡밥'을 건져 올렸다. 난 그 순간 아차 '당했다'를 속으로 외쳤지만 이미 결정이 난 터라 그냥 좋아하는 딸아이를 보며 그 아쉬움도 잊어버렸다. 이렇게 5층에서 딸아이 바지를 사고 1층으로 내려와 백화점을 빠져나가려던 난 딸아이와 아내 때문에 다시 멈춰 섰고, 어느새 둘은 가방 하나를 서로 매어보며 어떠냐고 서로에게 물어보고 있었다.


'헐, 여자들이란. 아까 옷을 사주네, 못 사주네 하던 게 조금 전인데 금세 다시 가방 보고 좋네, 맘에 드네 그러고 있다니'


난 그냥 아이쇼핑으로 끝날 줄 알고 옆에 서서 두 사람이 나서길 기대했지만 이야기의 전개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지수야, 너 이 가방 어때? 한 번 매 봐."

"엄마, 괜찮은 거 같아. 엄마한테도 어울리겠다."

"그니까, 안 그래도 너 잠깐씩 친구 만나러 외출하고 그럴 때 작은 가방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우리 이 가방 둘이 반반씩 내서 하나 사자. 너도 매고, 나도 매고 괜찮을 거 같은데 어때?"

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고, 아내는 그 가방이 맘에 들었는지 사겠다는 말은 하지 않고 들었던 가방을 쉽게 놓지 못했다. 그러던 아내는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나를 한번 바라봤고, 난 아내가 변변한 가방 없이 요즘 외출하는 모습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 또 한 번의 '미끼'를 덥석 물고 말았다.


"영희 씨, 그 가방 그냥 사. 내가 내 용돈으로 사줄게. 얼마야, 얼마면 돼?"

"그래? 난 철수 씨가 사주면 고맙지. 비싸지도 않아. 여보 고마워.(콧소리까지 내며)"

또 한 번의 '아차'하는 순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번엔 아내에게 당했다. 그것도 기분 좋게. 사실 오늘 이렇게 딸아이와 아내에게 지출한 돈은 둘이 합쳐 4만 원이 전부다. 하지만 이 4만 원의 지출로 아내와 딸아이 그리고 내가 모두 행복해졌으니 그걸로 충분히 보상이 됐다. 난 이렇게 매번 알면서 당해준다. 행복이라는 이름의 갈취를. 그래서 난 더 행복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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