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대가 함께 한 이틀간의 여름 방학

아내의 현명한 선택이 가져온 아버지와 아들과의 소중했던 시간

by 추억바라기
오늘은 사람 사는 집처럼 그릇이 쌓여 있어서 좋네.


어머니 사십구재를 치르고 아버지를 뵙는 건 6개월 만이었다.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그 사이 아버지는 어머니를 보낸 슬픔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나신 것 같아 보였다. 혼자 드시는 식사도, 홀로 주무시는 잠자리도 항상 마음으로는 걱정했지만 정작 자주 찾아뵙지 못한 스스로를 향한 자책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아버지를 찾아뵙게 등 떠민 아내와 선뜻 따라나선 아들에게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든다.

이야기의 시작은 아버지를 뵈러 오기 일주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내는 딸아이의 방학을 맞아 처제와 시간을 맞춰 처갓집에 다녀올 계획을 세웠다. 예전 같으면 아들까지 포함해 우리 네 식구가 출동하는 계획이었겠지만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의 시간을 좀처럼 빼기가 어려워서 아들을 내게 맡기고, 딸아이와 둘이서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처갓집을 다녀오기 위해 준비하던 아내가 갑자기 내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철수 씨, 이번 주에 별일 없으면 아빠한테 다녀오는 거 어때?"
갑작스러웠지만 내겐 생각지도 못했던 제안이었고 이런 기특한 아내의 생각이 너무 고마워서 난 바로 답했다.
"그럴까? 안 그래도 코로나 때문에 너무 찾아뵙지 못해서 한 번 다녀오려고는 했었는데. 근데 민수 혼자 괜찮을까?"
아내는 내 얘기를 듣고, 아들을 불러 주말 계획에 대해서 물어봤다.
"민수야, 이번 주말 학원도 방학이니까 아빠랑 할아버지 뵈러 다녀오는 거 어때? 급한 일 없으면."
"이번 주말? 음, 알았어. 아빠 같이 가."
아들은 습관적으로 질문을 반복하며 말하기는 했지만 다행히 같이 가겠다고 대답했다.

사실 아내와 딸아이도 함께 가고 싶어 했지만 미리 처가에 얘기해놓아서 목을 빼고 기다릴 장모님과 장인어른을 생각하면 처가 방문을 취소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나와 아들은 아버지를 뵈러 ktx를 타고 포항을 내려갔고, 너무도 반가워하는 아버지를 뵙고는 정말 잘 내려왔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이렇게 포항을 찾은 우린 아버지, 나 그리고 아들까지 삼대가 한우 맛집으로 유명한 식당에서 즐겁게 저녁 식사를 했고, 밤에는 맥주잔을 기울이며 옛날이야기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집 곳곳에 어머니의 손때가 묻어있는 건 변함없었지만 이젠 그곳은 아버지가 홀로 우릴 기다리는 고향집으로 바뀌었다. 어머니 생전에는 내가 부엌에 들어가는 걸 어머니가 싫어해서였는지 아버지께서는 내게 뭘 하라는 말은 좀처럼 안 하셨는데 오늘 아침엔 웬일로 내게 된장찌개를 끓이라고 하셨다. 식사 후에도 식사 설거지와 뒤처리는 내가 한다고 말하며 아버지는 앉아서 쉬시라고 했더니 이젠 조금은 편한 얼굴로 '그러마'라고 하셨다. 그렇게 설거지와 뒤처리를 아들과 난 아버지를 대신해 서둘러 마무리했다. 이렇게 정리한 주방을 잠시 일어나 설거지를 해놓은 그릇을 조용히 보시던 아버지가 내게 한마디를 하셨는데 그 말이 내겐 아버지의 외로움처럼 쓸쓸하게 들렸다.

"오늘은 사람 사는 집처럼 그릇이 쌓여있어서 좋네. 매일 혼자 먹으니 설거지하고 난 그릇이라고 해봤자 밥공기, 국그릇 하나가 다인데."

우린 점심은 밖에서 냉면을 먹고, 어머니를 모신 납골당에 갔다가 포항역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아버지 차를 타고 이동하며 간 식당은 낯설지가 않았고, 식당 간판을 보며 어머니 생전에 함께 오려다 명절 휴무로 영업을 하지 않았던 그 '코다리 냉면' 식당인 걸 알았다. 그때엔 먹지 못했던 그 냉면을 오늘은 아버지를 모시고 아들과 함께 오게 됐다. 식사 내내 어머니가 생각났고, 바로 엊그제 같았던 그날이 그리웠다. 이렇게 식사를 마치고. 주문지를 잡으려고 했던 내손에서 아버지는 주문지를 가져갔다. 마지막 냉면 계산까지 아버지가 하신다고 고집을 피우셔서 난 아버지의 주머니 사정이 걱정되었다.

"아버지, 이번에 우리가 내려와서 돈을 너무 많이 쓰신 거 아니에요?"
"내가 이 나이에 돈 벌면 어디 쓸데가 있냐? 이렇게 자식 하고, 손주 왔을 때 쓰는 게 내 기쁨이고, 행복이지. 그리고, 여유 있으니 걱정 말거라."


이렇게 점심을 먹고 어머니를 모신 납골당에 가서 인사까지 드리고 포항역으로 와 KTX에 몸을 실었다. 난 아들과 지금 서울역으로 가는 KTX를 타고 가는 길에서 글을 쓰고 있다. 이틀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버지에겐 그간 쌓였던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방전된 에너지를 우리와 함께한 시간으로 충전했고, 나도 전화로만 '건강하다', '잘 지낸다' 하는 말만 듣다가 이렇게 직접 눈으로 아버지를 뵙고 가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아버지, 앞으로도 건강하시고. 오랫동안 저희 곁에 계셔주세요. 앞으로는 조금 더 자주 찾아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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