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생필품이 아니다

차 생기면 운전은 영희 씨께 양보할게요

by 추억바라기
"아빠, 난 스무 살만 넘으면 면허 딸 거야."


결혼 19년, 우리 집에는 남들 집에 다 있는 그 흔한 차가 없다. 4인 가족의 구성원으로 이뤄진 집이라면 차 한 대 정도는 있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그 보통의 그 흔한 모습이 우리 집에서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남들보다 돈을 많이 버는 고액 연봉자는 아니지만 21년 동안 쉼 없이 직장 생활을 하며 난 중상위 정도의 임금을 받는다. 여유까지는 아니어도 없어서 죽을 정도의 샐러리맨은 아니다. 서울은 아니지만 경기도에 몇 년 전에 내 집 마련도 했고, 마음만 먹으면 중고차 한 대는 살 수 있는 여유가 된다.


하지만 난 차를 사지 않는다. 나에게는 차에 대한 욕심은 전혀 없다. 물론 운전을 못하는 문제도 있지만 운전을 하고 싶지도 않다. 많은 남자들이 운전대를 잡고 싶어서 스무 살만 되면 면허 시험장을 기웃거리며 운전면허 따는 것에 몰두했던 것과 비슷하게 나도 젊었을 때는 그 운전이라는 것을 빨리 배워서 차를 몰고 다니고 싶었다. 군대 가기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 사업장에 회사 차량으로 있던 두 대의 승합차는 내 장난감이고, 놀이터 같은 곳이었다. 물론 면허가 없는 상태에서 승합차를 몰고 도로로 나갈 수는 없었지만, 사업장 앞 주차 공간에서 차를 조금 움직여야 할 일이 있으면 난 운전석에 냉큼 타 움직여야 할 승합차를 앞, 뒤 가끔은 좌, 우로 움직이며 운전을 하고 싶은 욕구를 달랬었다.


이렇게 운전대를 잡아대니 아버지 사업장의 승합차 두 대는 성할 날이 없었고, 아버지에게 이실직고하지 않았지만 두 승합차의 잔 스크레치는 내가 대부분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어느 날 주류 차가 아버지의 사업장에 주문받은 술을 내리려고 왔을 때 승합차 두 대 중 한대가 마침 사업장 입구를 막고 있었고, 주류 배달 직원들이 차를 빼 달라고 이야기하는 통에 난 또 한 번 승합차에 냉큼 올랐다. 올라탄 승합차에서 난 자신 있게 후진 기어를 넣고 오른발을 있는 힘껏 가속 페달을 밟았다. 차는 이내 내가 밟은 만큼의 속력을 내며 그 가속 때문에 뒤에 세워진 승합차와의 충돌을 피하지 못했다. 승합차 두 대의 충돌하는 파열음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했고, 난 아버지에게 혼날까 봐 운전석에서 내려 줄행랑을 쳤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난 운전에 소질이 없었고, 결국 면허 시험장에 가서도 부족한 운전실력을 어김없이 뽐내며 보기 좋게 낙방을 기록했다. 이후 운전면허를 딸 생각은 여러 번 했지만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번번이 든 생각이 조수석에 앉아서도 움직이는 차량을 불안하게 보는 내가 과연 운전이란 걸 할 수 있을까였다. 하지만 운전면허증이 없는 게 창피했었던 어릴 적에는 입 밖으로 운전을 못한다는 이야기를 먼저 하지 않았고, 혹시나 물어보는 사람들에게는 '장롱 면허' 정도로 이해하게끔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늘어난 건 나이와 살뿐만이 아니라 내 좋아진 넉살이었고, 이젠 면허 없다는 얘기를 그냥 자연스럽게 하곤 한다. 난 얼마 전까지 아이들이 우리 집에 차가 없는 것에 불만이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고, 아이들도 아이들 나름의 배려를 한 것이었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저녁 식사 자리 자연스럽게 나온 이야기에서 집에 차가 없어서 아이들 나름의 불만이 있다는 걸 알았다. 표현은 안 했지만 차가 있는 집을 부러워한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여행을 갔을 때 거리가 애매해서 무거운 짐을 끌고, 걸어서 기차역으로 이동할 때면 아이들은 그런 불편함을 말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얼굴로는 종종 내비치곤 했었다. 아내 말로는 큰 아이가 학원이 늦게 끝나는 날이면 아마 학원서 집까지 오는 길이 종종 불만이 있었을 거라고 한다. 다른 친구들은 아마 부모님들이 TV에서 보는 것처럼 차로 픽업해서 데리고 가는 게 일반적이란다. 난 그 일반적이란 말을 이런 곳에 쓰는 게 싫지만 아들이 친구 없이 늦은 밤 혼자 집으로 귀가하는 걸 생각하면 부모로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큰 아이는 종종 차 이야기만 나오면 자신은 면허를 빨리 딸 거란다. 아마 내게 기대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먼저 따는 게 빠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일 것이다. 직접적으로 내게 운전을 왜 안 하냐고 압력을 행사하는 가족은 없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이런 말을 할 때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당장은 난 운전을 할 욕심을 내지는 않을 것이다. 누구나 있는 그런 차보다는 아직은 씩씩하게 다닐 수 있는 내 튼튼한 다리를 믿으니까. 앞으로 차가 필요한 날이 생기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해볼 문제지 지금은 없는 차 때문에 미리부터 고민을 하진 않을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들로 남들이 여러 대도 가지고 있는 그 흔한 차가 우리에겐 없다. 그래도 난 아이들을 끌고 씩씩하게 여행도 다니고, 외식도 다니고, 그리고 시골집에도 잘 간다. 우리 아이들이 운전을 먼저 시작하더라도 난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고, 때가 되면 그리고 필요해지면 차라는 걸 장만하고, 운전이라는 걸 해봐야겠다.


"그나저나 영희 씨, 영희 씨는 운전할 줄 알잖아. 영희 씨가 운전하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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