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이렇게 추운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가 많이 보고 싶었나 보네. 명절에 시골 가는 거 보면. 어린것이 고생이네."
큰 아이는 2003년 10월에 태어났다. 그래도 추워지기 전에 태어나서 아내도 아이도 큰 추위가 오기 전에 산후조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첫 아이였고, 우리가 살던 곳 주변엔 친인척이 없다 보니 오롯이 아이를 키우는 건 우리의 몫이었다. 아이가 울거나, 보채거나 그리고 아플 때에도 육아 서적을 보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우리에게 온 첫 번째 보석 같은 아이를 우린 함께 키워 나갔다.
그러던 12월의 어느 날 큰 아이가 태어난 지 2달이 안되었을 때였다. 2004년 첫 명절인 설날 명절 열차표 예매일이 다가왔다. 아내와 난 아이가 너무 어려 이번 명절에는 부모님 댁에 내려가기 어렵다고 생각했고, 이런 우리의 생각을 부모님도 이해하실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부모님은 당신들의 첫 손주 볼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고, 당연히 명절에는 우리가 손주를 데리고 내려올 거라는 기대와 확신을 갖고 계셨다.
차마 이런 부모님의 기대에 반하지 못해 아직 100일도 되지 않은 큰 아이를 데리고 우린 부모님이 계시는 포항까지 가는 강행군을 했다. 2004년은 설날이 1월 22일이었고, 다른 해에 비해 그 시기가 조금 더 빨랐다. 우리나라의 1월은 겨울의 중심에 있는 시기였고, 100일도 되지 않은 아들에게는 처음 맞는 겨울이 무척 매섭게 느껴질 만한 추운 날씨였다. 우린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기차역으로 이동했고, 둘만 다닐 때도 주로 대중교통은 기차를 이용했지만 아이가 생기면서부터 더더욱 버스 이용을 하기가 겁이 났다. 이동 중에 아이가 배고파 울거나, 용변을 봐 보채면 모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바꾸고, 아이를 달래기 위해 버스보다는 안고 서성일 공간이 있는 기차가 우리와 아들에겐 더 적합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우리의 주요 교통수단은 기차가 됐다.
그날도 어김없이 서울역에서 기차를 탔고, 2004년 1월만 해도 KTX가 개통되기 전이라 우린 당연히 '새마을호'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KTX와는 달리 새마을호는 우리의 목적지였던 포항까지 4시간이 소요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들은 내가 안았고, 안고 가는 내내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긴 기차 여행을 참고 버텼다. 아무래도 지금의 KTX와는 달리 우리가 탔던 열차는 여러 역을 많이 정차하였고, 열차가 정차할 때마다 나오는 안내방송에 아이는 깜짝깜짝 놀래 울음을 종종 터트렸다. 아이가 잠이 들어 나도 조금 쉬고 있으면 금세 도착한 다음 역 열차 안내방송으로 아들은 화들짝 놀라 울음을 터트렸고, 난 아들을 안고 객차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아들을 진정시키고, 다시 재우기 위해 무척 애를 썼었다.
이렇게 3시간을 넘게 반복하는 내 모습을 보던 어떤 손님 한 분이 조금은 측은했는지 우리 부부에게 한마디 했다.
"아이고, 고향 가세요?"
"네, 명절 지내러 포항 갑니다."
"아기가 많이 어린 거 같은데 100일이나 지났어요?"
"아뇨, 다음 주가 지나면 100일이 됩니다."
"아이고, 이렇게 추운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가 많이 보고 싶었나 보네. 명절 때 내려오라고 한 것 보면. 어린것이 고생이네."
이렇게 말씀하신 한 마디가 아마도 아내의 속마음과 다르지 않음을 난 알 수 있었다. 사실 아내는 첫 아이 출산 후 몸이 좋지 않았고, 내가 육아를 돕는다고 해도 낮시간에는 오롯이 독박 육아를 하던 터라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있을 때였다. 아내의 생각 속에는 아마도 이번 명절 연휴라도 남편에게 육아를 많이 분담하게 하고 조금은 쉴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부모의 손주 사랑 때문에 거절도 못하고 결국은 기차를 타고 고향길에 올랐다. 열차에서 만난 분이 아내의 이런 속마음을 이해하고 있는 것같이 특별할 것 없는 따뜻한 말로 토닥토닥 어루만져주는 것 같았고, 정말 이 분의 몇 마디 말로부터 아내는 작지만 따뜻한 공감이라는 위로를 받은 것 같았다.
우여곡절 끝에 부모님을 뵙고 손주를 만나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며 아내는 힘들고, 지친 몸과 마음이었지만 부모님의 이런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듯 더 이상은 이 날의 서운함을 내게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설날이 다가오면 가끔 이 날의 서운함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가 늘었고, 다만 이야기의 주요 내용은 '서운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열차 안에서 따뜻하게 공감과 위로를 준 그 어떤 분에 대한 추억을 꺼내 들곤 한다.
그 해 겨울은 무척이나 추웠던 기억은 나지만 열차 안에서 따뜻했던 몇 마디로 아내와 난 평생 기억에 남는 잊히지 않는 작지만 큰 파장이 된 위로의 시간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