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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Aug 17. 2020

출근, 습관 그리고 선풍기

난 출근길에 만난 그 남자에게 내 선풍기 바람을 보냈다

난 내 얼굴을 바라보던 휴대용 선풍기 방향을 옆 남자 쪽으로 조용히 돌렸다


출근길 사람들 사이를 허둥대며 빈자리를 찾아 여기저기를 분주하고, 날렵하게 헤집는 한 남자를 봤다. 그는 지하철 개폐문이 열리자마자 한 여성분을 밀치고 드디어 자리다툼에 성공하며 지하철 한쪽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출근길에 자주 보는 남자였다. 늘 자리를 차지하려고 허둥대는 모습은 요일이나 날짜만 다르지 볼 때마다 한결같은 모습이다.


  그 남자의 덩치는 보통의 남성보다 1.5배는 더 커 보였는데 그 큰 덩치로 날렵하게 자리를 차지하는 게 오히려 신기할 따름이었다. 가끔은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가는 일도 본 적이 있을 정도로 큰 덩치만큼이나 얼굴도 꽤나 두꺼운 것 같았다. 출퇴근에 자주 보는 그 남자를 보며 습관이라는 것이 쉽게 간과하면 얼마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인지 상기해봤다. 평소보다 5분만 아니 3분만 일찍 출근길에 나서도 편하게 자리에 앉을 텐데 남자의 출근 습관을 보면 습관이란 게 좀처럼 고치기 어려운 듯하다.


  이런 습관은 알게, 모르게 자신들의 삶에서 많은 영향들을 주고 있다. 우리 집 아이들만 봐도 학교 과제나 숙제를 처리하는 생활 습관이 너무도 다르다. 큰 아이는 친구들과 놀기 위한 계획이 서면, 놀기 전에 자신이 할 숙제나 과제를 미리 챙긴다.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하고 놀러 가더라도 자신이 놀고 와서 해야 할 과제물을 최소화하여 남겨놓고, 놀고 와서 떨어진 체력이나 의지를 고려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게 몸에 배어있다.


  이렇게 미리부터 준비해 놓는 스타일이라 친구들과 놀게 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시간에 충실한다. 오히려 충실하다 못해 오버하여 귀가 시간을 어기기가 일쑤다. 이렇게 오버된 시간으로 집에 들어와서는 떨어진 체력에 힘들어하고, 해야 할 일을 놓고 꽤나 힘든 씨름을 한다. 다만 미리 대부분의 과제를 마무리해놓은 상태여서 짧은 시간에 마무리는 하는 편이다.

 

  이런 큰 아이와 달리 둘째 아이는 친구들과의 계획을 잡는다고 자신이 해야 할 일들에 대한 계획이 변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서 이틀 후에 해가야 할 숙제가 있으면 평소에도 하루 전에 해야 할 일을 하지만 내일 친구들과 놀 계획이 생긴다고 그 해야 할 일을 오늘 미리 당겨서 하지는 않는다. 즉, 잡힌 계획들에 대해서는 그대로 실행하지만 그렇게 잡힌 계획으로 생긴 변수들에 능동적으로, 융통성 있게 계획을 변경하거나 수정하지는 않는다. 좋게 이야기하면 묵묵히,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가지만, 달리 보면 조금은 융통성 없고, 답답해 보이기도 하고 마지막이 다 되어서는 이렇게 몰려버린 일들로 자신도 지치고, 주변의 사람들도 간혹 지치게 하기도 한다.


  이렇게 아이들의 습관을 살펴본 결과 둘의 습관이 너무도 다른 형태를 띤다. 하지만 두 녀석 모두 그나마 책임감이 큰 편이어서  해야 할 일을 완수하기는 하지만 일어나는 일들에 따라 능동적으로, 융통성 있게 대처하는 자세를 가져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습관에 대해서도 아직까지는 루틴화 될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고, 이런 자세와 태도가 가져올 삶이 오랜 경험으로 봤을 때에는 조금 더 긍정적인 효과나 영향을 주기 위해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아직 우리 아이들은 내가 이야기하면 대화가 가능한 시기이다. 하지만 큰 아이 같은 경우에는 조금은 예민한 시기여서 아들의 루틴이나 습관을 이야기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제법 대화를 자주 하는 사이니까 적당히 조언 정도로 던져보긴 해야 될 거 같다. 난 아이들의 아빠니까, 당연한 얘기지만 그럴 책임도 의무도 있지 않을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니다. 지금 잘 들인 습관 하나가 어른이 되어서도 삶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꼰대스럽지 않고, 조심스럽게 아이들에게 얘기해 볼 생각이다.


  매일 날렵하게 자리싸움하는 그 남자는 오늘 지하철 내 옆 자리에 앉았다. 그 남자의 넓은 어깨 때문에 난 등을 붙였던 자세도 앞으로 당겨 앉았고, 그 남자의 쩍 벌린 다리 때문에 내 다리는 다소곳이 모여 버렸다. 열기 많은 '아저씨'의 등장에 오늘따라 지하철이 더 덥게 느껴진다. 난 연신 휴대용 선풍기를 얼굴로 가져가 보다 조용히 옆으로 시선을 돌려 보았다. 그 막무가내 남자는 주변 불편한 건 안중에도 없이 연신 졸고 있었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은 맺혀 있는데 피곤한 몸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갑자기 졸고 있는 이 남자도 사회생활하느라, 먹고 사느라  힘이 들겠지 하는 생각이 드니 조금은 딱해 보였다.  얼굴로 향했던 휴대용 선풍기의 방향을 가만히 그 남자 쪽으로 틀어봤다. 남자는 짧은 머리였지만 내 휴대용 선풍기 바람에 그 짧은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게 보였다.


 "아저씨, 사는 게 힘들지?  그래도 출근 습관을 조금만 바꿔봐. 그럼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편하게 자리에 앉을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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