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처음으로 아내와 호텔에 갔다

어머니의 사랑과 배려로 그 해 추석은 시원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by 추억바라기

"영희 씨, 오늘이 가을 날씨치고는 덥다고 하는데, 좁은 엄마 집에서 너무 덥지 않을까요?"

"살 것도 아니고 이틀만 자면 되는데 좀 참아요. 철수 씨. 자기 집이지 우리 집인가? 아들이 이러는 거 알면 어머니 서운해하겠네."


한창 들뜬 마음으로 고향에 갈 준비로 분주할 때 난 더웠던 작년 추석 날씨에 좁은 방에서 우리 세 식구(딸아이가 태어나기 전이라)와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과 여동생까지 고생했던 그 날이 생각났다. 그 많은 식구가 조금은 미련스럽게 더위를 참고 잤던 기억이 나 아내에게 걱정스러운 마음을 털어놓았다.


아내는 나의 철없던 말에 1년에 여러 번 가는 부모님 댁도 아닌데 참으라는 이야기로 핀잔을 줬다. 부모님 댁은 12평 남짓한 작은 연립식 서민 아파트였다. 아버지가 외지에서 일을 많이 하셨던 시절이라 평소에는 어머니 혼자 지내시는 일이 많았다.


부모님 댁은 어머니 혼자 지내시기에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의 안락한 집이었다. 다만 설날이나 추석과 같이 명절 때만 되면 우리 세 식구(이젠 네 식구)에 여동생 그리고 따로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대가족이 모이기에는 너무 좁은 집이었다.


그나마 추운 설날에는 좁을 뿐이지 덥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금 이른 가을에 오는 추석은 늘 더위와의 전쟁이라 열이 많은 난 특히 더 고생스러웠다. 아침, 저녁 더위는 한 풀 꺾인 지 오래되었다고는 하지만 저층인 부모님 댁은 한낮의 더위가 제대로 식기에는 열기를 뺄 창문도, 넓은 현관도 없어서 아침나절이나 되어야 그 더위가 조금 식을 정도였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아내 말처럼 우리 부모님 댁인걸.


오랜만에 부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니를 뵙는 건 너무 기쁜 일이지만, 밤에 더위와 한바탕 싸움을 할 생각을 하니 귀성길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이런 마음을 갖고 내려갔지만 막상 기차역으로 마중 나오신 부모님을 뵈니 갖고 있었던 걱정은 이내 사라졌고, 손주와 아들 내외를 보고 좋아하시는 부모님과 조부모님을 뵈니 반갑고, 기쁜 마음만이 가득 찼다.


하지만 이런 우리 마음과는 달리 날씨까지는 그렇게 많이 도와주지는 못했다. 9월 말이라고는 해도 한낮의 열기는 체감온도가 30도 가까이 웃돌았고, 저녁도 되기 전에 더위로 지쳐갔다. 이렇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저녁을 먹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일찍 잠이 들고 부모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였다. 어머니는 슬쩍 나를 불렀다.


"철수야, 많이 덥지? 영희하고, 민수 잘 때 입을 옷만 챙겨서 나가자."

"네? 어딜 나가게요?"

"작년에도 너희들 더워서 잠 설치는 거 때문에 많이 신경 쓰였는데, 내가 아버지한테 얘기해서 집 근처에 모텔 예약해놨다. 새로 생긴 곳이라 시설도 좋다더라. 편하게 씻고, 시원하게 자거라."


어머니는 작년에 좁은 집에서 말도 못 하고 더위를 참아가며 잠을 청했던 아들 내외와 손주가 계속 신경이 쓰여서 아버지에게 먼저 이야기를 해 놓았고, 아버지도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허락을 한 상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두 살아 계셨던 터라 우리 집은 명절 제사가 없었고, 명절날 큰 댁에 남자들만 제사를 지내러 가기 때문에 명절 음식 만드느라 명절 전날 많이 분주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어머니의 자식 사랑과 배려로 우린 결혼하고, 처음으로 아이까지 데리고 모텔에 자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어머니 살아생전에 난 어머니에게 그렇게 살가웠던 아들은 아니었다. 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이제 와 생각해보니 난 어머니와 무척 닮은 구석이 많은 것 같다. 어머니처럼 몸에 열도 많고, 어머니처럼 '욱'하는 성질 하며, 요모조모 뜯어보면 외모도 구석구석 닮은 곳이 보인다. 싫든 좋든 난 어머니 자식이었나 보다. 사람들이 부모님 있을 때 잘하라고 하는 말이 오늘 더 생각나는 하루다.

오늘은 아버지에게 전화라도 넣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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