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을 함께했으면 그냥 가족이다

딸과 열대어에 얽힌 추억의 잔상

by 추억바라기

"아빠 요즘 대장 물고기가 밥을 잘 안 먹어. 정말 이제 죽으려나 봐."

"4년을 넘게 살았는데 이상하지도 않지. 죽으면 양지바른 곳에 묻어줘야지. 가족 같은 녀석인데."



내가 어항을 들이고 '물질'을 시작한 지는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그 시작은 재활용 쓰레기 더미에서 버려진 어항 하나를 주워오면서부터였고, 그렇게 관상어를 키우는 취미가 생겼다. 난 시간이 날 때마다 열대어가 파는 샵에 가 새로운 어종이나 도구들을 구경하는 일이 잦아졌다.


*물질 - 관상어를 키우는 취미를 일반적으로 일컫는 말


처음부터 무언가를 키우는 것에 취미가 있지는 않았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에게도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고, 손이 가장 덜 가는 취미를 찾다 보니 관상어를 키우는 일이 만만해 보였던 것 같다. 물론 예전부터 수족관이나 대형 아쿠아리움 같은 곳을 구경 가는 것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직접 키울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우연하게 아내가 들여온 어항에 물고기와 새우를 한 마리, 두 마리 채우기 시작했고, 아내의 도움을 받아 수초를 심으면서 관심과 호기심에서 취미로 바뀌기 시작했다. 내가 키우는 관상어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도 했고, 지금은 많이 게으름을 피우지만 그 당시엔 물갈이나 청소도 꾸준히 해서 어항 관리가 나름 잘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열심히 키우는 모습을 본 아내는 이듬해 내 생일에 한자 반짜리 어항과 각종 수족관 장식 세트를 선물로 안겨줬고, 꾸준히 즐기고, 꾸미면서 어느새 어항도 두 개로 늘렸다. 어항이 늘어난 만큼 관상어도 여러 종 키워가며 내 취미는 아내의 응원과 아이들의 관심 속에 계속 이어져 갔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전업 주부였던 아내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아이의 등교를 챙겼다. 큰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내는 늘 아이를 학교까지 데려다주고는 했었는데 늘 아침이면 깨어있던 딸아이가 그날따라 깨지 않고 숙면 상태였다. 4살밖에 되지 않아 늘 아들을 데려다줄 때 데리고 다녔던 터라 아내는 어찌할까 고민을 했다.


봄이었지만 4월 초의 꽃샘추위로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했고, 아내는 자는 딸아이를 억지로 깨워서 데리고 나가다 덜컥 감기라도 걸릴 위험을 감수하는 게 부담이 되었다. 아내는 멀지 않은 등굣길이었기 때문에 아들을 데려다주고 올 동안 딸아이가 계속 잠에서 깨지 않길 빌며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고 아들을 데리고 학교에 갔다.


아들을 데려다주고 들어오는 길에 아내는 아래층에 사시는 할머니를 보고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날씨가 많이 쌀쌀한데 아프신 곳은 없으세요? 요즘 아침에 안보이셔서 어디 편찮으신 줄 알았어요."

"아, 민수 엄마. 어디 다녀오느라고 집을 며칠 비웠었어. 그나저나 그 집 애들은 큰 애나 작은 애나 왜 그렇게 얌전해."

"아, 저희 애들이 그런가요. 왜요? 무슨 일 있으셨어요?"

아내의 물음에 아래층 할머니는 방금까지 있었던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고, 아내는 딸아이가 깼다는 이야기에 화들짝 놀라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내의 걱정과는 달리 4살짜리 딸아이는 거실 어항 앞에 앉아서 물고기를 구경하고 있었고, 문을 열고 들어온 아내를 보며 자신이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설명해 주었다.


"엄마, 나 조금 전에 일어나서 아래층 할머니한테 인사하고, 할머니랑 이야기하며 놀았어."

"그래? 우리 지수 잘했네. 혼자 있는데 안 무서웠어?"

"응, 엄마가 없어서 오빠 방 창문 열어서 밖을 내다봤는데 할머니가 있어서 할머니랑 얘기했더니 안 무서웠어."

"우리 지수 다 컸네. 엄마가 괜한 걱정을 했네."

"할머니랑 이야기하다가 거실에 있는 물고기랑 놀다 보니 엄마가 왔어. 물고기가 아침부터 잘 놀아서 나도 그냥 물고기 구경했어."


딸아이는 종종 큰 아이 방 창문 아래 할머니가 나와서 아침에 박스를 정리하는 모습을 자주 봤었고, 그 모습을 기억하고서 아마도 창을 열고서 할머니와 이야기하며 마음속 두려움을 떨쳤던 것 같고, 거실에 있는 물고기를 보며 지루함을 달래며 엄마가 오길 기다렸던 것 같다.


아이들 정서에 도움이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있었지만 아이가 두려워할 때도 물속에 있는 이 작은 녀석들이 아이에게는 큰 힘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난 지금까지 관상어를 키우고 있다. 중학생이 된 딸아이는 이젠 어항 속에 있는 녀석들이 안중에도 없지만 그래도 아빠와 비슷하게 대형 아쿠아리움을 좋아하고, 상어가 나오는 영화를 즐긴다.


"지수야, 아빠가 어젯밤에 늦게 들어와서 물고기 밥 못줬으니까 오늘 낮에 밥 좀 주라고 했잖아. 너 무서워할 때 녀석들이 얼마나 내게 위로가 됐는데."

"아, 미안 깜빡했네. 지금 아빠가 주면 되잖아."


우리 딸아이는 어릴 적 어항 속 물고기로부터 받았던 도움을 기억이나 하는 걸까? 물고기들이 알면 서운해할 텐데. 아니면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라고 이야기할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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