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억바라기 Sep 15. 2020

내가 첫 심리 상담에 눈물을 흘린 이유

프리마켓 갔다가 만난 내 생애 첫 심리 치료 경험담

"어, 영희 씨 나 왜 눈물이 나죠? 나 다 잊은 게 아닌가 봐요."



봄기운이 완연했고, 프리마켓에서 장사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서둘러 집을 나서 호수공원에 도착한 건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일산 프리마켓은 더 인기가 있었고, 우리는 팔려고 가져간 상품의 '솔드아웃'을  걱정할게 아니라 자릴 걱정해야 할 처지였다.


  하지만 우리에겐 어린이를 우대하는 주최 측의 훌륭한 취지인지했고, 딸아이를 내세워 좋은 자릴 차지할 수 있었다. 적당히 그늘진 천막 아래 자리를 깔고 아내와 난 오늘 프리마켓에 들고 온 상품을 진열했다.


 "어머 이 재킷 너무 이쁘다. 바지도 이렇게 맞추면 이쁠 거 같네. 저기 언니 이렇게 얼마예요?"

 "아, 그 재킷은 만원이고, 바지는 오천 원 주세요."


  팔 옷을 정리 중에 들이닥친 첫 번째 손님이 아내와의 흥정 끝에 만 오천 원에 재킷, 바지, 티셔츠까지 기분 좋게 구매해 갔다. 아내는 첫 게시가 산뜻하다고, 아마 오전이면 모두 팔고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조심스레 당찬 포부를 밝혔다. 이런 아내의 말대로 우린 가져왔던 딸아이의 옷과 신발 등을 세 시간 만에 대부분 팔았고, 그제야 주변에 다른 프리마켓 참가자들의 물건들을 구경도 하고, 쇼핑도 했다. 그러던 중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닌 '심리 상담소'라고 된 곳을 보게 되었고, 호기심에 가까이 가 기웃거리며 어떤 곳인지 살폈다.


 "안녕하세요. 한 번 받아보세요."

 "아, 얼마인가요? 시간이 오래 걸리면 안 되는데."


 호기심에 아내와 난 근처까지 가긴 했지만 심리 상담이란 건 처음인 데다 비용이 들면 하지 않을 생각을 했는데 대뜸 '무료'라는 상담사의 말에 서로를 밀어가며 자리에 앉았다.


 "두 분 다 하실 거죠? 각자 지금 드리는 종이 위에 제가 말씀드리는 설명을 듣고 그림을 그려 주세요."


  아내와 난 받아 든 종이 위에 상담사가 표현하라고 하는 내용을 포함한 각자의 그림을 이내 그리기 시작했고, 볼펜으로 스케치하는 수준이라 이내 완성된 그림을 각자의 상담사에게 내밀었다. 의심과 호기심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상담사가 그림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해할 때 즈음 상담사가 입을 뗐다.


 "요즘 마음이 조금 복잡하신 것 같아요. 힘드신 일이 있나 보네요. 그림에서 그려진 집이나 울타리, 나무가 그려진 위치나 구도가 손님의 마음을 보여주거든요."

 "아, 그런 게 그림에 나타나 있나 보네요. 얼마 전까지 조금 힘든 일이 있긴 했어요."


  그림을 보며 그림 속에 그런 표현이 그려져 있다는 상담사의 말이 너무도 신기했고, 처음과는 달리 의심은 1도 없이 이젠 호기심만 가득 찬 마음으로 상담사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림을 보며 심리상담을 하는 곳이니 편하게 이야기하시면 돼요."


  그제야 난 마음을 열고, 심리 상담사와 이야기를 시작했고,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심리상담사의 이야기들이 내 곳곳을 감싸듯이 보듬어 주는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고, 어느새 내 눈가가 촉촉해지며 떨어지는 눈물이 내 볼을 타고 흐르는 걸 느꼈다.

 

  사실 수년 전 매니저 보직해임 후 옮겨온 부서에서 2년을 넘게 근무했고, 나름 가깝게 지내온 매니저와 1년 전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별문제 없이 잘 지냈다고 생각했던 매니저에게 일방적으로 배신을 당한 일이 있었다. 그는 나를 처음부터 편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나이가 많은 팀원이 불편했던 게 이유였다.

  "어, 영희 씨 나 왜 눈물이 나죠? 나 다 잊은 게 아닌가 봐요 나 이젠 그 일에 대해 제법 의연해졌는데."

 

  당혹스러워하는 날 보며 아내는 아무 말 없이 토닥토닥 어깨들 두드렸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은 좀처럼 주체가 되지 않았다.

 

  "누구나 저마다 아픔이 있어요. 시간이 지났다고 그 아픔은 사라지지 않죠. 제대로 마음의 치료를 하지 않으면 언제가 되었든 손님처럼 상처가 재발하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깊게 깊게 병들어 가기도 합니다. 제대로 상담 치료가 필요할 것 같으시면 저희 상담소에 나와보세요."


  우연하게 받은 심리 상담 중에 난 눈물을 보였다. 처음에는 의심과 호기심으로 시작한 상담이었지만 나도 모르는 무의식의 표현에 몇 개월 전 받았던 내 마음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무뎌져 있다고 생각했던 내 생각과는 달리 내 마음은 그 상처를 숨기기 위해 무척이나 애썼던 것 같다. 난 그 상처의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믿었던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나보다 부족하다 생각했던 사람에게 받은 자존심의 상처 때문이었을까'


  조금은 특별했던 그날의 기억으로 난 많은 걸 알게 되었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기특했던 내 마음을 조금은 더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아픔의 상처는 내 마음 깊은 곳에 흉터로 남아있다.


  작은 줄 알았던 마음의 상처도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그 상처를 애써 덮고, 감추는 마음이 있어서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들을 하곤 한다. 하지만 감추는 게 능사는 아니었고, 참는 게 미덕이 아닌 만큼 자신에게 일어난 상처 받은 일은 무작정 덮기보다는 열어놓고 가까운 사람들과 대화하며 그 상처를 풀어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그 어떤 사람보다, 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은 소중하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이틀의 여행보다 얻은게 많았던 30분의 토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