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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Oct 05. 2020

아들을 보며 내가 미소 짓는 이유

우리 아이들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다녀왔어요. 영희 씨. 아들 학교는 잘 다녀왔어."

 "저녁 준비할 테니 얼른 씻고 나와요."


퇴근해서 집에 오면 평소와 다르지 않은 우리 집의 평온한 모습이다. 난 을 편하게 갈아입고, 손발을 씻고 나와 저녁을 준비하는 아내를 도왔다. 우리 집은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과 하루 일과를 마치고 하루 동안 수고한 서로를 마주하며 식사할 수 있는 저녁은 가급적이면 함께 해왔다. 하지만 이것도 작년부터 내 출근길이 멀어지면서 평일 아침은 1년이 넘게 혼자 먹었고, 그나마 저녁은 저녁시간을 30분 늦추면서 함께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저녁식사 시간은 하루를 보내며 일어난 서로의 일상이나, 평소와는 다른 특별한 일이 주로 저녁 테이블 위의 이야기 소재가 되었다. 오늘 밥상에서는 당연히 아들의 OO부 부장 인터뷰 결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 기대를 했다. 1년이 넘게 OO부 활동을 열심히 했던 아들은 두 달 전부터 OO부 부장에 출마할 거라고 틈나면 얘기했고, 바로 어제 학교에서 부장 인터뷰를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내게 인터뷰 결과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고, 평소와는 다른 식탁 분위기가 묘하게 긴장감까지 다.


이렇게 집안 분위기가 묘했지만 아들의 OO부 부장 인터뷰 결과가 궁금했던 난 아내에게 어떻게 되었는지 결과를 물었다. 하지만 아내는 아들의 눈치를 슬쩍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눈치가 있는지라 더 이상 묻지 않고 다른 주제로 대화를 돌렸지만, 함께한 저녁 식사 테이블 위는 마치 남의 집 밥상에서 밥을 먹는 것처럼 불편함과 어색함만 가득 남은 채 식사 시간은 끝이 났다.


식사를 마치고 아들은 조용히 영어 학원을 갔고, 그때까지 입을 닫고 있던 아내는 그제야 내게 아들의 인터뷰 결과를 털어놓았다.


 "에휴~, 인터뷰는 잘 봤는데 부장에서 떨어졌나 봐요."

 "어제 인터뷰 보고 와서 이미 경쟁률도 높은 데다 인터뷰 본 애들 중에 강력한 경쟁자 한 명이 있어서 자신도 어렵다고 벌써 생각은 하고 있었잖아요."

 "그랬죠. 아마 차장으로 있었던 부서에서는 그 경쟁자 때문에 안 되겠거니 생각했지만, 신설 부서가 있어서 조금은 기대를 했었나 봐요. 아침까지만 해도 그 신설부서에 부장으로 자기가 됐다고 전교 회장단으로부터 연락도 받았었고요."

 "그래요? 그런데 왜 부장에서 떨어졌다는 거예요"

 "아침까지만 해도 기분 좋게 가더니 OO부 담당 선생님이 신설부서의 역할이 아마 기존 부서와 겹친다고 부서를 폐지하라고 했나 봐요. 그 바람에 부장 자리도 없어진 거죠."


아들의 기분이 바닥까지 내려간 게 이해가 되었다. 아마도 처음부터 부장에서 떨어진 결과만 알려줬으면 서운했겠지만 그래도 결과에 승복하고 툭툭 털어냈을 텐데 아마도 신설부서의 부장으로 결과 발표가 나면서 부장이 된 것에 기쁨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루가 되지 않고 다시 신설부서 폐지로 인한 부장 탈락이라는 고배를 받고 나니 상심이 더 컸을 듯하다. 아마 줬다 뺐어간 기분이지 않을까 싶다.


아내는 이런 상심한 아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컸을 테고, 이런 상심한 아들 때문에  아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차마 다시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던 것이다.

 "아마 조금 극성스러운 엄마였으면 학교에 전화라도 했을 거 같아요. 선생님은 부장 인터뷰가 있는 걸 알았을 텐데 그럼 신설부서에 대한 검토를 사전에 해봤어야 하는 거잖아요. 부장을 모두  선출했는데 부서를 없애면 뽑힌 애들은 어쩌라고."

 나도 아내의 이런 불만스러운 마음에 동조를 했고, 아들이 한 해 동안 OO부를 위해 노력했던 일과 인터뷰를 위해 며칠 전부터 들떠 있었던 아들 모습이 그려져 조금은 흥분 상태가 되었다.

  "그러게요. 아니 아무리 애들 일이라고는 하지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선생님한테는 생기부 한 줄이지만 이걸 받으려고 노력하는 애들한테는 단순히 한 줄의 의미는 아닌데. 정말 정식으로 학교에 클레임을 걸까요?"


여기까지 갔더니 아내는 나의 상태에 흠칫 놀라며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우리 아이 일이라고는 하지만 학교에도 저마다 사정이 있는 것이고, 그런 일로 나서는 부모가 되는 건 원하지 않는다며 나를 말렸다. 특히나 이렇게 학교에 이야기가 들어가면 아들에게 더 좋지 않은 영향이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를 씻어낼 수가 없단다.


아내는 올해 아들의 선거나 투표운이 정말 없다고 한다. 그간 아들이 하겠다고 나서면 결과가 좋았던 걸 돌아보면 올해는 반 회장 선거에서도 고배를 마셨고, 또 당연히 될 줄 알았던 OO부 부장 선거에서도 떨어졌으니 아내가 봤을 때도 아들의 운이 없는 한 해로 비칠 수 있겠다 싶었다. 아내 말로는 아들은 나름 자존심에 상처를 받아 회장단에서 제시한 작년까지 해오던 부서 차장 임원은 그대로 유지해달라는 의견도 단칼에 거절하고, 그냥 부원으로 일하겠다고 했단다. 아마 아들 나름의 서운함을 표시한 것이리라.


이제 곧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아들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아들의 목표가 어느 곳인지는 구체적으로 말은 하지 않지만 아들도 아들 나름의 계획으로 자신의 진로를 위해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을 꾸준히 보인다. 새벽까지 들어와 있는 아들 방의 불빛이 오늘도 문 틈새로 새어 나오는 걸 보면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건 자식에 대한 믿음과 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요즘 우리 아이들 학교 생활을 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어른으로써 많은 반성을 하게 한다.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 많은 아이들이 참 열심히 사는 걸 보면 아이들을 위해 지금 같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 줄 수밖에 없었던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깊은 자괴감이 든다.


농담처럼 아들에게 3년 뒤면 군대 가야겠다고 놀리는데, 이제 품 안에 안고 끼고 살 날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아들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일이 익숙해져 가는 걸 보면 말이다. 오늘도 어제보다 한 뼘 성장한 아들을 생각하면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머문다.


 "아빠, 회장단에서 다시 연락이 와서 못 이기는 척 그냥 맡고 있던 부서 차장을 하기로 했어요."

 "그래 아들, 잘했다. 부장이란 거 아빠가 하고 있는데 그거 별로야. 통 크게 잘했네 우리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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