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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Sep 21. 2020

나는 네가 정말 밉다

이 또한 지나가지 않겠냐만은 그래도 싫은 건 싫고, 미운건 미운 거다

나는 네가 정말 지긋지긋하게 밉고, 싫어. 나 예전으로 돌아갈래


우리의 일상을 잃은 지도 어느덧 8개월이 되어간다. 올해 초만 해도 중국에서만 위협이 되는  우리와는 먼 이야기로 느껴졌었다. 하지만 코로나 19는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뒤바꾼 무서운 재앙 그 자체의 모습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을 울리고, 아프게 하고 있다.


대부분의 가정과 비슷하게 우리 집에도 학교를 다녀야 할 아이들이 있고, 새로운 학년을 시작했지만 제대로 등교를 하지 못하고 온라인 수업이 일상이 되어버린 아이들이 안쓰럽기만 하다. 큰 아이 같은 경우는 지금의 고등학교 3학년 입시생을 둔 부모의 마음보다는 덜하겠지만 이제 입시가 한해 밖에 남지 않은 아이를 바라보는 아내와 나의 마음도 걱정되고,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아내의 일상도 코로나 2단계 격상과 함께 많이 달라졌다. 올봄에만 해도 아이들이 격주라도 학교를 다녔고, 아내가 개인적으로 활동했던 모임들은 꾸준히 참석을 했었다. 하지만 여름부터 시행되었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및 8월 말에 강하게 조치되었던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시행으로부터 아내의 모든 사회적 활동들은 모두  'Stop'이 된 상태다. 게다가 아이들마저 학교를 가지 않고, 온라인 실시간 수업을 하는 통에 아침부터 바쁘게 아이들 뒷바라지에 삼시 세 끼를 모두 제시간에 챙겨야 하는 어려움으로 점점 지쳐가는 모습이 역력하다.


물론 나의 일상의 변화도 만만치가 않다. 집을 나서며 쓰기 시작한 마스크는 사무실에 가서도 모닝커피 마실 때와 점심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좀처럼 벗는 일이 없어졌다.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다 보니 나이가 들고서 바뀌었던 건성 피부였던 내 피부는 어느새 지성도 아닌 그냥 기름밭이 되었다. 항상 '번들번들', '미끌미끌' 지성피부도 아닌 마스크 안쪽의 사정은 그냥 말 그대로 '개기름'이 흘러내렸고, 자주 닦아주는 수고스러움을 감수해야 했다.


또한 직장인의 힐링 시간 중 하나인 나의 점심은 선택 메뉴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시행 전만 해도 점심시간만은 코로나도 어쩌지 못한다는 심정으로 예전과 비슷한 맛있는 메뉴를 찾아 그날의 당기는 메뉴를 선택하여 먹고는 했는데 이제는 포장이 가능한 근처 패스트푸드나 김밥집을 전전하며 그냥 허기를 채운다. 말 그대로 끼니를 때우는 수준으로 나의 점심시간은 전락했다.


난 예전에는 김밥을 좋아했고, 햄버거는 썩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가 이런 나의 기호 메뉴도 바꿔놓았다. 처음에 같은 팀 동료의 제안으로 김밥을 포장해서 먹기 시작했던 난 원래는 오리지널 김밥을 선호하였으나 이, 삼일 점심 끼니로 같은 김밥을 먹고 나니 내 입과 위가 김밥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하여 그 김밥집의 김밥 메뉴를 돌아가며 먹는 자구책까지 써봤다. 하지만 이렇게 김밥 속 내용물의 문제가 아니었고, 어느샌가 좋아하지 않는 패스트푸드 햄버거점심 메뉴에 끼워 넣어 김밥과 번갈아 먹는 대체 식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내가 근무하는 층에는 사무실에 별도의 회의공간이 없다 보니 점심식사는 근무하는 자리에서 이뤄졌고, 식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이렇다 보니 냄새가 조금 나는 음식을 반입하여 먹기가 꺼림칙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메뉴가 김밥과 햄버거였다. 하지만 난 오늘 큰 마음먹고 김밥집에 파는 '김치볶음밥'을 포장해서 점심에  오랜만에 밥 같은 밥을 먹는다. 오늘만은 끼니를 때우는 게 아닌 끼니를 해치우고 있다. 물론 식사 후에 창문을 열어 열심히 환기를 해야 하는 불편함은 있겠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가끔은 먹을만한 점심 메뉴의 선택이 필요할 듯하다. 


어느새 일주일이 흘렀고, 오늘도 평소와 다르지 않은 코로나 시대 속 주말 아침이다. 계절은 바뀌었고, 완연해진 가을 날씨가 얄밉기까지 하다. 남들은 이런 시기에도 여기저기 잘들 놀러 다닌다고 하지만 고맙게도 아내와 아이들은 국가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그것도 지나칠 정도로 말이다. 집 밖을 나가려고 하지 않아 오히려 코로나가 아닌 다른 질환이나 면역력 걱정해야 할 판이다. 지난 주말에도 아파트 공원에 끌고 나가 배드민턴을 쳤었는데 오늘은 주변 공원이라도 산책하자고 꼬드겨 봐야겠다.


코로나의 시대 언제 끝이 날지 보이지가 않지만, 이런 일상에서 건강하고 현명하게 지내려면 가족과 이웃 그리고 주변 모든 사람들의 양보와 이해 그리고 관심이 필요한 요즘이다.  코로나가 지긋지긋하게 밉고, 싫다. 빨리 이 힘든 시절이 끝이 나서 맑은 공기를 내 폐 깊숙이까지 넣는 그날을 기다려본다.  


"나는 네가 정말 지긋지긋하게 밉고, 싫어. 나 예전으로 돌아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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