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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Nov 12. 2019

나도 왕년엔 말이야, 나도 라떼?

내가 지금은 이래도 예전엔...

예전에 직장에서는 곧잘 있었던 일이지만 항상 같은 생각이 들었던 대화 중 멘트가 있었다. 특히 술이 한두 잔 들어가거나 기분이 센티해지는 요즘 같은 계절에 많이들 하는 얘기다. 얘기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본인의 무용담을 얘기하는 것 같아서 신이 나겠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만큼 공감되지 않고, 지루한 얘기는 없을 것이다.


   예전 선배들과 대화할 때 그냥 일상의 얘기공장 얘기로 서로 위로도 하고,  상대방의 의견도 들어주고, 가끔은 아주 건설적인 이야기가 오가기도 한다.   여기서 공장 얘기란 회사 얘기를 통칭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선배들은 항상 자신들 과거 얘기를 하며 공감대를 깨거나 위화감을 일으킬 때가 종종 있었다. 예전 신입사원이나 대리 때 들었던 그런 선배들의 무용담은 그때 당시에도 와 닿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는 이야기들 투성이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막내 입장에서는 표도 못 내고, 마냥 억지 존경의 눈빛 비슷한 그런 시선에, 입에서는 마지못해 뱉는 감언의 공감 표현에, 탄성까지,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가관이었다. 아부 아닌 아부를 하고 회사를 다녔다는 생각에 가끔은 쥐구멍이 생각날 때도 있다.


   나는 20년 차 직장인이다. 아랫사람이 싫어하는 직급인 부장이다. 누가 그러더라. 임원인 상무나 이사 혹은 팀장은 오히려 불편 하지만 회식이나 식사 자리에 끼어주는 사려(?) 깊은 후배들이 있다고 한다. 

물론 그들 나름의 목적이 있어서이다. 회식, 식사 후 계산은 임원, 팀장이 알아서 잘하기 때문에 고기로 물어간 것이다. 

  하지만 그냥 직급만 부장인 사람은 그 흔한 법인카드도 없고, 나이 많아, 직급 높아, 계산도 N분의 1. 아주 민주적이다. 물론 그들이 봤을 때는 그냥 '꼰대'다.  뭐 내가 아랫사람이라도 편하게 회식자리에 부를 수 없는 부류이다. 이렇다 보니 별로 없던 사려(?)도 쌈 싸 드시고 오히려 큰소리까지 치는 후배 덕에 오라는 자리도 두려운 게 부장이라는 직급이다.


  적어도 나는 부장이 되어서 직원들이 꼰대 취급하고, 일부러 피하게 될 줄은 20년 전 아니 10년 전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다. 하지만 이제 나이도 40대 후반에 직급도 부장이고, 딱히 젊은 후배들이 얘기하면 바로 딱 알아듣는 그런 센스도 없는 부장을 바라보는 후배들 눈에는 그냥 퇴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 IT 회사에선 아주 드문 정년퇴임 공식 축하연을 회사에서 했었다. 그때만 해도 사실 남의 얘기로만 생각되었고, 나에게는 아주 먼 이야기로 들렸다.

   하지만 이제는 멀지 않은 현실이고, 오히려 오지 않을 꿈같은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정하기 싫은 현실이지만 팩트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아무것도 없는 나는 요즘 들어 자꾸 후회하고 반성하는 일이 생겨난다. 내가 그리 지루하게 들었던 "왕년에 말이야...."라는 말을 종종 하고 있는 것이다.  20년 직장생활 중 아쉽고, 안타까웠던 일이 왜 없을까마는 다시 돌릴 수 없는 과거의 추억 자락을 남에게 이야기하며 위안, 위로 그리고 인정을 받으려는 마음은 어딘지 모르게 측은하고, 답답하다.


   며칠 전에 함께 일하는 다른 부서의 책임자와 우연히 함께 저녁 식사할 일이 있었다. 함께 일한 지는 1년이 넘었지만 부서가 다른 통에 그다지 긴밀한 과거 얘기를 해본 적은 없었다. 나이도 나보다 5년 아래여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내 과거 얘기를 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이 지나면서  현재가 과거가 될 정도의 감정 이입을 하는 것에 나는 깜짝 놀랐다.  


   난 벌써 5~6년 전 회사에서 지낸 내 얘기를 하고 있었다.  개인적인 직장 내, 외적인 스트레스 및 과거 무용담(?)을 늘어놓고 있었다. 직급도 차이가 나고, 처음으로 둘이서 식사하는 자리라 이야기를 하면서 많은 부분 괴리가 있었다. 그나마 그 직원도 나와 마찬가지로 일찍 결혼한 덕에 아이가 초등학생이라 아주 약간(?)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수준이었다.


  긴 대화가 끊어진 결정적 원인은 어느샌가 예전 선배들이 이야기하는 "왕년에 말이야..."라는 이야기를 내가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였다. 도대체 왕년에 무엇이었는데 왕년에 타령이란 말인가.

왕년에 팀장 보직해임도 한 번 당하고, 대표이사에게 팀장 권한(법인카드, 인사권)도 빼앗겨 봤던 사람이면서 그리 "왕년에"라는 표현이 입에서 나오는 걸 보면 아직은 수양이 많이 부족한가 보다. 아니 인정하기 싫지만 '난 늙고, 외로움을 타나 보다'.


  난 아직은 '왕년에'를 말하기에는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아니 영원히 '왕년에'를 이야기할 날이 오지 않길 바란다.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지만 내일부터는 꼭 '왕년에'라는 생각도, 표현도 스스로 사용하지 않도록 애써봐야겠다.  그런데 그게 가능하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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