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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Nov 09. 2020

늦은 밤 캠핑장에서 홀로 집으로 돌아간 아들

여행지는 여행지여서 좋고, 집은 그냥 좋다

"아빠,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 잠은 집에 가서 자면 안 될까?"


10월 마지막 날 난 가족들과 함께 오랜만에 나들이에 나섰다. 오늘의 목적지는 집과 그리 멀지 않은 파주의 한적한 캠핑장. 가족여행은 해마다 한, 두 번씩은 꼭 행사처럼 다녔던 우리지만 올해는 코로나 여파로 집 밖으로의 모험은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꾸욱 참고 또 참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의 인내심은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가족도 피곤하고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조금은 힐링이 필요한 시간이 왔음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을 생각하면 지금이 아니면 내년 수능이 끝날 때까지는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은 급해졌고, 하루하루 가는 게 아까워 서둘러 가까운 글램핑장 예약을 마쳤다.


사실 우리 가족의 '감성 캠핑' 여행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 약점의 첫 번째가 이동할 수단인 차가 없다는 것이다. 캠핑하면 맛있는 것 바리바리 싸들고 사람들 북적이지 않는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 가서 자연을 벗 삼아 힐링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런 이동수단인 차가 없으니 가장 큰 약점 중에 하나다.  그 약점의 두 번째가 운전을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내 글을 읽어본 여러 구독자나 이웃 작가님들은 아시겠지만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난 이 나이 먹을 때까지 운전을 못한다. 물론 아내는 면허가 있지만 10여 년을 운전하지 않아서 이런 이벤트식 운전 부탁을 하기에는 아내의 스트레스가 너무 클 듯하다. 


이런 치명적인 약점을 이겨내고 '감성캠핑'이 가능했던 건 집에서 가까운 이동거리와 코로나로 인한 우리 가족들의 바닥난 인내심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시를 1년여 앞둔 아들의 양보가 한몫했다. 이렇게 어렵게 나선 우리는 한껏 들뜬 기분으로 캠핑장에 들어갔지만 텐트장의 청결상태와 시설의 노후 등을 보고는 기분이 많이 반감되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어렵게 똘똘 뭉친 우리는 지금 상황에서 어찌하지 못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다시 의기투합하여 '감성캠핑' 모드로 집중했다. 이렇게 진정 국면이 되어서야 제대로 된 바비큐 타임과 힐링 장작불 모드를 즐길 수 있었다. 맛있는 음식을 즐겁게 먹고, 함께 긴 시간을 이야기하며 오랜만에 가족 간의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중에서 장작불을 붙여 '불멍'하며 즐겼던 시간이 아이들과 아내의 가장 행복한 시간 중 하나였고, 장작을 두 번이나 사서 즐길 정도로 아이들도, 아내와 나도 모두 만족해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도심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자연에서의 시간이었고, 또 TV나 스마트폰의 간섭이 없이 긴 시간 가족 간의 대화를 이어갈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도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날의 사건은 시간이 늦어지면서부터 시작되었고, 난 내가 느끼는 기분이나 행복감을 즐거워하는 아이들에게도 듣고 싶은 나머지 아이들에게 오늘 '감성 캠핑' 여행에 대한 현재의 감정을 확인차 물어봤다.


 "아들, 오늘 캠핑 어때? 함께 고기도 구워 먹고, 좋은 공기도 쐬고."

 "응, 오랜만에 여행이라 도 너무 좋아요. 고기도 맛있고, 장작불 피우고 노는 것도 좋고."

 "그래, 아빠도 우리 아들, 딸과 오랜만에 나와서 더 기분이 좋아. 오늘 잠자리가 좀 불편하더라도 아빠랑 아들이랑 바닥에 자자."

 "아빠,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잠은 집에 가서 자면 안 될까요? 내일까지 수행 마무리해야 하는 것도 있고, 학원 숙제도 해야 하고. 결정적으로  침대에서 편하게 자고 싶어요."


이후에도 아들은 좀처럼 포기를 모르고 월요일까지 해야 할 수행 과제와 수학 학원 숙제를 핑계로 집에 가면 안 되냐고 나를 졸라 됐고, 평소 같았으면 여행 와서 졸라대는 아들의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했겠지만 공부를 앞세운 아들의 요청을 나 몰라라 할 수 있는 부모는 흔하지 않고, 나 또한 집에 가서 공부해야 한다는 말에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평소 여행과 같이 여행지가 멀었으면 아들도 이렇게 졸라대지도 않았을 텐데 집까지 거리가 20Km도 되지 않는 곳임을 알기에 날 계속 설득했다.


그렇게 졸라대는 아들을 무시할 수 없었던 난 아내와 상의해서 콜택시(파주는 카카오 택시를 불러도 오지 않음)를 불러 아들을 먼저 보내기로 결정했고, 딸아이의 표정도 심상치 않아 오빠 따라 집에 갈 거냐고 물어봤지만 다행히 딸아이는 남는다고 해서 아들만 콜택시를 불러 먼저 집에 보냈다. 그것도 자정이 넘은 시간에. 편안한 잠자리를 원했던 아들은 자신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인 '공부'를 빌미로 나를 이겼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쟁취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침대로 입성하게 되었다.


아들을 보내고 텐트 바닥에 누웠더니 한기가 조금씩 올라왔고, 아내가 챙겨준 핫팩이 아니었으면 꽤나 고생했을 법한 '야외취침'이었다. 밤새 뒤척인 잠으로 다음날 집에 오자 편안한 우리 집이 너무 좋았고, 휴일임에도 학원과 도서관을 다녀온 아들에게 난 고생한다는 한마디를 건넸다.


 "아들, 고생이 많아. 힘들지?"

 "고생은 뭘 당연히 고생해야지. 아빠. 내년까지는 쭉 고생해야 되는데 이제 시작이죠. 헤헤"


많은 입시생들과 마찬가지로 입시를 위해 고생하는 아들을 보니 잠깐이라도 시간 내서 가족 여행에 참석해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휴일 조금은 편하게 잘 수 있는 시간에 잠자리라도 편하게 잘 수 있게 집으로 보낸 결정이 잘 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날 불편했던 잠자리와 오랜만에 여행으로 인한 피로로 하루를 조금은 일찍 마치며 침대에 누웠다. 내 침대가 이렇게 편한 줄은 몰랐었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잠자리가 편하게 느껴졌다. 역시 내 집, 내 침대가 최고다 싶다. 아들이 말한 대로 내 집이 옳았다. 내 침대가 제일 편하다. 오늘은 꿀잠을 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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