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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Dec 02. 2020

아들의 10년 전 일기장

아빠는 늘 아들을 응원한다

"어, 아빠 뭐해? 오빠 예전 일기장 보는 거야? 오빠한테 다 얘기할 거야."


며칠 전 베란다 수납공간을 정리하던 아내가 놀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얼른 가봤더니 아내는 얼굴 한가득 미소를 머금고 내 손에 작은 공책 두 권을 건넸다. 공책 겉표지를 봤더니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들이 쓴 일기장이었다. 딱 10년 전 아들의 일상과 아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 당시에도 봤었던 기억이 있는 일기장이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읽어보니 그때 아이의 기분이 내 마음에  맞닿은 것 같아 가슴 따뜻해진다. 아내와 조용히 일기장을 읽으며 우리가 기억하는 아들의 하루를 다시 추억하며 잠깐 동안이지만 마치 10년 전 타임머신을 타고 그 날로 다녀온 것 같은 착각에 마냥 웃음이 났다.


  그렇게 고 아들의 책상 책꽂이에 살포시 꽂아 놓았던 일기장을 아들이 학원 간 오늘 저녁에 조용히 다시 펴 보았다. 10년 전 아들의 하루가 다시 오버랩되며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침대에 걸터앉아 아들의 일기를 더 들여다볼 때쯤 방으로 따라 들어온 딸아이가 따뜻한 추억 속에 있던 나를 끄집어냈다.


  "어, 아빠 뭐해? 아빠가 보는 거 오빠 옛날 일기장 아니야?"

  "응, 오빠가 10년 전에 썼던 일기장이야. 얼마 전에 창고 정리하다 찾았거든."

  "아빠, 그거 오빠 사생활 침해지. 오빠한테 다 얘기할 거야."  


  이렇게 딸아이와 티격태격하는 오늘도 아들은 이른 저녁을 먹고 학원을 가기 위해 나섰다. 요즘은 일주일에 5일은 학원을 다니는 아들을 보면 8살 때 아들이 더 생각이 난다. 오늘도 그런 하루가 될 것 같다.

  



아내와 난 요즘 아들을 보면 안쓰럽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아무리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이라 어쩔 수 없다지만 이제 1년밖에 남지 않은 고등학교 학창 시절을 하루도 편히 쉬지 못하는 아들을 보면 정말 부모 입장으로서 할 짓이 못 되는 것 같다. 아들이 어렸을 때만 해도 내가 사교육이라는 걸 시킬 줄 전혀 상상도 못 했지만 입시가 1년도 남지 않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뒷바라지가 이런 사교육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으니 나도 참 많이 변했나 싶다.


  아들이 고등학교 입학 후 첫 학기까지만 해도 학원을 보낼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아이도 학원을 가겠다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서 난 당연히 아들에게 사교육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항상 상위권이었던 아들의 성적이 사교육이 필요치 않을 거라는 내 생각을 더욱 그렇게 만든 것 같았다.


  고등학교 첫 학기가 지나고 나서 처음으로 학원을 보내달라고 아들이 이야기할 때에는 나 스스로가 참 많이도 못났구나 싶었다. 아들이 혼자 고민을 하다 하다 어렵게 얘기 꺼낸 걸 알기에 미리 눈치채지 못한 부모로서의 미안함이 크게 느껴졌다. 특히 얘기를 꺼내기 전까지도 다른 집에 비해 학원비라도 들지 않는 걸 다행이라는 못난 생각을 했던 나라서 더 미안한 마음이 컸었다. 그렇게 시작한 사교육은 이제 영어, 수학, 물리, 화학에 이르기까지 꽤나 과목수를 늘렸다.


  물론 두 아이를 키우는 외벌이 가장의 주머니로는 적지 않은 돈임은 분명하지만 공부하겠다는 아들의 마음을 알기에 아들에게 약간의 다짐만을 받고 응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학교, 학원, 독서실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돌다 집에 오면 늘 힘에 부쳐하고, 힘들다고 투덜대면서도  아내와 내가 걱정하지 않도록 목소리만은 밝게 집에 귀가하는 아들 모습이 오늘도 여전했다. 그래도 저녁은 집에서 먹으니 하루에 한 번은 서로 깨어있는 모습을 보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아들 왔어.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

 "헬로~오~~, 빠더. 아빠 어제저녁에는 함께 식사 못했으니 하루 만에 보는 거네요."


  아들은 그렇게 저녁을 먹고 잠시 거실에 앉아 피곤한 눈을 감고 졸다가 늦은 시간 자신의 전쟁터로 가방을 메고 나갔다. 이제는 나보다 더 넓어진 어깨와 훌쩍 커버린 키지만 책이 가득한 가방을 메고 나가는 아들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더 많이 지치고, 힘이 들어 보였다. 속담에 '자식 둔 부모는 알 둔 새 같다'라는 말이 있듯이 부모는 늘 자식의 신변을 걱정한다고 했는데 내가 딱 그 짝이다.


  며칠 동안 아들의 귀가 시간까지 거실에서 버텨봤다. 항상 공부하다 늦게 들어오는 아들에게도 미안했고, 아들이 오는 시간까지 거실에서 기다리는 아내도 안쓰러웠다. 하지만 다음날 출근과 업무를 봐야 하는 나로서는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에 취침은 무리가 있었다. 졸린 눈을 버티고, 소파에 기대어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아들의 현관 자동 도어록 여는 소리가 들렸고, 고생했다는 한마디로 어떻게든 응원을 보내려는 아빠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는지 아들이 한 마디를 했다.


 "아빠, 내일도 회사 출근해야 하는데 기다리지 말고 먼저 주무시지 그랬어요. 아빠가 매일 이렇게 기다리면 나도 독서실서 뛰어온다고요."

 "괜찮아. 아들. 암튼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 그럼 아빠 먼저 잘게. 씻고 일찍 자."


  이른 시간도 아닌데 튀어나온 말이 '씻고 일찍 자'였다. 이렇게 먼저 잠을 청한 날들 중 잠이 깊이 들지 않은 어느 날 잠결에 거실로 나왔다. 아이 방 문을 봤더니 방문 틈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이 보였다. 시계는 새벽 세시가 다 되어가는데. 당장이라도 가서 강제로 재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냥 조용히 화장실을 다녀와서 마음으로 아들을 응원하며 다시 잠을 청했던 게 여러 번이다. 이렇게 며칠을 생활하니 정말 회사에서도 졸리고, 퇴근해서도 졸려서 아들과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요즘은 그냥 원래 취침 시간에 잠을 청한다. 그래도 마음만은 아들을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아들도 알 것이라는 소심한 기대를 한 번 가져보면서 말이다.


  오늘 하루도 고생할 아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아이가 내 걱정하지 않도록 일찍 자고, 건강하게 아이들 곁에서 열심히 행복한 아빠로 남아있는 것. 오늘도 가방을 메고 현관문을 나서는 아이를 응원하며 아들에게 한 마디 했다.


 "아들, 아빠는 항상 아들 응원하는 거 알지? 오늘도 힘들겠지만 수고해.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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