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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Dec 09. 2020

2년 동안 가꾼 아내의 꽃밭을 잃었다

어디에나 불만 있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화단이 너무 예뻐요. 요즘 꽃들 보려고 일부러 산책을 나온다니까요


아내는 2년 동안 아파트 화단을 가꿔왔다. 아파트 화단 곳곳에 봄, 여름, 가을 형형색색의 알록달록 꽃들이 아파트를 들어서는 사람들을 반겼고, 그런 꽃을 가꾸는 아내는 꽃들을 반겼다. 늘어나는 꽃들을 보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올해는 화단에서 꽃을 가꾸는 아내를 향해 '좋은 일을 하시네요', '너무 예뻐요', '고생 많으세요', '복 받으실 거예요' 등의 칭찬 일색의 이야기들이 넘쳐났다. 그 푯말을 보기 전까지.




어떤 일이든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무언가 이익을 생각해 모인 집단이나 단체일수록 더욱 그런 성향이 강하다. 작은 소규모 모임이나 단체일수록 이런 특징이 적겠지만, 사람이 많은 조직이나 모임의 경우에는 이런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다양한 계층,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이 모이면 모일수록 이런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두드러지고, 표가 나기 마련이다. 주변에도 이런 사람들이 당신의 친목 모임이나, 사회생활을 이루는 조직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있고, 앞으로도 꾸준히 생겨날 것이다.


내게는 30여 년을 함께한 오래된 친구들이 있다. 이런 오랜 친구들은 초등학교 때 친구부터 고등학교에서 함께한 친구까지 5~6년의 격차를 두고 친구라는 이름으로 지금은 함께 나이 들어가는 녀석들이다.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내다 보니 각자의 성격이나, 성향은 너무도 속속들이 알고, 얘기를 안 해서 그렇지 학창 시절 말썽 부리고, 사고 쳤던 일이나, 결혼 전 여자관계까지 정말 이야기하기 싫은 민낯까지도 자세히 알고 있는 가까운 사이다.


20대에 어울릴 때는 서로를 잘 알면서도 그다지 주의할 필요가 없었던 게 말다툼을 해도 친구들끼리니 크게 싸움이 번질 일도 없었고, 삐쳐도 서로 금방 화해해서 그리 오래가지도 않았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다들 가족이라는 구성원들이 생겼고, 친구들끼리도 그 가족들에 대한 배려까지 고려해야 해서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는 데는 가끔 이런 불만들이 터져 나오곤 했다.


우린 친구들끼리 해마다 여름이면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우리의 의견 불일치나 불만들은 이 여행 계획에서부터 터져 나왔고, 다들 만족할 만한 여행은 식구들이 늘수록 점점 더 소원해져 갔다. 숙소를 구할 때도 늘 한, 두 가족은 불만이 생겼고, 여행 날짜를 잡는데도 한, 두 가족은 날짜가 맞지 않기 일쑤였다.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지내온 친구들끼리도 불만이 생기고, 감정 상하는 일이 생기는 걸 생각하면 살면서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혹은 내가 모르는 타인의 불만과 마주할 일은 자주 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말이다.


아내는 2년 동안 아파트 한쪽 화단에 꽃밭을 만들고, 가꾸는 중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마치 자신의 일인 양 이른 봄부터 정성스레 땅을 메고, 씨를 뿌리고, 매일 아침으로 물을 줘가면서 싹을 틔웠고, 영양제와 흙을 사서 아낌없이 베풀며 꽃을 피웠다. 워낙 꽃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사는 주변이 꽃으로 조금 더 밝아지고, 주민들이 함께 꽃을 보고 잠시라도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정성스럽게 꽃을 가꿨다. 그렇게 하나, 둘씩 꽃을 보이더니 작년 가을부터 그 화단을 지나는 아파트 주민들에게 예쁜 꽃밭을 선물했다. 아내는 꽃들 덕분에 여러 이웃 주민들과도 소통도 하게 되었다고 좋아했었다.


 "젊은 분이 좋은 일 하시네요. 꽃들이 너무 예뻐요."

 "감사합니다. 이제 곧 가을 되면 국화랑, 쑥부쟁이가 올라와서 더 예쁠 거예요."

 "기대가 되네요. 그럼 수고하세요."

화단을 지나다 가만히 꽃을 감상하는 어르신들이 늘어났고, 엄마 손을 꼭 붙들고 외출하는 아이들은 '이 꽃이 뭐예요, 저 꽃은 무슨 꽃이에요'를 물어보면서 젊은 엄마들을 괴롭히는 모습들이 우릴 미소 짓게 했다. 이렇게 아내의 꽃밭은 여러 사람들에게 잠시 머물다 가는 휴식터와 같은 명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고, 즐거워해 줄 줄 알았다. 지난 주말 쓰레기 분리수거 일에 그 푯말을 보기 전까지 말이다.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는 생각은 아내와 나의 욕심이었고, 누군가는 아내의 꽃밭을 시기하고, 싫어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꽃들을 정성스레 노력해서 가꿨던 아내는 조금은 놀라고, 속상해하는 눈치였다. 게다가 아내가 더 아쉬워했던 건 얼마 전에 척박한 아파트 화단 흙 위에 어렵게 구해온 영양 가득한 지렁이 흙을 골고루 뿌려놨었는데 누군가가 그 흙까지 싹 치워버렸다. 푯말을 꽂고, 흙을 치운 게 관리실의 결정인가 싶어서 난 분리수거 중이시던 경비 아저씨에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저희 화단에 '경작 금지' 푯말을 관리실에서 꽂았나요?"

 "아, 안녕하세요. 아뇨. 관리실에서 꽂은 게 아닌데요. 아마 아파트 주민이 꽂았나 봐요."

 "아파트 주민이요? 누가 꽂는지 보셨나요."

 "아까 쓰레기 버리러 온 남자 한 분이 저 화단 치우면 안 되냐고 클레임을 걸더라고요."

 "왜 치워달라고 하던가요? 다들 좋아하시는데."

 "네, 저도 다른 주민들은 다들 예쁘다고 좋아하시는데 왜 그러냐고 했더니 냄새가 난데요. 난 아무리 거기 가도 냄새가 안나던데.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관리실에서는 아무 얘긴 없으니까요"

  "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일단 관리사무소의 정식 방침이 아니라는데 안심을 했지만 누군가에겐 불편함이 있었다는 생각이 아내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다. 그러고 난 며칠 후 난 아파트 화단에 '경작 금지' 푯말이 개인의 행동이 아님을 알았다. 꽃밭이 있는 벽면에 '관리사무소'의 안내문이 '턱'하니 붙어있었고, 그 안내문의 내용은 화단을 가꾸고 있는 아내를 찾는 문구였다. 처음에는 아파트 주민 한 사람의 클레임에 관리실의 처사가 이해가 가질 않았고,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혀 얘기가 없다가 꽃이 다 져가는 겨울에 이제야 불만을 얘기한 그 주민분에게도 이해되지 않았다.


아내는 월요일 오전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서 화단을 가꾸는 사람임을 밝히고 정식으로 클레임의 내용과 화단에 대한 관리실의 태도를 듣고선 너무 안타까워했다. 불만을 제기한 주민의 불만 사유는 자신이 꽃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이었고, 처음 경비 아저씨께 불만을 얘기했던 내용(냄새가 난다)과는 전혀 다른 사유로 꽃밭을 치워달라는 불만이었다. 관리실의 태도는 지극히 사무적이었고, 아파트 화단은 사유지가 아니므로 주민의 민원이 들어오면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단, 꽃밭을 찬성한다는 아파트 주민들 다수의 이의 제기가 있을 경우 주민들의 찬반 투표 등의 표결을 붙여서 결정할 수는 있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아내는 그 주민분의 불만에 속상한 마음은 들지만 당장은 꽃밭을 치우기로 결정했고, 2년 동안 아파트 주민들에게 새로운 계절을 알리고, 작은 휴식처가 되어준 아내의 꽃밭은 오늘 아내의 손에 그렇게 사라졌다. 난 그 주민분의 '꽃 알레르기 때문에 치워달라'는 말이 사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만일 단순한 개인의 시기와 불만으로 꽃밭을 사라지게 만들었다면 그 사소한 불만 하나가 아파트에 살고 있는, 그리고 아파트를 찾는 많은 사람들의 휴식처를, 그리고 아파트 주민들을 위해 2년이나 꽃밭을 가꾼 아내의 정성을 무시한 행동임을 그는 알았으면 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난 다시 한번 알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더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신경 쓰이고, 싫을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호불호(好不好)가 있는 일들은 어디나 넘쳐난다. 우리 눈에 예뻐 보이고, 좋아 보이는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밉게 보이고, 싫은 일들이 될 수도 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다수의 의견이 정답이 아니듯이 말도 안 되는 황당한 불만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도 그 '경작 금지' 푯말은 꽃들이 없는 꽃밭을 조용히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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