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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Dec 11. 2020

이젠 정말 너와 결별해야 할까 봐

접힌 팬티 밴드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이렇다

에이~, 옷 입고 섰더니 뭐 아직까지는 봐줄 만한데.


언제부터인가 옷을 갈아입거나, 샤워를 하려고 탈의할 때면 항상 눈에 거슬리는 게 있다. 그건 바로 내 늘어난 허리살에 살짝 접힌 팬티 밴드. 예전엔 조금 오래되고 낡은 속옷만 조금씩 접히더니 이젠 새로 산 속옷들도  넓은 밴드가 매번 반이 접혀있는 모습으로 내 손길을 기다린다. 다시 펴줘 봤자 조금만 움직이면 다시 접히겠지만 난 누가 보지도 않는 내 팬티 밴드를 얼른 다시 펴고서 내 부끄럼을 감춘다.


30대까지만 해도 뱃살을 걱정하지 않았던 내게 몇 해 전부터 반갑지 않게 붙어버린 이 녀석은 내 몸의 일부분이지만 아껴줄 수 없고, 작별을 고하고 싶은 녀석이다. 아내는 몇 년 전부터 이 불어난 옆구리 살을 가끔씩 잡고 두께를 재보기 시작한다. 주간지에서 월간잡지로 넘어온 게 불과 1~2년 전인데 이젠 소파에 앉아있으면 아내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내가 이뻐서 보는 게 아니라 내 배가 걱정되어서 보는 것이라는 걸 알기에 편하게 기댔던 내 몸을 슬며시 곧추세우고 살며시 배를 집어넣어본다. 그렇게 자세를 바꿔서 완전히 사라질 배가 아니기에 딸아이까지 가세해 작년부터 사랑의 폭풍 잔소리를 종종 해댄다.


내가 주방으로 가기만 하면 딸아이는 조르르 따라나선다. 혹시나 모를 아빠의 일탈을 감시하기 위한 것임을 알기에 난 아빠를 걱정하는 딸아이의 마음이 이쁘게 보이다가도 아내의 비호를 받으며 옆에서 사사건건 딴지를 거는 딸아이가 얄밉게 보이기까지 한다.


 "아빠, 또 뭐 먹게?"

 "아냐, 나  마시러 왔어."

 "근데 물만 마시면 돼지 왜 호떡은 손에 들고 있어?"

 "유통기한이 내일까진데 버리기 아까워서 아빠 배에 버리려고 그러지."

 "헐... 안~돼, 아빠! 엄마~ 아빠 또 뭐 먹으려고 해요."


난 담배도 피우지 않고, 술도 맥주를 조금 자주 마셔서 그러지 폭음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과자나 군것질은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다. 아마 이번에 건강검진 결과가 좋지 않은 것도 이 군것질이 한 몫했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진 살이 찌는 체형이 아니어서 그런지 몸무게가 키를 앞지르는 일이 없었고, 지금도 내 몸무게는 키를 앞지르진 않았다. 참고로 내 키는 170 센티에 조금 미치지 못하고, 몸무게는 66킬로이다. 다들 그러겠지만 남자들이 키 얘기하면 대충 반올림을 많이 한다는 것 정도는 상식이니 참고하시라.


나름 표준에 근접한 몸무게 때문에 옆구리에 살이 붙는 것도 몇 년 전까지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작년, 올해에 들어오면서 조금씩 나오기 시작한 배와 최근 받았던 건강검진 결과로 난 스스로 관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코로나가 오기 전까지는 꾸준히 헬스장도 다녔고, 자주 걷기도 했는데 이젠 코로나를 핑계로 운동을 하지 않는다. 정말 운동하는 방법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은 대체적으로 군것질을 좋아하지 않는다. 과자를 사놓아도 내가 먹지 않으면 유통일이 다 되도록 그냥 봉지채 굴러다니기 일쑤다. 하긴 이 과자를 사는 것도 ''여서 아이들이 먹지 않는 걸 탓할 수는 없다. 몸에 좋지도 않은 과자를 아이들이 안 먹는 것에 오히려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난 아내와 연애할 때도 과자를 늘 갖고 다녔다. 아내 말로는 데이트할 때에도 늘 내 가방 안에는 과자가 들어있었고, 함께 걷다가도 입이 심심하다고 하며 가방에서 과자 봉지를 종종 꺼내 물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마트를 했으니 과자 조달은 신상부터 즐겨먹는 과자까지 어렵지 않게 준비했었다. 참 오랫동안 쓸데없이 갈고닦아 온 습관이다 싶다.  


며칠 전 어머니 제사로 아버지가 지방에서 올라오셨다. 아버지는 일흔이 넘으신 나이에도 아직까지 일을 하신다. 몸을 쓰시는 일을 하셔서 그런지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체형이시다. 휴일 아버지와 나란히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데 아들이 갑자기 옆에 앉더니 아버지 배와 내 배를 번갈아 가면서 뚫어지게 본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 배를 만져보며 평소같이 않게 '배시시' 웃고는 내게 비수를 꽂았다.  


 "아빠, 대단하십니다."

 "응? 뭐가. 아빠 배를 만지고서는 갑자기 대단하다니 무슨 뜻이야 아들."

 "아니, 할아버지도 배가 안 나왔는데 아빠 배는 어쩔 거예요. 뱃살로 보면 우리 집 탑이네. 과자 끊어야겠어요."


현직 난 우리 집에서 가장 무거운 남자다. 내가 생각하는 '무거운 난' 집에서 가장 무서운 남자다. 이제 곳곳이 고장 나고, 아플 나이인데 허리둘레가 자꾸 굵어지는 난 내가 두렵다. 아내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이 있는데, 난 다른 건 알아서 잘하면서 이 군것질은 좀처럼 아내의 말을 잘 듣질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떡이 생기지 않더라도 아내 말을 잘 들을 생각이다. 나의 건강과 가족의 행복을 지키려면 우선 내가 건강해야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과자를 끊어야겠다. 올해까지만 하는 걸로 하고 내년부터라는 단서를 달고 싶기는 하지만. 어찌 됐든 살다 보니 헤어짐이 필요한 것들도 생긴다. 이제 정말 너희 녀석들과 결별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젠 정말 안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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