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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Dec 28. 2020

부서 안에서 우리는 콩쥐였다

그는 불편함이라고 쓰고 형평성이라고 읽었다

 김 팀장, 당신은 영업도 아닌데 사업팀 이 부장보다 연봉이 많아. 많아도 너무 많아



다니던 회사를 5년 만에 옮기게 되었다. 이유야 여러 가지지만 재직 중이었던 회사의 재정상태가 가장 큰 문제였다. 회사 운영 상태가 어려워지면서 급여를 제대로 못 받는 달이 자꾸 늘었고, 내 수입이 전부인 외벌이 가장으로서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5년을 함께 일한 동료, 후배들과 작별하고 입사한 회사는 처음엔 삐걱대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에서의 입지나 자리를 잘 잡아갔다. 하지만 관리자(팀장)로 입사는 했지만 좁은 사무실 때문에 기존 다른 타 부서원들 중간에 자리를 잡고 앉을 수밖에 없었고, 어쩔 수 없는 조치였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늘 무시받는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불편한 마음을 갖고 3개월이 흘렀고, 난 새로운 사옥으로 이사를 간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굴러온 돌이기에 자리 욕심을 낼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부서별 배치 및 개인 자리 배치도를 받아 들었다. 도면도를 받아 들고 내가 속한 부서의 위치를 쫓았고, 생각지도 못했던 위치에 부서의 이름이 쓰여 있어서 기쁨 반, 설렘 반으로 이사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이렇게 도면상으로 만족했었던 자리는 실제 이사를 하면서 더욱 마음에 찼고, 생각지도 못했던 근사한 자리를 차지해 왠지 대우받는 기분이 들어 으쓱하기까지 했다. 등 뒤는 바로 바깥 창이 있고, 독립적인 파티션에 정면으로는 부서원들이 나란히 앉은 그런 전형적인 부서장의 자리였다. 타 부서 관리자들이 찾아와 무척이나 부러운 시선을 던지고 가곤 했다.


그렇게 부러움을 받으며 마치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았고, 스스로가 근사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당시 내 자존감은 하늘을 찔렀었던 것 같다. 그것이 마치 나 자신이 일군 것인 양 스스로가 잘못된 판단을 했던 것이다. 사실 내 자리 옆에 떡하니 부서 매니저의 파티션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고, 그 당시 내 매니저의 직급이 회사 둘 밖에 되지 않는 등기 임원인 데다 매니저 휘하에 소속 팀이 우리 팀 밖에 없어서 당연한 자리 배치였다. 아쉽게도 내가 좋은 자리에 앉게 된 건 나와는 무관한 부서장의 파워였다.


이렇게 힘 있는 부서장의 그늘 아래 3년을 보냈고, 회사 내 대규모 조직 개편으로 부서장이 바뀌게 되었다. 기존에 있었던 A부서는 매출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부서였다고 하면, 새로 옮긴 B부서는 사업부 밑에 팀으로 부서장도 사업부의 본부장이 맡았다. 이렇게 우리 팀은 매출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부서로 모두 전배가 되었고, 이렇게 옮겨간 부서에서 적응하며 하루하루를 지냈다.


어느덧 새로운 부서로 옮긴 지 1년이 지나고 직장인들 한해 수확의 시즌인 인사평가 결과에 따른 연봉 협상,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통보의 계절이 왔다. 해마다 오는 일이지만 한 해 성적표를 받아 드는 기분이란 매년 직장인들에게는 큰 기대도 없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는 것도 아닌 그런 조금의 설렘 그 후 아쉬움과 마지막으로 실망감을 안겨주는 기간이다.


는 내지 않았지만 내게도 그런 기간의 하루하루였고, 한 직장에 있으면서 전년도에 비해 큰 인상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남들만큼의 인상을 원하는 마음만은 비워내지 못하는 게 욕심이라면 욕심이었다. 게다가 조금의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전년도의 낮은 인상에 대한 약간의 보상이 기대되는 올해였다. 그렇게 손꼽아 기다리며 하루를 보내던 중 인사팀으로부터 메일이 왔고, 떨리는 마음으로 확인했던 난 적지 않게 실망을 하게 됐다. 적혀 있는 인상률은 평소 받는 수준의 인상률이었고, 주변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있어서(기술직은 평균 인상률 A 퍼센트) 그에 미치지 못한 평균 인상률이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부서원들도 비슷한 인상률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난 부서장에게 대표이사에게 연봉 재조정을 건의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회사의 방침이니 따르라'는 것이었다.


부서장의 지시라 따를까도 싶었지만 개인의 일이 아닌 팀 리더로서의 직무라는 생각에 인사팀장에게 팀의 인상률에 대한 불만을 건의했고 사업부 소속의 기술팀으로서 다른 기술팀에 준하여 평가를 요청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회사의 방침이란 이유로 입을 닫기에는 1년여를 뛰어다니며 함께 고생했던 팀원들의 노고와 희생을 스스로 낮은 가치로 인정하는 모습이 싫었다. 다행히도 인사팀장은 대표이사께 정식 보고했고, 최종 대표이사 심의 후 팀의 성과 및 형평성 등을 고려하여 적정한 인상률을 다시 책정하여 개인들에게 통보했다. 다들 만족스러워했고, 고마워하는 눈치였다. 부서장 한 분만 빼고.


이렇게 조치 후 인사팀에서도 부서장에게 개인들 연봉 결과에 대한 메일이 간 듯했고, 부서장은 결정된 연봉의 서명을 받기 위해 조용히 나를 불렀다.


 "김 팀장, 대단해. 연봉에 대한 조정안을 직접 인사팀장에게 건의하고."

 "이사님께는 죄송합니다. 그냥 있긴 너무 억울하고, 아쉬워서 얘기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인사팀장에게 건의했습니다."

 "김 팀장은 자기 연봉이 적다고 생각해요? 영업도 아닌 사람이 사업팀 이 부장보다 연봉이 많아. 많아도 너무."


난 그 순간 부서장이 이야기한 말이 직원들 간의 형평성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닌 내 급여가 단순히 많은 것에 불만인 것을 느꼈고, 자신이 뽑았던 자기 사람보다 타 부서에 있다가 팀 전체가 전배 되어 굴러온 돌에 대한 시기임을 알았다. 그는 1년간 우리 팀이 이룬 성과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칭찬에 인색했고, 최초 인사평가 결과가 다른 기술부서에 비해 박하게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짐작케 했다.


사실 내가 몸 담고 있던 사업부의 영업팀은 일 년간 목표했던 매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이에 따른 책임으로 연봉 인상률이 우리 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한 부서에 두 팀이 있는데 한 팀은 높은 고가를 다른 한 팀은 낮은 고가를 받는 것이 부서장의 입장에서는 한편으론 불편했을 듯했다. 하지만 현명한 관리자라면 적절한 평가를 통해 한 명의 구성원이라도 좀 더 나은 평가 결과를 받을 수 있도록 애써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두 팀 모두 자신이 관리하는 조직임에는 분명한데 그 위치에서 선을 긋고 있는 건 어른으로서 행동이 아니지 않았을까. 난 그날 다른 부서에 얹혀있는 우리 팀을 본 것 같았다.


내가 잘 났다는 생각은 안 했지만 이 날 만큼은 팀 인사평가 재고 건의 요청에 대한 내 행동은 스스로를 칭찬할 만큼 잘 한 행동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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