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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Jan 27. 2021

어떤 직장 상사의 최후

당신 회사에도 빌런은 있다

 "야, 네가 아픈 것도 아니고, 애가 아픈데 네가 휴가를 왜 쓰냐?"


여러 직장을 경험하면서 난 다양한 직장 상사들을 봐왔다. 업무의 역량이 출중해 회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차지하는 능력자, 아랫사람에게는 원 없이 자상하고, 윗사람에게 쓴소리를 가리지 않는 강직한 선구자, 능력치는 사원만 못한데 창업 멤버라는 감투로 임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월급 루팡 등 상사들의 성향, 인성, 능력에 따라 분류되는 상사의 타입은 다양하다.


이런 상사들 중에서도 최악 중의 최악의 상사는 자신이 없으면 회사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모든 직원들이 자신을 좋아할 거라는 착각에 빠져있고, 직원들에게 관심이 지나쳐 간섭을 관심으로 오해하고, 거기다 후임의 능력을 자신의 것인 양 가로채는 등 다양한 타입의 유형을 두루 가지고 있는 멀티형 상사가 있다. 나쁜 습관과 생각들을 하나만 가지고 있기도 힘든데, 한꺼번에 이렇게 나쁜 습관들을 함께 갖고 있는 것도 아마 상사의 욕심 때문일 듯하다. 난 이런 상사를 직장 내에서 빌런으로 정의한다.


혈연과 학연으로 엮이지도 않았으면서 해준 것 없이 희생만을 강요하며 말로는 가족 같은 회사를 표방한다. 상사(빌런)는 사실 가족이면 이러면 안 되지 하는 일들을 비일비재(非一非再)하게 지시하고, 자신이 편하고자 직원들에게 의리와 희생을 강요하며 '가족'이라는 허울 좋은 말을 붙인다. 영화에서는 빌런들의 최후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의 결말이지만 유독 직장에서는 이런 빌런들이 오히려 시간이 가면 갈수록 회사 내에서 더 힘을 얻고, 남들보다 더 잘 먹고, 잘 사는 게 보통의 결말이다.


하지만 꼭 그런 결말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빌런 상사의 결말은 권선징악(勸善懲惡)에 맞는 최후로 회사를 떠났다. 그의 악행은 일일이 나열하면 입이 아플 지경이고, 내가 알지 못하는 그의 악행도 아마 널리고 널렸을 것이다.


그의 그런 악행들을 조금 들여다보면 회사 내 그의 위치에 있으면 무능력도 악행이다. 그가 영업 수장으로 자리한 지 꽤 시간이 지났을 때이다. A 고객사를 전담으로 맡고 있던 영업사원이 기존 사업 확장의 일환으로 사업이 확대되면서 A 고객사에 자신이 몸담고 있던 부서의 부서장(빌런)을 데리고 간 적이 있다. 물론 담당 고객사인 A 고객사에 잘 보이기 위함이었고, 조금 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함이었고,  확대되는 사업에 회사 차원의 지원을 약속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상사(빌런)는 고객 앞에서 말도 안 되는 갑질과 불필요한 제품의 단점을 얘기하는 바람에 영업사원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사업은 흘러갔고, 결국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이 모든 책임은 담당 영업사원의 몫으로 돌아갔다. 그 이후 모든 영업사원들은 고객사에 자신들의 부서장(빌런)을 데리고 가지 말아야 한다는 불문율이 생겼다.


또 한 가지 일화는 5인 이상의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근로자라면 모두 연차 휴가가 있기 마련이다. 이는 근로기준법상 개인의 권리이자, 응당 회사에서 근로자에게 쉴 권리를 줘야 하는 의무이다. 하지만 그 상사(빌런)가 관리하는 부서의 직원들은 그 연차 휴가 한 번 쓰기가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려웠고, 정작 개인적인 사유가 있어 필요시에도 휴가 결제권자의 지나친 간섭으로 승인 절차 또한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박 차장, 너 잠깐 이리 와 봐"

 "네, 본부장님. 뭐 지시하실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야, 휴가는 왜 올렸어? 무슨 일 있어?"

 "애가 갑자기 아파서요. 오늘은 아내가 아이와 있는데, 내일은 아내도 회사에 일이 있어서요"

 "야, 네가 아픈 것도 아니고, 애가 아픈데 네가 휴가를 왜 쓰냐?"


결국 박 차장은 휴가 승인이 나지 않아서 아내에게 사정을 얘기했고, 박 차장의 아내는 자신의 회사에 얘기해서 휴가를 연장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꽤 오래전 이야기지만 그 이후로도 직원들은 연차 휴가 쓰는 것을 몹시 불편해했고, 건건이 그(빌런)는 직원들을 간섭하며 편하게 연차 휴가를 소진하게 두지 않았다.


이렇게 영원할 것 같던 그(빌런)의 직위와 회사에서의 영향력은 지나친 오만이 화가 되어 그의 생명력을 갉아먹었고,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위치가 영원할 거라는 그의 오만과 착각이 모든 걸 잃고 쫓겨나는 조금은 허망한 끝을 맞고 말았다. 누구 하나 '수고했다', '안타깝다' 등의 위로와 응원의 말을 떠나는 그에게 건네지 않았고, 좀처럼 보기 힘든 히어로가 없는 마무리로 권선징악을 보여준 시원한 결말이었다.


세상 일이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는 않다. 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매번 당하는 사람만 당하지는 않는다. 현재 자신이 가진 힘이나 위치를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사람 위에 사람 없다는 생각으로 공정과 공평을 실현해야 함을 힘 있는 상사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게 영원할 수는 없어도 자신이 누리는 무대에서 최소한 '롱런(Long-run)' 할 수 있는 길이다.


가끔은 공평함을 넘어, 믿기 힘들지만 공정의 가치를 보여주는 일들이 간혹 있다. 모든 일에 인과응보, 권선징악과 같은 일이 맞아떨어질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의 내일은 어떻게 펼쳐질지, 당장의 나의 미래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인간세상에 벌어지는 일은 복이 화가 되기도 하고, 화가 복이되기도 하니 눈 앞에 벌어지는 결과만을 가지고 너무 연연하지 말라는 이야기처럼 당장의 일희일비하는 일에 연연치 않고, 꾸준히 자기 자리에서 작은 소리라도 내다보면 한 발 더 나은 내일, 조금 더 나은 미래가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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