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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Feb 10. 2021

아내를 계모라고 부르는 딸아이

딸아이 때문에 웃는다는 아내

 "어머니~~!!!"

 "왜~애? 따님!"



코로나로 집에만 종일 붙어있는 아내와 딸아이는 틈만 나면 난리다. 퇴근하면 난 아내와 아이의 중간쯤에서 중재하기 바쁘다. 아내는 중2 사춘기가 제대로 왔다며 말을 너무 안 듣는다고 투덜댄다. 그런 아내에게 딸아이는 '엄마'가 아마도 '계모'일 것 같다고 날보고 자신의 엄마를 데리고 오라고 말도 안 되는 투정을 부린다.


아들이라도 집에 있었으면 조금은 덜했을 분쟁인데, 올해 고3인 아들은 학원에, 독서실을 쫓아다니느라 저녁 먹을 때나 되어야 귀가한다. 그런 이유에 사회적 분위기까지 더해져 오전부터 저녁까지 어쩔 수 없이 둘이서만 '착~'하고 반나절을 붙어 지내다 보니 아마도 둘 다 심심하긴 한가보다.


하루는 퇴근을 하고 들어갔더니 내 도시락 싸주는 일로 아내와 딸아이는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 우리 야무진 어머니"

 "왜~~ 애? 따님!"

 "어머니, 아빠 도시락을 내가 싸주면 안 될까요? 도시락 싸주고 용돈 벌게요"

 "그럼 도시락 반찬도 네가 다 해야지"

 "하하, 그러면 안 되겠네. 엄마가 반찬 해놓고, 내가 싸는 것만 하면 안 될까"

 "돈 벌기가 쉬운 줄 아니? 날로 먹으려고 하면 안 되지"

 "엄마 미워~. 아빠~, 도시락 내가 싸주면 안 될까요"


도시락을 싸준다는 딸아이 마음이 예쁘고, 사랑스럽기는 하지만 일곱 시도 안 되는 시간에 일어나 내 도시락을 싼다는 게 딸아이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 것을 알기에 난 아내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하루, 이틀 싸줄 수 있다고 해도 주말에 밥 먹으라고 그렇게 깨워도 잘 일어나지 않는 딸아이가 평일 그것도 매일 일어날 거라는 기대를 하기는 어려웠다. 일어나지도 않는 딸아이를 도시락 싸 달라고 깨우는 것 자체가 지각을 초래할 수도 있는 너무나 큰 모험이었다. 딸아이에게 미안하지만 내 도시락은 계속 아내가 싸는 것으로 내부 방침을 정해서 딸에게 조심스레 통보했다. 쏴~리~(So~r~ry~)!!!




며칠이 지나고 퇴근 후 저녁에도 그 도시락 문제로 아내와 딸아이 간에 입씨름이 한창이었다. 내 도시락 문제인 줄 알고 참견을 하려고 했더니 딸아이는 자신도 도시락을 싸 달라고 아내에게 항의 중이었다.


 "엄마, 나도 아빠처럼 내일 도시락 싸주세요"

 "아니 하루 종일 밖에도 나가지 않는데 도시락은 왜?"

 "싫어요. 아빠만 맛있는 도시락 먹고, 나도 도시락  먹고 싶어. 어머니~ 제발요"

 "에휴, 지수야 우리 집에 아빠 도시락 말고 또 도시락이 어디 있어. 도시락이 없어서 안돼. 그냥 식판에 줄게"

 "유치원 때 썼던 플라스틱 도시락 있잖아요. 그러지 말고 내일 싸줘요"

 "아휴~ , 알았어. 알았으니까 좀 징징대지 마"  


이 분쟁은 결국 딸아이의 승리로 끝났지만, 하루가 지나서 아내가 다시 어떤 입장으로 아이에게 대응할지는 내일이 되어야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집에 있으면서 도시락을 싸 달라는 딸아이나 이런 딸아이와 언쟁하는 아내나 내겐 둘 다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다음날 아침, 난 오늘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조용히 빌며 출근을 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아내에게서 톡이 한 통 왔다.  톡에 있는 메시지와 사진 때문에 한참을 웃었고, 난 엔도르핀 가득한 오후를 보냈다.

 

 (톡 내용 일부)

 'ㅎㅎ, 제가 딸내미 덕분에 하루하루가 즐겁네요'

 '예쁘게 싸 달라고 하더니'

 '러고 있어요'



퇴근하고 오늘 저녁도 아내와 딸아이는 또 '아웅다웅'이다. 오늘의 논쟁 테마는 아내가 3월부터 일을 시작한다는 걸로 딸아이가 '반대'에 나섰다. 고3인 아들도 별 이야기가 없는데 중학생 딸아이가 엄마 없으면 심심하다고 난리에, 앙탈이다. 그 또래의 애들은 엄마가 집에 없으면 좋아한다는데 우리 딸아이는 엄마를 너무 좋아하나 보다. 이런 딸아이를 두고 아내는 집에 있어봤자 서로 괴롭히기만 하지 않냐고 딸아이의 반대 의견에 반박을 하고 나섰다.


 "딸! 솔직히 집에 있으면 엄마가 네 괴롭힘 때문에 너무 힘이 들어 나가야겠어. 너도 엄마가 맨날 너 괴롭힌다고 그랬잖아"

 "몰라요, 몰라. 울 엄마는 정말 계모인가 봐. 날 두고 일하러 가겠다고 하고"

 "아들, 솔직한 말로 집에서 보면 누가 더 괴롭히고, 누가 괴롭힘을 받는 거 같아?"

 "내가 봐서는 쌍방이야. 6대 4 정도"

 "누가 6인데?"

 "엄마가 4고, 지수가 6 정도 될래나"

 "들었지? 오빠가 하는 말?"

 "우왕~~, 엄마는 정말 계모야. 아빠 빨리 우리 엄마 데려와"


오늘도 퇴근하고 가족들 때문에 또 웃는다. 변하지 않는 건 없다지만, 세상이 다 변해도 이 따뜻한 울타리만은 소중히 지키고 싶다. 사는 게 뭐 별건가. 전쟁터 같은 일터에서 치열하고, 힘겹게 싸우다 이렇게 따뜻하게 돌아올 내 집, 가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을.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가족들 웃음과 함께 저문다.


조금은 늦은 저녁 딸아이가 누워있는 내게 와서 내 머리에 무언가를 발라서 만지더니 한참을 웃는다. 그러고는 내게 거울을 가져다주고는 또 한참을 웃는다. 거울 속에 있는 내 머리는 딸아이가 쓸어놓은 대로 한쪽으로 쓸려서 위를 보며 세워져 있었다.

 "엄마, 오늘부터 아빠는 슈퍼베이비야. 엄마는 오늘부터 슈퍼베이비랑 살아야 해. 날 괴롭힌 벌이예요"

 '지수야, 그 벌을 왜 아빠가 받는 것 같지?(실제로 아내는 웃기만 한다)'



이번 주 금요일과 일요일 매거진은 한 주 쉽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모두들 설 명절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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