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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Mar 12. 2021

그는 비혼 주의가 아닙니다

긴 솔로 기간과 짧았던 연애 기간

내게는 처남이 하나 있다. 우린 꽤 오랜 기간 주민등록등본 내에 같은 세대로 묶여서 함께 살았었다. 처남은 나와 칠 년이나 터울이 있는 아내의 막내 동생이다. 아내와 연애시절 고등학생이었던 처남은 아내에게도, 내게도 그 시절부터 철부지 남동생이었다.


한창 처남이 고등학교 3학년 진로를 고민할 때 그래도 형이라고 대학을 권유했던 것도 나였다. 물론 내 얘기를 듣고 대학 진학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당시에는 그래도 '네', '네' 하면서 내 얘길 잘 경청하며 들었던 10대 시절의 처남이 생각난다. 처남은 군에 있을 때도 부대가 경기도(강화)라 휴가나 외박을 나오면 빠지지 않고 우리 집에 들렀었다.  


지금은 처남도 불혹의 나이를 넘었고 같이 늙어가는 처지이지만, 칠 년의 차이는 내가 30대 때만 해도 크게 느껴졌다. 처가가 지방이다 보니 대학 졸업 후 처남은 구직을 위해 서울로 왔고, 서울로 올라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친구 집에 있다는 녀석을 설득해 우리 집에 들어오라는 제안도 내가 했었다.


그렇게 처남은 우리 집에 들어와 세대 구성원이 되었고, 진짜(?) 가족으로 함께 살게 되었다. 그렇게 가족으로 함께 한 시간이 무려 햇수로 8년이었다. 이제는 독립(?)을 했지만 함께한 세월이 더해져 독립해 나가 있어도, 나이가 들어도 늘 막내 동생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가 마흔이 넘었는데도 아직까지 솔로라 걱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 남자는 결혼하고, 애 아빠가 되어야 철이 든다는 말이 있듯이 처남은 아내와 내겐 그냥 다 큰 '어른이' 같았다.


처남은 월급 잘 나오는 직장도 잘 다니고, 키도 적당(177 cm)하고, 외모도 그럭저럭 봐줄 만하고, 옷 입는 센스도 좋은데 아직까지 솔로다. 솔로인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처남 직업의 특수성 때문이다. 하고 있는 직업 특성상 지방 출장도 잦고, 한 번 출장을 가면 공사가 끝날 때까지는 짧게는 한 두 달, 길게는 몇 달을 지방에서 일해야 하니 뭐 연애할 시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힘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일에 쫓기면서도 친구들을 좋아하고, 의리남인 이유로 친구들 대소사는 모두 쫓아다니는 편이고, 주변에 친구들도 많아서 행사가 많을 때는 매주 지방으로 결혼이며, 돌잔치를 쫓아다니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아내와 난 처남이 자신의 친구들한테 축의금은 열심히 넣고는 있는데 회수할 날이 있으려나 하는 걱정 섞인 푸념을 늘어놓은 도 여러 차례다.


이렇게 긴 시간을 솔로로 지냈던 처남에게 얼마 전에 여자 친구가 생겼다. 여사친이 아닌 '여친'. 이 일을 알게 된 건 불과 한 달이 지나지 않았다. 코로나 '5인 집합 금지'로 인해 지난 설 명절엔 아내와 난 처가를 방문하지 못했다. 아들이 고3이라 미룬 것도 있지만, 처남과 처제가 처가에 갔기 때문에 우리는 집합 금지가 풀리면 따로 방문드리기로 장모님께 말씀드렸다.


연휴 전날 처남에게서 연락이 왔다. 전화한 이유인즉슨 '정O장'에서 홍삼 선물세트를 사려고 하는데 아내의 아이디를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앞뒤 할 말은 모두 자르고 아이디만 알려달라는 통에 아내는 큰 의심 없이 아이디를 알려줬고, 이젠 더 이상 갈 일 없는 서울 소재의 정O장 지점(현재는 고양시 지점 이용)이라 누적된 포인트까지 사용하라고 알려줬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아내와 난 '도대체 쟤가 누구에게 홍삼을 선물하려고 하는 거지' 하는 의심은 잠깐 들었지만 '설마'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의 의심을 지워버렸다.  


하지만 '설마''레알'로 바뀌는 데는 만 하루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설 연휴 첫째 날 저녁에 서울서 내려간 처제에게서 놀라운 소식이 카톡을 통해서 왔다.



 '언니, 창수 여자 친구 있는 거 같아. 자세한 건 조금 더 알아보고 이따가 톡 줄게'


아내를 포함한 우리 가족 모두는 기쁨과 놀라움으로 빠른 시간 내에 정확한 소식을 듣고 싶었고, 거의 실시간에 가깝게 처제는 처남을 취조하여 들은 이야기를 '카톡' 중계로 우리에게 소식을 전했다. 카톡을 통해서 들었던 소식을 정리해보면 '여자 친구가 생겼다', '나이차는 조금 많이 나는 편',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정도였다.


우리 집도, 처갓집도 이 놀라운 소식에 들뜨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가까이 있었으면 아내는 처남을 불러다가 꽤 많은 걸 더 물어봤겠지만 전화상으로는 워낙 무뚝뚝한 '녀석'이라 쉽게 입을 열지 않을 것을 알기에 더는 추궁하지 않았다. 우린 처남이 처한 조건을 너무 잘 알기에 처남을 구원해 준 천사(?) 같은 여성분이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측은한 마음도 들었다. 처남의 조건을 굳이 나열하자면 아래와 같지 않을까 싶다.


방년 41세 (그래도 만으로는 아직 삼십 대)

누나 세 명(시누이가 셋~ㅠㅠ  영희 씨 어쩔 거야)

일에 치여 쉽게 시간이 나지 않음

지방 출장이 많음

모아 놓은 재산은? 글쎄


우리 아이들도 삼촌의 연애 소식에 무척이나 기뻐했고, 딸아이는 드디어 삼촌이 결혼을 하는 거냐고 희망 섞인 말을 다.


일주일 전 아내와 통화하던 처남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걸 사주라고 30만 원을 아내 통장으로 보냈다. 다른 날은 몰라도 조카들 생일이나 입학식, 졸업식 등은 꼭 챙기긴 했지만 뭐 딱히 이벤트가 필요한 날도 아닌데 처남은 거금을 썼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고, 딸아이는 고마운 마음을 담아 삼촌(처남)에게 카톡을 보냈다. 이렇게 카톡을 보내고 나서 자신이 보낸 카톡에 대한 삼촌(처남)의 답글을 보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내와 날 보며 얘길 꺼냈다.


 "엄마, 삼촌 여자 친구가 생기긴 했나 봐. 내가 고맙다고 했더니 나한테 '사랑한다'라고 톡 보냈어"

 "그래? 원래 지수 널 무척 좋아하긴 했지만 그런 표현은 좀처럼 안 하는데. 헐~ 별일일세"

 "그러게 여자 친구가 생기더니 세상도 아름답게 보이나 보네"

 "엄마, 그럼 삼촌 드디어 결혼하는 건가"


그렇게 솔로로 보낸 오랜 시간을 깨고 처남은 연애를 시작했고, 이렇게 시작한 연애에 결말이 해피 엔딩이길 온 가족이 간절히 바랬다. 다들 말은 안 했지만 다른 방법으로 엄청 티를 내면서. '5인 집합 금지'가 풀려도 연애할 시간을 뺐을까 봐 부르지도 못할 거 같은데 그래도 다음에 처남을 집으로 한번 불러 또 형 노릇을 한번 해야겠다. 정말 축하한다고.



그러고 어제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설마 설마 했는데 처남이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는 소식이었다. 자세한 건 당사자인 처남을 통해 듣질 않아서 모르지만 아내가 장모님과 통화 중에 나온 말이니 사실일 거라고 얘기했다. 아마 일주일 전에 아내와 통화할 때 이미 헤어지고서 속상해서 술 한잔 하던 중에 울적해서 아내에게 전화했고, 전화한 김에 아마 조카들 용돈을 챙겼을 거라는 얘기였다.


오랜만에 찾아온 인연이었는데 너무도 짧게 스쳐간 것 같아 오히려 실감이 나지 않는다. 집안 모두가 들썩였던 처남의 짧은 만남은 그렇게 일단락이 되었다. 자발적 비혼이 되어버린 것 같아 늘 마음이 쓰였었던 처남에게 이번에는 '봄이 오는 건가' 기대를 했지만 아직은 긴 겨울이 끝나지 않았음을 확인한 두 달이지 않았을까. 그래도 우리 가족 모두 응원하고 있으니까 자발적 비혼 주의하지 말고, 얼른 자기 짝 만나서 솔로 탈출하기를 이 글 쓰면서 간절히 빌어본다.


파이팅!!! 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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