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추억바라기 Mar 29. 2021

가족의 이유

멋진 수식어 있는 긴 말보다 따뜻한 말 한마디와 포옹이 필요할 때

올 한 해가 아들에게는 열아홉 평생에서 가장 힘든 한 해이지 싶다. 이제 막 3개월이 지났지만 아들에겐 다시 지내고 싶지 않은 2021년일 것이다.



처음 고양시에 이사 왔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5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있고, 아이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학년이 오르고 학교가 바뀌었다. 두 아이 모두 적응에 시간도 걸리고, 힘이 들었지만 연착륙에 모두 성공했다. 큰 아이는 중학교 1년을 채 다 보내지 못하고 전학을 왔고, 그 시기가 한 창 예민했던 시기여서 더욱 신경이 쓰였었다. 평소보다 말수는 조금 줄었지만 크게 티는 내지 않아서 아들의 상태를 잘 몰랐다. 아들은 조금씩 엇나가는 것 같은 행동이나 모습을 가끔 보이기도 했었다. 시간이 지나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런 행동들이 사춘기 시절의 아이들이 의례 지나가는 열병 같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고서는 그 당시 조금은 무지했던 내가 부끄러운 적도 있었다.


이런 아들을 볼 때마다 '무슨 일이 있냐', '왜 그랬니' 등의 말들로 아들을 다그치고, 시시비비를 따지려 들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아들은 아들 나름대로 변화된 환경과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사춘기와 열렬히 싸우고 있다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난 처음 사춘기 아들을 둔 초보 아버지 티를 '팍팍'내며 우린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 시절의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롤러코스터 같은 기분을 종종 보이며 입을 닫고, 말을 걸어도 답을 하지 않던 아들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고, 그런 아들과 가끔 마찰을 빚곤 했었다. 아마 아이들뿐만 아니라 내게도 당시에는 회사의 여러 가지 문제로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게 자식임에도 말이다. 아마 우리 가족에겐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왔을 당시가 변화된 환경 등으로 인해 모두 힘이 들고, 적응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그래도 지금의 우리가 있었던 건 아마도 가족이라는 존재 자체의 힘이지 않을까 싶다.


늘 회사에서 쌓였던 불평, 불만 등을 안고 집에 들어오면 내 어깨를 토닥토닥, 등을 따뜻하게 쓸어내려주는 아내가 있어서 난 그 시기를 버텨왔던 것 같다. 아이들도 아이들 나름대로 바뀐 환경에 어렵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도 항상 따뜻한 분위기와 대화가 끊이지 않는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들을 사랑해주는 아내와 내가 있어서 조금은 엉킨 실타래를 시간은 걸렸지만 잘 풀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의 시간이 있기까지는 다른 무엇보다도 우린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과 서로를 위로하는 진심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지금도 우린 서로에게 모두 진심이다. 그래서 우린 가족이다.



며칠 전 저녁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아들이 학교에서 생활기록부(이하 생기부)를 가져왔다. 지금 담임 선생님이 아마도 2년간 작성되었던 생기부를 아이들에게 직접 확인하고, 남은 1년도 분발하라는 의미에서 전달해 준 듯하다. 학생부 종합으로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아들에게는 이 생기부에 기록된 것들이 2년을 넘게 준비해온 아들의 결과물이자, 전쟁터에 나서는 군인의 총과 총알 같은 것이다. 십여 페이지가 넘는 생기부를 보면서 난 그동안 고생했을 아들이 너무 안쓰러웠다. 이 결과물을 빼곡히 채우기 위해 들였던 시간과 노력을 잘 알기에 난 한 자, 한 자 놓치지 않으려고 빼곡히 쓰여 있던 글들을 꼼꼼히 정독했다.

 

다음 날 아침 출근 전 아침밥을 먹고 있는 아들에게 따뜻한 한 마디를 건네고 싶었고, 마음 깊숙이 있던 내 진심 섞인 말을 아들에게 꼭 전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여러 복잡한 수식어나 긴 칭찬의 말보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너무도 평범한 짧은 단어들의 조합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 어떤 말보다 마음을 담은 내 진심을 잘 알기에 아들은 빙긋이 웃으며 감사해했다.


   "아들, 어제 생기부 잘 봤어. 2년 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


그렇게 따뜻한 말 한마디와 아들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 주고서는 난 현관문을 나섰다. 다른 어떤 말보다 더 따뜻하게 진심을 전하고 싶었고, 이런 내 진심을 아들은 잘 받았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위로가 되고, 응원이 되는 건 긴 말이나 멋진 수식어가 필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 가끔은 말 한마디, 따뜻한 포옹만으로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응원할 수 있다것을 주는 사람뿐만 아니라 받는 사람도 느낀다. 난 오늘도 아들에게 그런 위로와 응원을 담아서 진심을 전했다. 아들에겐 아직 가야 할 시간이 꽤 남아있지만 지금처럼 나와 가족의 진심 어린 위로와 응원이 있으면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잘 이겨내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김 민 수~, 파이팅!"

매거진의 이전글 아들에게 힘이 되는 아버지가 된다는 건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시작하기

카카오계정으로 간편하게 가입하고
좋은 글과 작가를 만나보세요

카카오계정으로 시작하기
다른 SNS로 가입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