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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Apr 02. 2021

딸! 아빠 빼고 남자는 전부 도둑놈들이야

딸 가진 아빠는 어쩔 수 없나 봐요

 "철수 씨, 오늘 지수 고백받은 거 모르죠?"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였다. 달라진 건 고등학교 3학년이 된 큰 아이의 부쩍 늘어난 학원 수업 때문에 일주일에 주말을 제외하고는 주중에는 화요일, 목요일 이틀만 저녁을 함께 할 수 있게 된 우리 가족 저녁 식탁 정도다. 어제는 마침 월요일이었고, 아들 학원 수업 시간이 일찍 시작하는 관계로 내가 퇴근해서 집에 갔을 때는 이미 학원에 가고 없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바빠진 아들 때문에 요즘 저녁 식탁에는 아내와 나 그리고 딸아이까지 셋이서 함께 저녁을 먹는 일이 많아졌다. 오늘도 그렇게 아들을 뺀 셋이서 저녁을 먹고 있었고, 아내가 먼저 입을 뗐다.


 "철수 씨, 오늘 지수 고백받은 거 모르죠?"


 난 갑자기 나온 생각지도 못했던 아내의 말에 놀라 입에 있던 밥을 채 씹지도 않고 넘기고 아내에게 물었다.

 

 "네? 고~백, 고백이요? 어떤 녀석인데요?"

 "아빠~! 오버하지 마시고요. 며칠 전에 이미 받았어요. 별일 아니에요. 고백하는 게 잘못한 일은 아니잖아"

 "별일이 아니라니. 지수야, 아직은 아니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절대 안 돼'도 아니고, 흥분부터 한 채 난 딸아이의 얘기도 제대로 듣지 않고, 마음에 있는 진심을 얘기해 버렸다. 얘기를 뱉고 나서는 내 꼰대 같은 사고에 딸아이가 실망했을까 걱정도 잠시 딸아이는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했다.


 "그냥 지금처럼 친구로 지내자고 했어요. 에휴~"

 

이런 딸아이가 좀 딱하기도 하고, 몰라도 너무 모르는 내가 좀 답답한 마음이 들었는지 아내는 서둘러 딸아이를 두둔하며 날 타박했다.


 "지수야, 너희 아빠를 누가 말리겠니"


딸아이를 너무 몰아세우면 보수적인 구닥다리 아빠로 보일 수도 있고, 아내의 눈치도 보이고 해서 그 얘기는 더 이상 식탁의 화두로 삼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딸아이의 말처럼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게 잘못은 아닌데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만 성급하게 반응한 것 같아 민망한 생각까지 들었다. 나중에 아내에게 얘기를 들어보니 딸아이에게 고백한 친구는 딸아이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고, 아내가 봐서는 괜찮은 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예전 딸아이가 유치원을 다닐 때가 생각이 난다. 유치원을 다섯 살 때부터 다녔던 딸아이는 여섯 살 때 같은 반에 좋아하는 친구가 생겼다고 아내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 얘기를 들었던 난 지금과 같이 놀란 마음으로 6살 딸아이에게 싫은 내색을 '팍팍'내면서 그 친구가 어디가 마음에 들어서 좋아하는지, 그 친구와 많이 친한지 등을 꼬치꼬치 물었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딸아이가 좋아했던 아이를 은근히 미워하고, 시기까지 했었다. 그 아이는 특별히 딸아이에게 별 다른 감정이 없었음에도 말이다. 그 후로도 난 유치원에 행사가 있어 행사 참석을 할 때마다 딸아이가 좋아했던 그 아이를 눈으로 좇느라 한 동안 내가 누구 행사에 참석했는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그 맘 때 아이들이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딸아이는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좋아했었던 그 아이의 생각은 까마득한 기억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딸 가진 아빠의 마음이 다 그런가 싶기도 하다. 세상 딸 가진 아빠들이 많이 하는 말이 '아빠 빼고 남자는 전부 도둑놈들이야'라고 한다. 나도 아마 이런 아빠의 마음으로 딸아이를 키우다 보니 이런 마음이 은연중에 툭, 툭 튀어나오나 보다. 딸아이에게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남자라서 그런 남자 마음을 잘 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상한 논리까지 더해서 생각을 정리해 버린 것 같다.


큰 아이만 해도 중학교 때부터 교제 중인 여자 친구와 지금까지도 잘 만나고 있는데, 딸아이라고 너무 다른 잣대를 대고 있는 게 아닌가 미안한 마음도 조금 들었다. 아이들도 어른들과 같이 감정이 있다. 바르고 건전하게 교제하는 것까지 너무 내 기준에 색안경을 끼고, 내 자식이라 다른 잣대를 놓고 재는 것은 어른답지 않은 행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딸아이의 이성 문제는 당분간은 가족 내의 화두가 되기는 이르지만 언젠가는 딸아이도 남자를 만나고, 사랑하고 그렇게 성장해 나갈 것이다. 딸아이의 이성 관계를 열렬히 환영까지는 못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어른으로서, 부모로서 예쁘고, 건강하게 만남을 이어간다면 묵묵히 지켜봐 주는 것도 아빠가 할 도리일 듯하다. 만일 그런 날이 오면 그래도 서운함은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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