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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 때문에 화난 딸과 화해하는 방법

아냐, 브런치에는 쓰지 않았어

by 추억바라기

딸아이가 아내를 향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가늘게 눈을 뜨고서는 조용하고, 가는 목소리로 아내를 불렀다. 무언가 짚이는 게 있는 아내는 딸아이의 이런 시선을 조금은 피하듯이 딸아이를 바라봤고, 아내의 이런 태도에 딸아이는 조금 더 확신을 갖고 아내를 추궁했다.


"엄마! 엄마, 혹시 알랄라 샬라 뽕뽕 이모한테 얘기했어?"

예감은 했지만 에두르지 않고 직접적으로 '훅' 들어오는 딸아이의 질문에 아내는 무척이나 당황해했고, 이미 벌어진 일이라 거짓말로 숨기는 것보다는 수습을 위해 딸아이를 달래기 시작했다.

"응? 아 그 얘기? 그냥 이모한테 우리 지수 자랑 좀 했지"

"어이구, 정말 이러기야? 내 사생활 보호 좀 해주세요. 알랄라 샬라 뽕뽕 까지 얘기하면 어떡해"

난 아내와 딸아이의 대화를 중재도 하고, 처제가 딸아이에게 연락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궁금하기도 해서 둘의 대화에 껴들었다.

"왜 이모가 연락 왔어? 뭐라고 하는데"

"이모가 거기 알랄라 샬라 뽕뽕이냐고. 그러면서 출장은 안되냐고 그러는 거야"

예상은 했지만 눈치 없는 동생의 구체적 물증에 아내는 더 당황했고, 딸아이의 화도 누그러트릴 겸 여죄를 처제 쪽으로 몰아가기 위해 아내는 자리에 없는 처제를 나무랐다.

"이노무 지지배. 꼭 그렇게 초를 쳐"

"혹시 엄마 친구들이나, 아빠 브런치에도 글로 쓴 거 아니야?"


딸아이의 질문에 난 잠시 당황은 했지만 이 상황에서는 이실직고는 또 다른 풍파를 일으킬 수도 있기에 무조건 잡아뗐다.


"아냐, 브런치에는 쓰지 않았어. 절대~"



며칠 전 아내의 저기압 기분을 재치 만점의 상황극으로 단숨에 아내의 텐션을 회복시킨 딸아이와 아내의 에피소드를 브런치에 올린 적이 있었다. 아내는 딸아이 덕에 우울했던 기분과 상했던 마음을 잘 추스르고 오히려 행복했던 하루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 에피소드를 내가 브런치에 남겼고, 아내는 딸아이와 둘도 없는 사이인 자신의 동생에게 이 글을 공유해 보냈다. 당연히 글을 보고 처제는 딸아이에게 '카톡'으로 장난을 한 거고, 처제 입장에서는 조카에게 응당 걸어볼 법한 장난이었다. 하지만 처제가 간과한 것은 딸아이는 일분일초 감정이 달라질 수 있는 중학교 2학년이라는 점이었다.


잠시의 소란은 이렇게 아내와 내가 다른 곳에는 말하거나, 쓰지 않았다는 발언으로 일단락되는 듯싶었고, 딸아이는 '알랄라 샬라 뽕뽕' 유명해지면 서비스의 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아내에게 하고서는 자신의 방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딸아이가 방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 후 아내와 난 '브런치'에 올린 것을 끝까지 잡아떼자고 조용히 밀담을 나눴고, 화제의 발단이 되었던 처제에게 앞으로는 비밀 얘기는 조심해서 하라고 주의를 줬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날 것 같았다. 하지만 잠시 뒤 딸아이는 자신의 방을 열고서는 금방이라도 내게 달려들듯이 눈을 치켜뜨며 짜증 섞인 말들을 더해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아빠, 브런치에 글 안 썼다며. 그럼 이 글은 뭔데요"

"하하, 우리 지수 아빠 브런치도 들어가서 읽은 거야?"

"말 돌리지 마시고요. 이건 정말 사생활 침해라고요. 나 이제 집에서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에이, 아빠가 작가 활동하는 거 아무도 몰라. 알고 있는 사람들도 글 잘 안 읽고. 아빠 글 속에 있는 딸이 지수라는 건 정말 몰라"

"아무리 그래도 너무 리얼하잖아. 글 쓰면서 아빠만 좋지 내겐 장점이 될 만한 게 없잖아"

"야 인마, 글을 솔직하게 써야지 거짓말로 쓰냐 그럼? 그럴 거면 소설을 쓰지. 아빠도 수익이 나는 것도 아닌데. 에이, 기분이다. 그럼 우리 지수 이야기를 주제로 쓴 글이 인기가 있으면 아빠가 용돈 쏠게. 조회수 일 만회당 천 원"


아이를 이해시키고, 설득해서 결국 타협점을 찾았다. 글에서 자신은 끝까지 가명일 것, 그리고 조회수 일만회당 천 원. 무서운 딸아이다. 정말 부자 되는데 한 표다.


https://brunch.co.kr/@cooljhjung/418


글을 발행한 지 며칠이 지나 그날 글은 다음 메인에 올랐다. 하루 만에 꽤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딸아이와 타협한 대로 용돈을 쏴야 할 만큼. 그것도 몇 곱절로 줘야 할 정도의 숫자를 기록했다. 그래도 기분만은 너무 좋았다. 내 글로 유쾌해졌을 사람들이 많았을 테고, 댓글과 공감 그리고 반응도 좋았다. 아내와 산책길에 해외 직수입 액세서리 샵에 들렀다. 그냥 지나칠뻔했지만 입구에서 나를 잡아끄는 반짝반짝한 물체 때문에 그 자리에 설 수밖에 없었고, 금액을 물어보고 조금 망설이긴 했지만 예쁜 딸아이에게 선물해줄 생각을 하니 선물 사는 내가 더 기분이 유쾌해졌다.



저녁 늦게 딸에게 선물을 건네며 너무도 기뻐하는 딸에게 나만의 비장의 유머를 던졌다.


"딸, 가수 성시경 동생 이름이 뭔지 알아?"

"성시경 동생이 있었어? 몰라"

"성식이잖아. 그래서 가수 성시경이 '성식형'이잖아. 성식이 형이라서"

"으이그, 아빠 너무 썰렁해"


누군가는 너무 사적인 이야기를 브런치에 쓰는 게 아니냐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내게는 이런 지극히 사적인 내 가족 이야기를 나와 내 글을 좋아하는 많은 분들과 함읽고 싶다. 이렇게 글 쓰고 있는 지금의 내가 너무 좋고, 내 글을 좋아할 분들을 생각하면 더 기분이 좋다.


'그래서 말인데 지수야~ 앞으로도 아빠 예쁜 딸로 꾸준한 활약 부탁해. 아빠가 잘 써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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