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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였던 스트레스를 전 이렇게 풀어요

오늘 아내와 가까운 경의 숲길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by 추억바라기

사람들은 저마다 기분 전환이 되는 자신만의 루틴을 가지고 있다. 내게도 다운되었던 기분을 한 번에 끌어올려주는 그런 루틴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아내와의 둘만의 데이트이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는 생각도 못했던 연애 때 같은 그런 데이트였지만 아이들이 조금씩 크면서 아내와 난 둘이서 주말 저녁에 동네 선술집에서 술 한잔을 할 때도 있었고, 평일 저녁에 가볍게 산책하다 편의점 바깥 테이블에서 커피 한잔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가끔은 평일 휴가를 내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한동안 한가로움을 시기라도 하듯이 최근에는 한꺼번에 몰아닥친 업무 때문에 야근에, 스트레스로 하루하루가 고된 날의 연속이었다. 요즘은 퇴근하고 들어오는 내 모습에 하루가 멀다 하고 아내는 어쩜 사람 모습이 이렇게 조석이 다를 수 있냐고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곤 한다. 이런 내 모습을 거울을 통해 내가 직접 볼 때도 안쓰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렇게 지친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내게 며칠 전 아내가 별 감정 없이 넌지시 물었다.


"철수 씨, 낮에 내가 회사 가면 밥 사줘요"

"그럼요. 영희 씨 온다면야 바쁜 일도 미뤄두고 오후에 반차 내야죠"

"굳이 휴가까지 안 써도 되는데. 그럼 나 언제 갈까요?"

"언제든 환영이지만 괜찮으면 이번 주 금요일에 와요. 내가 미리 휴가 품의하게요"


갑작스러운 아내의 제안이었지만 뜻밖의 반가운 소식이었고, 지쳐있던 내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목요일 저녁까지도 아내와 난 금요일 점심을 무얼 먹을지 함께 고민을 했고, 길눈이 조금은 어두운 아내를 위해 난 사무실을 찾아오는 방법을 짧게나마 설명하며 오랜만에 즐기는 둘만의 데이트 전야를 열심히 즐겼다. 내 모습은 마치 초등학생이 소풍 가기 하루 전에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하고 설렘 가득한 모습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던 딸아이는 휴가까지 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우리를 생각하며 무척 배 아파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금요일 아침이 되었고, 출근하는 내게 아내는 잠시 뒤에 보자며 달뜬 기분을 감추지 못하며 날 배웅했다. 금요일 아침 출근길 발걸음이 평소보다 더 가벼웠고, 오늘까지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지만 생각보다 크게 걱정이 되지 않는 행복의 도미노 현상으로까지 내 마음속에 행복 바이러스는 번지고, 또 번져갔다.


그렇게 출근해 오전 업무를 하는 동안 어떻게든 오전에 마무리해 전달할 일을 전념하느라 또 한 번 스트레스 후폭풍이 머리와 가슴을 후벼 파려고 할 때쯤 업무 요청을 했던 협력 기관 직원이 연락이 왔다. 전화를 받는 그 순간까지 짜증이 몰려왔지만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해당 직원의 얘기에 이내 내 마음은 평온을 되찾았다. 내용인즉슨 금일 요청했던 메일을 월요일에 전달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아내와의 오후 데이트를 위한 누군가가 알아서 짜 맞추는 맞춤형 퍼즐 같았고, 세상의 기준이 그 순간만큼은 내 편으로 돌아가는 듯 신이 났다.


전쟁이 될 뻔했던 오전 시간은 큰 후폭풍 없이 평온하게 흘렀고, 어느새 시간은 흘러 흘러 아내가 도착할 시간이 다 되어갔다. 시계를 보며 업무 정리를 하던 중 컴퓨터 하단 카카오톡 메시지 창이 깜빡였다. 기다리던 바로 그 메시지였다.

sticker sticker

'OO OO 빌딩. 이 건물 맞아요?'

'네. 여기까지 왔어요?'

'아, 시간이 남아서 한 번 와봤어요'


어느새 아내는 회사가 위치한 건물에 도착해 있었고, 서둘러 가방을 메고 조용히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건물 정문을 빠져나오니 내가 나오는 쪽을 보는 아내가 보였고, 오랜만에 밖에서 아내를 만나니 왠지 더 반가운 마음에 슬쩍 장난을 걸어보고 싶었다.


"하하, 거기 언니 딱 내 스타일인데 오늘 시간 어때요?"

"어머, 전 지금 남자 친구 기다리거든요. 어디서 수작을 부리세요"

"(허걱) 이거야 착착 죽이 맞아야 장난도 칠 텐데. 그냥 밥 먹으러 가요"

"네, 그래요 나 배고파요"

"오늘은 점심 식사에 근사한 곳 가서 커피 한잔까지. 내가 풀코스 책임집니다"


이렇게 우린 '누룽지 삼계탕'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지하철로 홍대 입구역 경의 숲길로 발길을 옮겼다. 지하철역 입구를 나오면서 아내는 이미 경의 숲길에 매료되어 있었다. 아내의 초롱초롱해진 눈을 보며 이리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은 먹구름이 잔뜩 껴있었지만 우리 둘 마음만은 화창한 날씨같이 기분 좋은 오후의 산책길이었다. 6월 중순의 날씨에 오히려 강한 햇볕 쏟아지는 더위 속에 산책하는 것보다는 오늘 같이 흐린 날씨라도 비는 오지 않고, 조금은 선선한 바람이 부는 덥지 않은 날씨가 데이트하기에는 적격이었다.


평일 오후였지만 금요일이라 곳곳에는 데이트를 즐기는 커플들과 선선한 날씨를 즐기기 위한 젊은 남녀들이 경의 숲길을 많이 찾았다. 길이 좋아, 날씨가 좋아 아내와 난 홍대입구역에서부터 꽤 긴 거리를 경의 숲길을 따라 산책했고, 한 참을 가다 보니 금세 가좌역까지 갈 듯싶어서 방향을 돌려 다시 출발했던 홍대입구역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던 길에 만난 루프탑이 있는 전망 좋은 카페에서 아내와 나란히 산책길 쪽으로 앉아 오후의 데이트를 마저 즐겼다.


오랜만에 함께 한 아내와의 즐거운 시간으로 한 주동안 쌓였던 피로도, 누적된 짜증도 언제 있었냐는 듯 말끔히 사라지고 없었다. 잔뜩 찌푸린 날씨도 오늘 내 마음속에는 아내와의 시간 때문인지 어떤 화창한 날씨보다 더 맑게 보이는 것 같았다. 오랜 시간을 걷느라 조금 흘렸던 땀도 루프탑 카페에 앉아 기대앉은 의자 뒤로 선선하게 부는 바람과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날려버릴 수 있었다. 오랜만에 휴가를 내고 보낸 오늘의 이 시간이 한동안 답답했던 코로나의 일상에서 조금은 편하고, 길게 뱉어낸 제대로 숨을 쉰 듯한 하루이지 싶다. 일상 속에 행복하고, 즐거운 휴식 같은 오늘 하루를 선물한 아내에게 참 고맙다.


'영희 씨 오늘 데이트 즐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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