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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Dec 02. 2019

산타의 귀환(Santa's homecoming)

아빠의 작은 선물

"아빠, 산타 할아버지는 진짜 있어?"

"그럼, 오늘 아빠한테 연락이 왔는 걸."


7년 전, 추억의 서랍에서 우리 가족의 따뜻했던 하루를, 그날의 기억을 소환해 봤어요.




2012년 12월 어느 날, 난 아이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과 기억될만한 이벤트를 열심히 고민하고 있었다. 새 직장으로 옮긴 지 1년이 조금 넘었고, 팀을 새로 꾸리고, 재정비하여 이제야 부서가 조금 유기적으로 돌아갈 때여서 업무의 양은 많았고, 야근이 잦았었던 때였다.

  하지만, 날이 날인만큼 아이들과 가족을 위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싶었던 나는 하루 일과 중 잠깐씩 짬이 날 때면 이 날의 이벤트를 위해 적잖은 시간을 할애했다. 선물을 사고,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자니 평소(?)하던 이벤트여서 조금은 식상했고, 여행을 가자니 너무 늦게 고민을 시작해 웬만한 여행지의 숙소는 이미 예약이 끝난 상태였다.


  나름 가정에 충실했던 가장으로서 이 정도의 이벤트를 짜내는데도 모두가 기뻐할 만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 것에 답답했고, 미리 준비하지 못했던 나에게 조금은 실망했다. 시간이 자꾸 흘러 크리스마스까지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고, 우선은 선물부터 준비하자는 마음으로 퇴근 후 어느 날 저녁에 아이들에게 물었다.

 "민수야, 산타 할아버지에게 선물 뭘 받고 싶은지 소원 빌었어?"

 "응, 아빠! 난 책을 여러 권 받고 싶어."

 지금은 고등학생인 아들은 교과목, 학원 교재를 제외하고는 책하고는 담을 쌓은 지 오래되었지만 그때만 하여도 책을 제법 보는 초등학교 3학년생이었다. 받고 싶은 선물을 이야기한 아들이 갑자기 날 보며 짓궂은 웃음을 짓고는 한마디를 보탰다.


 "아빠, 그런데 산타 할아버지가 용돈이 많지 않아서 책 선물을 여러 권 하기는 힘들겠지?"

 "어, 어(당황)? 하하, 산타 할아버지니까 설마 돈으로 책 사겠어? 아마 민수가 착한 일 많이 했으면 여러 권 선물로 줄 거야."

 난 많이 당황했지만, 아들의 장난기 어린 말에 살며시 미소가 흘렀다. 초등학교 3학년. 알 건 다 알만한 나이였고, 그때 당시 아들은 산타 할아버지의 용돈을 걱정한 것이 아니라 아빠의 주머니를 걱정한 것 같았다.

"지수는 산타 할아버지한테 받고 싶은 선물 소원 빌었어?" 이제 여섯 살인 딸아이에게는 아직까지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가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난 아이의 입에서 나올 말에 미리부터 들뜬 마음이었다.

 "응, 난 라푼젤 인형이 갖고 싶다고 소원 빌었어. 그런데, 아빠! 산타 할아버지는 없어? 오빠도 그러고, 우리 유치원 남자아이들도 산타 할아버지는 진짜로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자꾸 그래." 딸아이는 진지했고, 난 비로소 아이들에게 무얼 해줘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날 저녁, 아이들 선물과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위한 '그것(?)'을 샀다. 다행히 배송이 크리스마스 한 주 전에 택배로 모두 도착하여 아내가 아이들 몰래 그것과 선물을 받아놓았고, 이벤트 당일 출근 아침 아내와 D-Day, 작전 계획을 최종 점검하였다. 사무실에 앉아서도 아이들이 좋아할 모습에 입가에 미소는 가시지가 않았고, 설레고 들뜬 마음 덕에 퇴근 시계가 너무도 더디 가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퇴근 시간이 되기 전에 엉덩이는 들썩되었고, 그날만은 주변 눈치는 보였지만 조금 일찍 퇴근하는 무리수(?)까지 뒀다.

  40여 분 퇴근길이 더디고, 조급했지만 마음만은 집이 가까워질수록 들뜨고, 너무 따뜻해졌다. 집이 있는 3층 계단을 오르면서 난 최대한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심히 '한발 한발' 계단을 올랐다. 미리 아내는 내가 이야기해놓은 대로 선물과 이벤트를 위한 '그것'을 3층과 4층 사이 계단에 올려다 놓았고, 나는 그 쇼핑백에 있는 '그것'을 재킷을 벗고 입고 있던 옷 위에 껴입었다. 선물이 든 쇼핑백을 들고 현관문 앞에 서서 벨을 눌렀다.


 잠시 뒤 아이들은 '아빠야!'하고 문을 열면서 나를 불렀다. 현관문을 연 큰 아이는 문 앞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아니 산타를 보고 두어 발자국을 뒤로 물러난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놀란 눈만 더 커져가고 있었다.

"어, 어, 어! 산타 할아버지다. 와아~~!!!"  

 

 딸아이가 먼저 입을 뗐고, 큰 아이도 잠시 머뭇거리다가 금세 머리 위로 손을 올리며 소리 지르면서 좋아했다. 어줍지 않은 산타 성대모사로 크리스마스 인사를 아이들에게 건넸다.

"하하하~~! 메리 크리스마스!"


  난 끝까지 아이들에게 아빠가 아닌 것처럼 하고 싶어서 산타 할아버지 같은 웃음소리와 목소리를 흉내 냈지만, 아이들이 잘 속아 넘어가지는 않은 듯했다. 결정적으로 아이들 뒤에 서있던 아내가 웃음을 참다 참다 눈물까지 흘리며 키득키득거렸다. 결국 아내는 웃음을 참지 못했고, 난 아이들과 인사하면서도 눈으로는 아내에게 경고를 보냈다. 1분도 채 안 되어서 큰 아이는 아빠인 줄 알았고, 나름 빨리 퇴장하였지만 우리 딸아이도 아빠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만 딸아이에게 산타 할아버지가 많이 바빠서 오늘은 아빠가 대신 산타 할아버지 역할을 해달라고 전화를 받았다고 하는 말로 동심은 지켜주었다. 물론 초등학교 가자마자 그 동심은 파괴되었지만.


  날씨는 많이 추웠지만 이 날의 흐뭇한 추억은 훈훈하고, 따뜻한 크리스마스의 의미와 가족의 의미를 다시 되짚어 보게 했다.  2012년 크리스마스, 우리 가족에겐 영원히 잊지 못할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얘들아 너희들에게도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이었지? 나에게만 남은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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