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신혼 여행지로 찾은 곳은 괌이었다. 첫 해외여행에 영어권의 미국령이라 여행 자체의 즐거움과 설렘보다는 의사소통에 대한 부담이 크게 왔었던 여행 중 하루였다. 밤에 인천서 출발해 괌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이었던 여행 첫날이라 호텔에서 잠을 자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오전이 지나 있었다. 오후부터 스케줄은 가이드가 있는 신혼여행 패키지라 언어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일정이었다. 하지만 그날 오후 여행 스케줄을 모두 소화하고 돌아온 호텔에서는 아내와 나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시간들이었다. 호텔방을 나가는 순간부터 모든 언어들은 영어로 읽고, 말하고, 들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부담에 조금은 두렵기까지 했다. 게다가 곁에 아내가 있으니 내 짧은 영어 실력을 금세 들킬까 노심초사했던 시간이었다.
그래도 아내와의 첫 해외여행이라 호텔방에만 있는 건 시간이 지나면 더 큰 후회로 남을 것 같아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시간을 갖고자 아내를 설득해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 여기저기를 둘러보기로 했다. 다행히 호텔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구경하는 데는 내 언어적 한계를 드러낼 일이 없었다. 지나가는 호텔 직원들이 건네는 인사 몇 마디가 전부였고, 그 정도는 말하고, 듣기가 가능한 수준이라 긴장했던 마음은 어느새 조금 편안해졌다. 그렇게 우린 호텔 여기저기를 다니던 중 호텔 밖으로 난 비상계단을 발견했고, 계단 밖에서 보는 괌의 야경과 밤바다는 우리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히 아름다웠다. 남는 게 사진이라 아내와 난 계단으로 나가는 문을 열고 호텔 바깥쪽으로 나있는 계단으로 나가 괌 야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로 했다. 계단으로 나가는 출구를 열 때만 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을 때만 해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계단 밖의 세상은 여행지의 색다른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 덕에 신혼여행의 분위기는 한층 더 무르익었다.
괌의 바닷바람과 야경이 어우러져 한껏 분위기에 취했고, 아내와 가볍게 입맞춤(?) 후 우린 연신 포즈를 잡아가며 셔터를 눌러댔다. 그렇게 행복했던 잠깐의 시간을 즐기고, 우린 내일 일정을 위해 룸으로 돌아가 가볍게 맥주 한 잔을 하고 조금 일찍 쉬기로 얘기했다. 그렇게 우린 다시 호텔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 계단 밖 손잡이를 돌리려 했지만 손잡이는 돌아가지 않았고,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 시작했다. 열심히 돌리려는 손잡이는 겉도는 느낌이 계속 들었고,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등 뒤로는 진땀이 흐르고 있었지만, 나까지 당황하면 아내가 놀랠까 해서 겉으로는 최대한 태연하려고 웃어도 보고, 방법이 있을 거라고 아내를 안심도 시켜봤다. 하지만 아내는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는 크게 당황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고,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초조함을 드러내는 건 나였다.
계단을 통해 아래쪽으로 내려갈 수 있는지 살폈지만 계단 출구도 3층에서 막혀 있었다. 정말 딱 비상계단에 갇힌 꼴이 됐다. 시간은 어느새 9시가 넘었고, 늦은 시간이라 안 그래도 조용한 호텔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은 더더욱 없는 듯했다. 우리가 갇힌 비상계단은 호텔 로비나 중앙 쪽에 위치한 것도 아닌 복도 끝쪽이라 지나다니는 사람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었던 시절도 아니었고, 휴대용 전화기가 있어봤자 로밍도 되어있지 않았고, 로밍이 되어 있었다고 해도 괌에 대한 정보도 전혀 없던 터라 호텔 전화번호조차도 내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이런 상황에 빠진 나에 대한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쯤 계단 창 안쪽에 두 명의 사람이 지나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얼핏 봐도 우리와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큰 소리로 '도와주세요'라고 외쳐봤지만 가까이 다가온 그들은 내가 하는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우리만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저기요, 저희 좀 도와주세요. 프런트에 우리 갇혔다고 얘기 좀 해주세요"
"................."
"오빠, 한국 사람들 아닌가 봐. 어쩌지?"
"플리즈, 디스 도어 록. 오픈 더 도어. 아유 오케이?"
"쏘리, 쏘리"
짧은 영어 실력이었지만 어떻게든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받으려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대답은 '쏘리'가 전부였다. 아마 우릴 지켜보는 사람들도 영어가 전혀 되지 않는 사람인 듯했다. 언뜻 봐도 일본 사람 같아서 당시 일본어를 조금 배워둘걸 하는 후회까지 잠시 일었다. 지금 같았으면 번역 앱들이 워낙 잘 나와서 일본어로도 충분히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겠지만 2001년 당시에는 문명의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던 시절이라 발만 동동 구르며 난 생전 처음 본 그들에 대한 원망이 조금씩 생겨났다. 그렇게 그 일본인(?) 부부는 우리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한 체 '쏘리'만을 연신 말하고 조용히 퇴장했다. 조금 위안이라면 그들도 어쩌지 못하는 자신들의 행동이 미안했는지 표정만은 미안함을 얼굴 가득 담은 채 사라졌다는 것 정도였다.
그렇게 사라진 두 사람을 원망하며 시간이 조금 더 흘렀을 즈음 호텔 직원처럼 보이는 한 사람이 우리가 갇혀있는 출구 쪽으로 걸어왔다. 서둘러 난 지나가던 호텔 직원을 불렀고, 그 호텔 직원은 갇혀있었던 우리를 창에서 바라보며 뭐라고 얘길 하고 있었다.
"XXXX XXXX XXXX "
Are you a hotel guest? (호텔 투숙객입니까?) 혹은 How did get out of there?(거긴 어떻게 나간 겁니까?)쯤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익스큐즈 미, 더 도어 이즈 록. 디스 도어 이즈 록!"
Excuse me, the door's locked. This door is locked! (내가 갇혔다고 얘기하려다 보니 그 순간 나온 말이다)
"왓 아유 두잉 데어?"
What are you doing there? (당신 거기서 뭐합니까?)
결국 우린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을 고스란히 계단에 갇혀 있다 호텔 직원이 문을 열어줘서 간신히 풀려났다. 나오면서 직원의 안내로 확인한 문구였지만 문 앞에는 출입 금지 및 밖에서 출입이 되지 않는다는 경고문구가 친절하게 영어로 쓰여 있었다. 우리가 머물렀던 계단은 비상계단이었고, 화재 시 탈출을 위한 출구로 안에서만 문을 열고 나갈 수 있고, 호텔 투숙객의 안전을 위해 밖에서는 출입이 되지 않는 문이었다. 물론 계단을 통해 G층까지 갈 수 있게 되어있지만 평상시 사용을 안 해서 그런지 그날은 내려가는 중간층에서 철창 문이 잠겨있었다.
조금 창피했지만 그만하길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아내와 난 호텔룸으로 돌아왔고, 피곤했지만 하루 밤을 호텔 계단에서 비박할 할 수도 있었던 간담 서늘한 경험 때문인지 난 신혼여행 2일 차 밤잠을 조금 설쳤다. 나중에 든 생각이지만 그렇게 사라진 일본 부부가 호텔 측에 신고를 해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머물렀던 층, 그것도 복도 끝에 있는 비상계단으로 늦은 밤에 갑자기 나타난 호텔 직원이 그런 이유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 내가 하는 짧은 말조차도 '쏘리'로 피했던 영어 실력이었지만 그들 나름에 최대한의 용기를 끄집어내어 호텔 측에 그 사실을 알린 게 아닐까. 아마 그렇게 사실을 알리는데도 그들은 진땀을 흘려가며,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몸짓, 발짓으로 우리의 상황을 알리려고 애썼을 것 같았다.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니 뒤돌아 사라진 두 사람을 원망하며 화를 냈던 사실이 너무 부끄러워졌고, 그들의 용기에 감사를 보내고 싶었다. 설사 그들이 한 행동이 아니더라도 난 그냥 그들이 우릴 위해 그렇게 행동해서 우리가 무사히 신혼의 밤을 편안하고, 시원한 호텔룸에서 쉴 수 있었다고 믿고 싶었다. 왠지 짧은 영어 실력의 그 사람들과 내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을 해서 그랬는지 그 순간은 그냥 그렇게 믿었다.
내 나이 30대 중반의 어느 날 내게는 늘 미뤄진 숙제 같았던 영어 회화에 대한 또 다른 동기 부여가 생겼었다. 여행을 좋아했던 내가 해외로 다니면서 가족들이 불편하지 않게 자연스러운 회화를 구사하고 싶었다. 하지만 10년이 더 훌쩍 지난 지금도 난 그 밀린 숙제를 제대로 시작도 하지 못했다. 그때와 달라진 건 조금은 느슨해진 마음가짐과 여러 좋은 번역 앱들이 우리 주변에 많아졌다는 정도다. 한 가지 더 있다면 내 미뤄진 숙제를 딸아이가 왠지 완수할 것 같다는 욕심이 아주 조금 생겨났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했다. 난 아직 늦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조금은 더 그 미뤄진 숙제를 안고 살아봐야겠다. 오늘도 그런 내 욕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딸아이는 오늘도 내 심기를 살살 건드리고 있다.
"아빠, 아빠는 미국도 다녀왔다면서 왜 영어로 대화가 안돼?"
"딸! 그때는 아빠도 영어 좀 했지. 20년 가까이 시간이 지나다 보니 다 잊어버린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