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난 사건의 공범이었다

그날은 내게 행복한 날이었을까, 불행한 날이었을까

by 추억바라기

"야, 이번에는 내 차례잖아. 우리 벌써 몇 시간째냐"


작년 한 뉴스에서 강원랜드에서 일어난 도난 사건을 방송한 적이 있었다. 손님을 가장한 외국인들이 슬롯머신을 털어 현금 2,400만 원을 들고 도망간 사건이었다. 강원랜드 자체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강원랜드엔 위조된 여권을 이용해 홍콩 남성 1명과 페루 남녀 2명 등 총 3명이 입장했고, 오후 2시 44분부터 시차를 두고 영업장에 들어온 이들은 이날 저녁 6시 55분 만능열쇠로 추정되는 도구를 이용해 슬롯머신의 현금상자를 절취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를 접하고 중학교 시절 기억나는 사건이 있었다. 중학교 1학년 학교 수업이 끝내면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늘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완구점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 시절 프라모델에 관심이 많아서 빼곡히 꽂혀있는 건담 시리즈나, 군인들 프라모델 시리즈를 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완구점에 있다 보면 지나가는 친구들이 완구점에 들러 함께 놀자고 곧잘 얘기하고는 했다. 하지만 워낙 완고했던 어머니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걸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운영하던 완구점은 번화가에 있어서 주변에는 중학생을 현혹할 만한 곳이 많았지만 혼자 또는 친구들과 번화가를 돌아다니는 행위 자체를 싫어했던 완고했던 어머니 탓에 완구점 밖을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열세 살 중학교 1학년이던 내게는 하지 말라고 하면 묘한 반항심에 더 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게 일어날 시기였고, 그날은 어머니 대신 아버지가 완구점을 지키고 있었던 터라 친구들의 부름에도 흔쾌히 응할 수 있었다. 아버지에게 잠깐만 놀다 온다고 얘기하고, 친구들과 함께 완구점을 나섰다. 그렇게 친구들과 함께 간 곳은 근처 오락실이었다. 주머니에 든 돈이 백 원짜리 대여섯 개라 딱 그만큼만 놀고 가면 될 거라는 생각에 친구들과 함께 오락에 몰두하며 놀았다. 하지만 자주 다니던 곳이 아니어서 주머니에 동전은 삽시간에 다 없어져 버렸다. 친구들 또한 주머니에 든 돈이 나보다 적었던 터라 그리 오랜 시간을 버티지는 못했다.


주머니가 비고 서로 얼굴만 바라보며 멀뚱 거리던 순간 친구 중 한 녀석이 자신의 가방에 낚싯줄로 만든 만능키가 있는데 한 번 사용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친구들끼리는 금세 제안한 친구의 의견을 따르자는 반응이었고, 나쁜 행동인 줄 알면서도 잠깐의 고민 후 나 또한 친구가 제안한 일을 묵인해 버렸다. 그렇게 한 오락기 앞에 낚싯줄을 든 친구가 앉았고, 우린 그 친구를 보호(?) 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 벽을 쌓았다. 우리들의 비호를 받은 그 친구는 열심히 낚싯줄을 이용해 동전 구멍으로 손을 움직였지만 돌아온 결과는 보기 좋게 실패였다. 심장이 벌렁거리며 그렇게 가슴 졸이던 일이 실패로 돌아가자 한 편으로는 허탈함에, 한편으로는 나쁜 짓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런 마음은 나뿐만이 아니라 함께 벽을 쌓고 있던 다른 친구들도 비슷했는지 친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표정만은 밝았다.


"어, 누가 돈 넣고 오락 안 하고 그냥 갔나 봐. 우리 이거만 하고 같이 가자"


돌아서던 발길을 붙잡은 건 낚싯줄을 사용했던 친구였고, 낚싯줄을 걸던 오락기가 아닌 옆쪽 오락기에 누군가가 돈을 넣고 게임을 하지 않고 간 것 같다는 거였다. 금방 끝날 거라는 생각에 다들 그 친구 주변에 앉았고, 그 친구가 끝나기를 나 포함한 다른 친구들은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며 기다렸다. 그렇게 게임은 끝났지만 그 게임기에 코인은 또 "1"이라는 숫자로 바뀌어있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버튼을 누르니 다시 게임이 시작됐다. 그렇게 계속 게임이 되는 것을 알고 친구들끼리 순번을 정했고, 자신의 순번이 올 때까지 우리 모두는 오락기 옆에 앉아 게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다들 돌리던 발걸음을 멈추고 친구들과 난 이어지는 게임을 계속했고,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른 체 자신의 순번이 올 때를 기다리며 오락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야, 이번에는 내 차례잖아. 그나저나 우리 벌써 몇 시간째냐"

"그러지 말고 우리 딱 한 번씩만 더 하고 가자"


너무 오랜 시간을 오락실에 있었던 게 걱정되어서 나도 서둘러 나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지만 막상 친구가 한 번씩만 더 하자는 혹할만한 제안에 다시 자리에 앉아 내 순번을 기다렸다. 어느새 다시 내 순번이 올 때쯤 오락실 출입구에서 낯익은 사람의 얼굴이 보였고, 어느새 굳은 얼굴로 내 앞에 선 그분은 아무 말도 없이 내 팔을 붙들고 오락실 밖으로 끌고 나갔다. 두려움과 후회의 감정이 뒤섞인 그때 어머니는 내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얼굴을 보이셨고, 집에 끌려 들어간 난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머니께 심하게 혼이 났다. 그날 어머니의 매는 어머니가 나이가 들어서도 그날 일을 후회할 만큼 너무 혹독했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중학교 3년 내내 더 이상 오락실에 발길을 하지 않았고, 그 친구들 또한 그 오락실을 찾지 않았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학생들의 가장 흔한 놀이터 중 하나가 오락실이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PC방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오락실 게임기 한 번에 오십 원짜리 동전 하나였고, 아이들끼리는 오락실에서 돈을 내지 않고 오락실 게임을 즐기는 방법을 많이들 공유했었다. 그중 하나가 그날 함께 오락을 하던 친구가 들고 다니던 낚싯줄 끝에 고리를 만들어 동전 입구에 밀어 넣어 동전 입력 센서를 터치하는 방법도 있었고, 5원짜리 동전을 망치로 두드려 50원만큼 펴 테이프로 감아서 사용했었다는 친구도 있었고, 50원짜리 중간에 구멍을 내어 낚싯줄로 묶어서 넣었다, 뺐다 하며 오락실 게임을 즐겼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철없던 어린 시절 추억 보따리 중 하나지만 그 시절 의도하지 않게 공짜로 오락을 몇 시간 한 것만으로도 당시 내 심장은 미친 듯이 콩닥거렸고, 손까지 떨렸었다. 열세 살 철없던 어린 시절 조금은 민망하고, 부끄러운 추억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그날의 궁금했던 한 가지는 그날 나는 럭키(Lucky)한 날이었을까, 언럭키(Unlucky)한 날이 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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