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나는 남자

나도 누군가에게 향기로 기억된다면

by 추억바라기

"철수 씨 라일락 꽃망울이 보여요"

"정말요? 올해에는 얼마나 꽃이 피려나"


우리 집에는 라일락이 한 그루 있다. 아내가 좋아하는 수많은 화초들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나무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강렬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기분 좋은 달콤한 향기로 내 속에 들어와 잊히지 않는 향기로 기억되어버렸다. 그래서 내겐 해마다 봄이 되면 라일락이 피기를 기다리는 이유가 생겼다.




군 전역 후 대학을 1년 다니다가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또다시 1년을 휴학한 적이 있었다. 안 그래도 전역 후 다시 다녔던 학교 생활은 모든 게 낯설고, 힘들었지만 나와 비슷한 처지의 동기들 덕에 빠르게 적응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1년을 쉬고 학교로 돌아가니 함께 수업을 듣는 같은 과 학생들은 대부분 후배들이었다. 처음엔 그 시절 4학년에 다니던 친구들과 어울리며 어떻게든 적응을 해 갈 수 있었지만, 수업 시간도 전혀 다를뿐더러 서로의 관심 대화 또한 차이가 생기다 보니 시간이 지나며 난 동기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결정적으로 4학년이 된 동기들은 모두 취업 준비를 위해 바쁜 날을 보내고 있었고, 상대적으로 3학년이었던 나는 대학 생활의 낭만과 여유를 즐길 시간적 여유가 있었을 때였다.


그렇게 조금 외로움을 느낄 때쯤 같은 수업을 듣는 동기 한 명이 눈에 들어왔고, 예전에는 잘 몰랐던 동기였지만 항상 활짝 웃는 모습과 쾌활한 그 친구의 성격 덕에 우린 어느새 가까운 친구가 되어 있었다. 수업이 많이 겹치다 보니 수업을 함께하는 건 당연했고, 점심시간이나 여가 시간까지 함께하면서 그렇게 남은 대학 생활 2년을 함께 했다.


"철수야, 내일이면 애들도 시험 모두 끝나는데 PC방 갔다가 저녁에 한 잔 할까?"

"그래, 내일 별일 없어. 다른 애들한테도 이따가 네가 얘기해"

"안 그래도 수미하고, 경수한테 얘기해놨어. 다른 애들은 이따 수업시간에 얘기하지 뭐"

"술 값은 어떻게 너하고 내가 각출?"

"에이 선수끼리 왜 이래. 당연히 PC방에서 게임으로 술 내기해야지"


용돈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렇게 PC방에, 술까지 마시는 날이면 금전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친구와 나를 제외하면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이 다들 후배들이라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사람으로서의 자연스러운 걱정을 난 하고 있었다. 하지만 친구는 항상 공평하고, 공정하게 행동하고, 결정했다. 동생이든, 후배든, 친구든 용돈 받는 처지는 같은 입장이라는 마인드로 내기를 하든, 알아서 각출을 하든, N분의 1을 하든 어떻게든 억울한 지출을 피하고, 공정함을 따지던 그런 친구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한 동안 우린 가끔 만났었고, 내 결혼식 때도, 우리 신혼집 집들이 때도 친구는 함께 했었다. 그렇게 졸업 후 몇 년을 함께 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연락하는 횟수도 줄어들기 시작했고, 급기야 연락을 서로 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연락이 끊긴지도 벌써 15년이 넘었다. '살다 보니 바빠서'라는 보기 좋은 핑계로 그렇게 소식을 모른 체 지금도 살고 있다. 그래도 난 함께 어울렸던 후배와 동생들 결혼식에는 참석을 했었던 것 같은데, 유독 결혼을 늦게 한 친구의 결혼식에는 정작 참석하지 못했다. 아니 연락을 안 하고 산지 오래돼서 사실 결혼식을 하는지도 몰랐다. 결혼식을 알지 못해서 가지 못한 미안한 마음도 크고, 결혼 소식을 전하지 않은 친구에게도 서운했지만 그동안 우리들 사이에 알지 못하는 긴 시간이 흘렀음을 인지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 고민 때문에 서로 많이 얘기하고, 응원하고, 격려했었던 시간이 지금도 가끔 기억이 난다. 그리고 우리가 첫 직장을 다니면서 종종 어울려 만날 때마다 친구가 했던 말도 생각이 난다.

'내가 회사 선배한테 너 자랑 엄청했어. 내 주변에는 너처럼 그런 기술력 갖고 있는 사람이 없거든. 난 내가 자랑스럽다 친구야'


그 친구와 난 잠깐이지만 한 회사에서도 함께 근무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친구와 난 부서가 서로 다르기도 했고, 파견 근무가 주 업무였던 친구와 외근이 잦았던 내가 회사에서 서로 마주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더욱이 우리가 같은 회사를 1년도 채 다니지 않았을 때 친구는 이직을 위해 퇴사를 했고, 그렇게 우린 스쳐가는 사이처럼 잠시 같은 회사에 함께 머물다 잊힌 사람들이 되어갔다. 마치 한 이름의 회사에 머물다 간 시간이 없었던 사람처럼. 우리는 다시 서로의 소식을 건너서 듣는 존재가 되어갔고, 더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소식조차 모르는 사이가 되어갔다.


한창 바쁠 시기인 30대도 지나가고, 직장에서의 소속감도 무뎌지고, 이젠 위보다 아래를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40대 중반을 넘어섰다. 그렇게 나이가 들면서 주변에 자주 어울렸던 지인, 함께 일하던 동료들도 이제는 하나, 둘씩 관계가 소원해지고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어도 계속 이어갈 관계만이 남는 것 같다. 사람의 기억이 무한하지 않듯이 그렇게 많던 인연들도 회사를 여러 번 옮기며 기억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 갔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잊혀 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기억 속에 잊혔다고 생각했던 그 친구가 몇 년 전부터 자주 생각이 난다. 그 친구의 활짝 웃던 미소와 호탕하던 웃음이. 마치 내 머릿속 기억이 아닌 향기로 남아 있는 것처럼. 친구는 잘 살고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지는 휴일 오후다.


난 잊히지 않는 그 향기 때문에 내년 봄에도 우리 집 베란다 화분에 있는 라일락 나무에 꽃 봉오리가 활짝 피기를 기다릴 것이다.



제 글을 구독해주시는 많은 구독자 분들과 작가님들에게 양해 말씀드려요.

최근 본캐로서의 업무로 글을 쓸 시간적 여유가 많이 부족해졌어요. 워크와 라이프의 밸런스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부득이하게 그 밸런스가 최근에 깨져버렸네요. 1주일에 월, 수 , 금 세 번씩 올리던 정기적 발행 글을 당분간은 1주일에 2회 정도로 줄일까 해요. 다시 생활이 정상화되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정상적 글 발행을 할 예정이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다들 매 순간 건강 잘 챙기시고, 항상 웃음 가득한 행복한 날 가득하시길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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