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을 속앓이 하던 내 첫사랑은 그렇게 혼자 좋아하다가 고백하는 순간 광속으로 결론이 지어졌다. 그 친구의 집 앞에 찾아가서 친구를 기다린 시간에 비하면 1분도 안 지났을 것 같은 시간이 너무도 허무한 결론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난 그 결과를 예상이라도 한 듯 마치 스포츠 승패의 성적표를 받아 든 운동선수와 같이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시원하게 결전의 장소였던 그곳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서 나왔다. 미련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몇 달간 혼자 끙끙거렸던 내 마음을 생각하면 뭐가 되었든 결론이 나온 것이 오히려 시원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래 봤자 지금의 내 아들보다 적었던 열일곱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추억일 뿐이다.
처음은 너무도 이상한 마음에서부터 시작됐다. 한창 학업에 억눌리고, 대학만을 목표로 달리던 그 시절엔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치기 어린 반항들이 많지 않았다. 야간 자율학습 땡땡이를 친다던가, 미성년자 관람불가인 영화를 영화관에서 본다던가, 출입이 불가한 호프집이나 대학교 앞 주점에 들어가 대학생 인척 술을 먹는다던가 하는 일이 몇 안 되는 일탈이었다. 그중에 친구들까지 부러워하는 일탈은 이성 친구와의 교제였다. 생각해보면 '피식'하고 웃음이 나는 추억거리들이지만 그 시절에는 그런 일탈행동에 친구들은 부러운 시선으로, 그런 행동을 한 녀석들은 우쭐한 마음으로 그 우스운 행동들을 이어갔던 것 같다. 귀엽게도 말이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지방은 고등학교가 많지 않았다. 특히 취업이 목적인 상업고등학교나, 농업고등학교를 제외하면 일반 고등학교는 3개가 전부였다. 그중에 남자 고등학교와 여자 고등학교가 각각 한 개뿐이라 양쪽 학교 간에 교류(?)는 종종 있어왔다. 서로 간에 소개팅, 미팅 등이 그런 교류 중 하나였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 가장 흔하게 했던 교류가 반팅이었다.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너무도 생소한 얘기겠지만 그 시절에는 남자 고등학교 한 반과 여자 고등학교 한 반이 단체로 모여서 롤러스케이트 장이나, 다른 큰 장소를 빌려서 게임도 하고, 장기자랑도 하면서 주말 오후를 즐겼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자주는 아니었지만 2학년 때만 2번을 했으니 좁은 시골에서 서로 얼굴이나, 최소한 이름 정도는 한 다리만 건너면 대부분 알만큼은 된다.
내 첫 짝사랑의 시작은 그렇게 반팅에서 시작됐다. 호기심 반, 설렘 반 나갔던 반팅에서 우연하게 알게 된 그 친구는 처음에는 이성에 대한 설렘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냥 인사만 하고, 재밌게 놀고 헤어진 게 고작이었다. 연락처를 묻지도 않았고, 그냥 이름 정도만 기억한 체 그 반팅은 끝이 났지만 오히려 반팅 이후에 내 감정을 양 떼 몰이하듯이 친구들은 '잘 어울린다', '수진이도 너한테 관심 있는 것 같더라' 등으로 내게 없던 감정을 만들었고, 그렇게 하루하루 얘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그 친구에게 관심이 생겼다. 하지만 학교도 달랐고, 전화를 할 용기도 없었으며, 가장 중요한 건 그 친구와 얼굴을 맞대고 얘기한 건 고작 그날 반팅 때 2시간이 전부였다. 날 어떻게 생각할지도 모르고, 사실 나도 그 친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 체 그렇게 내 감정을 속여가며 고백하는 건 내가 원하지 않았다.
그러다 말겠지 생각했던 내 감정은 개학날은 다가오는데 방학 내내 시작도 못한 그림일기 같이 하기 싫은데 해야 하는 마감이 정해진 숙제 같았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내다 난 큰 결심을 하게 됐고, 결국은 그 친구의 집 앞에서 학원에서 돌아오는 그 친구와 마주 췄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친구와 둘이서만 얼굴을 보며 짧은 대화를 나눴다. 물론 보기 좋게 까였지만. 그렇게 상처를 받은 것도 아니었고, 아쉽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속을 털어놓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으니 그걸로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고 나니 내 어설펐던 첫사랑(?)은 그렇게 시작도 하기 전에 끝이 났다. 그래서 누가 내게 첫사랑을 물어보면 선 듯 얘기하지 못한다. 내가 그 시절 그 친구를 좋아하긴 했나 하는 생각이 나조차도 의문스럽기 때문에 지금은 사실 오랜 친구들끼리 장난 삼아하는 말들이 고작이다. 몇 해 전 친구들 모임에서 한 친구가 예전 그 친구 얘기를 꺼내면서 조심스러운 눈으로 내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자신의 얘기에도 내가 별반응이 없자 그제야 내게 그 친구의 근황을 조심스레 꺼냈다. 친구의 얘기를 정리하면 결혼한지는 꽤 시간이 지났고, 시집 잘 가서 서울 모처에서 베트남 음식점을 한다고 내게 귀띔했다. 크게 관심이 가지도, 그렇다고 흘려듣지도 않았다. 그냥 예전 한 때 스쳐갔던 인연이었던 정도로 기억만 될 뿐 지금의 내겐 큰 의미도, 작은 설렘도 없다.
있지도 않은 감정을 만들었던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친구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을 먼저 해보고 싶었던 욕심도 있었고,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때로는 친구들이 먼저 해봤던 경험들이 있을 때면 어떻게든 뒤쳐지거나, 소외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 행동이 바른 행동이 아니었음에도 행했던 적도 있었다. 30년이 넘은 해묵은 감정까지 기억하기는 어렵지만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이나, 규정 아래 한창 방황하고, 혼란스러워하고 때로는 객기 부렸던 그 시절조차도 조금은 부끄럽지만 가장 소중했던 시간 중 일부였고, 잊히지 않는 추억으로 남았다.
누구에게나 추억은 있기 마련이다. 그 추억이 소중했던 시간이었을지, 잊고 싶은 시간이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시간의 소중함이나 가치는 추억을 간직한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듯하다. 하지만 자신들이 지나온 그 시간만큼은 존재했었던 사실이라는 것은 숨기기 어려운 현실이다. 오늘의 내가 있고, 나의 가족이 있고, 나의 행복한 시간이 존재하는 한 내 추억만큼은 소중하게 기억되고, 간직하는 게 지금의 내게도, 과거의 내게도 꼭 지켜야 할 도리이자, 의무가 아닐까. 오늘을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도, 몇 년 아니 몇십 년이 흘렀을 때는 소중한 가치를 가질 내 소중한 시간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래서 난 어제를 충실히 살았고, 여전히 오늘도 충실히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