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렸을 때에는 부모님과 함께 조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명절을 지내러 다녀오곤 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명절을 지내러 고향을 내려간 건 언제나 나 혼자였다. 그 시작은 아마 부모님이 마트를 하시면서 명절 대목에 마트 문을 닫을 수 없게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여동생은 많이 어렸고, 난 아버지를 대신해 늘 명절 제사에 참여를 했었다.
아버지 형제는 작은 아버지밖에 없었고, 조부모님이 모두 건강하게 살아 계셨던 때라 늘 명절은 조부모님 댁에서 부모님 없이 보냈었다. 게다가 명절 차례도 할아버지 형제들이 모여서 하던 집안 행사였다. 추석이나 설에 차례를 지내기 위해 나와 작은 아버지는 항렬이 가장 손위 뻘인 큰 할아버지 댁을 찾았고, 문중 사람들이 많다 보니 마당에서부터 모인 사람들로 북적북적했었다. 문중의 제사였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나진 않지만 많은 어른들과 그 모인 어른들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모였었다. 할아버지 댁은 옛날 시골집이어서 넓은 툇마루가 있었고, 마루 입구에 그득한 신발 숫자만 봐도 모인 사람들의 숫자는 무척이나 많은 숫자였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옛날 집이 대부분 그렇듯 할아버지 댁도 넓은 툇마루에 차례상이 차려졌고, 그 마루에 올라갈 수 있는 인원은 제주(祭主)를 포함해 집안 어른들 중 서열이 꽤 위에 계신 분들로 제한적이었고, 서열이 낮은 작은 아버지나 삼촌들은 마당에 자리를 깔고 차례를 지냈었다. 물론 나 또한 마당 한편에 펴 놓은 돗자리 위에 자릴 하고 차례 순서도 모르지만 어른들의 행동을 따라 차례가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짧게도, 어떤 땐 길게도 절을 하며 명절 차례를 지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명절 제사를 지내러 가면 무척 많은 분들이 모였고, 그렇게 모인 분들은 서로 오랜만에 만나는 사이임에도 신기하게 다들 어제 만났다 헤어진 사이처럼 너무도 사이좋게, 편한 웃음을 하며 안부를 묻곤 했다. 물론 일 년에 한두 번 찾는 나에게도 어른들은 반갑게 인사를 하셨고,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설날에는 세뱃돈도 주셨다. 그렇게 몇 해간 명절 차례를 지내다가 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큰 집을 팔고 큰 할머니가 큰아버지 댁으로 들어가시면서 제사의 규모는 줄기 시작했다. 그래도 할아버지 형제분 슬하의 자식들이 모두 모여 제사를 하는 건 변함이 없었다. 다만 예전엔 문중 제사처럼 지내던 규모가 어느새 삼 형제 슬하의 자식들과 그 자식들의 자식들로 규모가 줄었다.
명절 제사는 할아버지 세 분이 모두 돌아가시고 나서 다른 방식으로 변화되었다. 할아버지 세 분의 장남인 큰아버지 두 분 댁과 우리 집 세 곳을 옮겨 다니며 제사를지내게 됐다. 그렇게 세 곳을 옮겨 다니며 제사를 지낼 즈음에는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마트가 어려워져 마트를 폐업했을 때였다. 그래서 당시 우리 집에서도 명절 차례를 포함해 할아버지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을 때였다.
명절 차례 순서는 제일 큰 집인 큰 아버지 댁부터 차례를 지내기 시작해서, 두 번째 서열이셨던 내 할아버지 제사를 모셨던 부모님 댁 그리고 마지막 작은할아버지 제사를 모신 큰 아버지 댁까지 차례를 지내야 명절 제사가 모두 끝났다. 걸어서 이동을 할 수 있는 거리도 아니어서 늘 오전 8시부터 시작한 제사의 끝나는 시간은 11시가 넘어야 했다. 그렇게 제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잠깐 쉬었다 처가로 이동해야 했던 나로서는 늘 세 번의 제사가 불만일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런 불만은 나뿐만이 아닌 나와 같은 항렬에 있는 친척 형과 동생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소위 젊은 사람들이 가질 법한 불만이자, 생각이었다.친척 형, 동생들의 불만 속에서도 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같은 방식으로 명절 집안 전통 제사는 이어졌다.
그렇게 이어져오던 명절 차례도 큰아버지들이 나이가 드시고, 자식들의 성화도 있고 해서 다시 변화가 생겼다. 각자의 집에서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이다. 한 동안은 그렇게 우리 집과 작은 집만 모여서 조촐한 제사를 지냈다. 하지만 이렇게 지낸 제사도 몇 해만에 다시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집안 맏며느리셨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결국 작년 설 제사부터 제사는 나와 아내 몫이 되었다. 거리도 있고, 코로나도 문제여서 우리 집 제사엔 작은 아버지, 작은 어머니 그리고 사촌 동생은 오진 못하지만 아내와 나 그리고 아들, 딸까지 동원되어 올 해도 조부모님과 어머님을 위해 근사하게 한 상을 준비했다.
세월이 바뀌어 점점 이런 전통 제사 문화도 바뀌어 갈 수밖에 없는 듯하다. 특히 이번 명절 제사에는 아버지나 동생네 가족도 오지 않아 명절같이 않은 평소 휴일보다 더 조용한 하루를 보냈다. 예전엔 설이나, 추석이면 집에 손님이 드나들고, 처음 보는 친척 어른들까지 오는 일이 당연한 풍경이었는데 시간이 가며, 세대가 바뀌며 우리 명절 풍경도 많이 변한 듯하다. 가끔은 예전처럼 큰 마당 한가운데 돗자리를 펴놓고 시끌벅적 이야기하며 제사를 지내던 그 풍경이 생각나기도 하고, 번거롭게 여겼던 장소를 옮겨 다니며 지냈던 세 번의 제사가 그립기도 하다.
올해에는 내 아픈 허리 상태 때문에 고3인 아들이 아내를 도왔다. 아침 먹고 시작한 명절 차례 준비가 저녁때까지 이어졌고, 처음 조부모님을 함께 모신 명절 제사라 아내는 좋지 않은 몸 상태임에도 온 정성을 쏟아 차례상을 준비했다. 준비하는 내내 고생스러워 보여 마음이 쓰였지만차례상을 차려놓으니 뿌듯하고, 뭔가 도리를 다한 기분에 고단함도 다 잊은 듯한 아내의 모습이다.
처음으로 우리 가족끼리 보낸 명절이라서 그런지 더 조용하게 보낸 휴일이었다. 오랜만에 할머니 집을 찾은 위층 아이들의 들고뛰는 층간 소음이 없었다면 명절이 아닌 영락없는 평범하고, 조용한 하루였을 것 같다. 전통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더 옛것이 그리워지는 이번 추석이다. 내년 설 명절에는 아버지와 동생네라도 함께 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소심하게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