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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Oct 28. 2021

아내의 소원

물론 엄마 아들이 먼저고 그다음이 제 아들이죠

 "엄마, 오빠 이직하고 민수 대학 합격 꼭 신경 써주셔야 해요"



지난달 외삼촌 부고 소식을 듣고 아내와 고향에 다녀왔다. 외삼촌 장례를 치르는 곳이 다행히도 고향이라 장례식에 들렀다 오랜만에 어머니를 모신 봉안당을 찾았다. 난 어머니를 찾아뵌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아내는 일 년 만에 찾은 터라 어머니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하는 듯했다.


마침 아내는 어머니가 생전에 누구보다 사랑한 당신의 아들과 손주의 고민 해결을 위해 어머니 살아생전에도 하지 않던 부탁이라는 이름의 청탁을 하고 있었다. 난 이직에 대한 고민을 절실하게 하던 때였고, 수능을 코앞에 앞둔 아들은 말하나 마나였다. 집에서도 아침, 저녁으로 생각나면 아들 대학 합격 기원을 빌어야 된다는 아내는 시어머니 봉안당에서도 아들의 합격 기원을 비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엄마, 어머니 손주 올해 고3인 건 아시죠? 지원하는 대학 꼭 합격할 수 있게 엄마가 거기서 잘 살펴주세요"

어머니 사진 앞에서 아내는 손까지 마주 잡고 아들 합격기원을 제대로 기도하는 듯 표정을 지었다. 이런 아내를 보며 장난기가 발동한 난 아내에게 장난스럽게 말했다.

 "하하, 오랜만에 엄마 찾아와서 엄마한테도 청탁하는 거예요?"

그런 내 장난스러운 말에도 아랑곳없이 아내는 자신이 진심임을 강조하듯이 대꾸했다.

 "빌 수 있는 곳에는 다 빌어야죠. 그리고 사랑하는 손주 합격을 당연히 할머니도 원하실 테니 빌어야죠"

 "그래요. 엄마가 많이 신경 써시겠네요"


아내의 이런 진심 어린 말에 나도 조금은 머쓱해져서 납골묘 안의 어머니의 웃는 사진을 다시 바라보며 아들의 합격 기원을 마음속으로 진심으로 기도했다. 아내는 이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내 곁에 더 다가와 다시 한번 두 손 모아 어머니께 기도했다.

 "엄마, 엄마 아들 요즘 힘든 건 아시죠? 오빠 이직도 성공할 수 있게 신경 좀 써주셔요. 물론 엄마 아들이 먼저고, 그다음이 제 아들이죠"


아내는 지난 몇 개월간 내가 이야기하는 업무 스트레스와 이직에 대한 고민을 고스란히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오히려 내가 느낄 부담 때문에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표현을 안 했을 뿐이지 아내 스스로도 내가 받는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삭히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아들이 들으면 조금은 섭섭할 얘기였지만 오늘 고향길은 아이들을 뺀 아내만 동행한 길이라 아내의 진심 깃든 립서비스가 듣기 너무 좋았다. 다행히 이런 아내의 청탁 때문이었는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이직은 좋은 결실을 맺게 되었다.


당연한 수순이지만 나의 이직 결정 이후 모든 소원은 아들의 대학 합격 기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남은 한해의 모든 운은 아들에게만 가야 한다는 아내의 논리였다. 꿈자리가 좋아서 복권을 사려고 할 때도 아내의 이런 논리적 사고는 발동했다. 아들 대학 합격 전에는 우리 집에서는 어떤 운도 다른 곳에 빼앗길 수 없다는 합리적이고, 타당한 사고였다. 아들의 대학 합격을 위해 올 한 해 우리 집에서는 미역국을 아예 먹지 않기로 한 일과 일맥상통했다.


아들은 3년 내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희망하는 대학에 지원했고,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런 아들은 운보다는 자신이 갈고닦은 실력으로 자신이 원하는 대학을 꼭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아주 사소한 운이라도, 사소한 미신이라도 간과할 수 없다. 왜냐고 물으면 부모라는 이유 말고는 딱히 이유는 없다.  


아내는 오늘도 내게 당부 아닌 당부를 한다. 아들의 합격을 기원하느라 내게 무관심하다는 오해를 줄까 봐 걱정은 하지만 자신의 태도를 조금 더 명확하게 의견 제시를 한다.

 "철수 씨, 너무 서운해마요. 철수 씨는  이직 성공했으니 됐잖아요. 앞으로는 철수 씨가 알아서 잘하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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