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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Nov 22. 2019

나의 힐링 보고서, 제주별, 올레국으로의 여행

다시 찾은 올레(1)

나의 올레의 시작은 2015년 어느 날 함께 근무하는 팀 동료 중에 한 명이 제주도에 여행을 간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부터이다. 그는 여행을 좋아했고, 나와 마찬가지로 차 없는 여행을 즐겨했다. 차이가 있다면 나는 가장이고, 그는 솔로라는 점 정도.

  그의 제주도 올레에 대한 기대와 행복은 출발 전부터 나에게 설렘과 부러움을 선물했고, 다녀와서 그의 아쉬움과 행복감은 함께 근무하는 나에게는 참기 힘든 바이러스로 나의 온몸 구석구석에 퍼진 기분 좋은 열병이었다.  그렇게 행복한 열병을 앓던 11월의 어느 날 가족들을 이끌고 처음 올레길 행복 여정에 승선했고, 다녀온 이후에도 그 행복감은 나의 또 다른 여행의 길을 제시해 줬다. 그 이전에도 수 차례 제주도 여행길에 다녀왔지만 이처럼 길과 우리만 보고 다녀왔던 여행은 처음이라 여행이라기보다는 가족을 돌아보고, 나에게 행복 타임을 준 힐링 자체로 기억된 시간이었다. (15년 올레길 에세이는 "벼락 앞에 장사는 없었다. 왜 하필 그때...", "두려움을 떨친 마법같은 위로의 노래" 발행 글 참고)



19년 10월 나에게 찾아온 또 한 번의 행복 바이러스.

진행해오던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즈음, 오랜만에 온 여유와 지친 일상을 치유하고픈 욕구에 나의 기분 좋은 열병이 다시 도졌다. 2년 만에 가는 제주 올레길. 출발 전부터 너무도 설레었고, 행복했다.

 '원래 여행의 행복감은 계획하면서부터 출발 비행기 탈 때까지라고 했던가?' 

하지만, 나에겐 이 행복 바이러스는 올레 여행을 계획하면서부터 돌아오는 비행기 탑승전까지 이어졌다.

  여행을 계획하면서 다녀올 올레코스를 정해야 했고, 정해진 올레코스에 맞게 숙소를  예약하여야 했다. 평일 일정이라 1박 2일의 짧은 계획이었지만, 혼자 가는 여행이라 나름 이틀을 꽉 채워 사용할 수 있어서 조금은 아쉽지만 그런대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다녀왔던 길을 제외하고, 올레 공식 사이트를 통해 여행할  코스를 확인해 보았다.  이번 올레길에서는 자유, 힐링, 나만을 위한 여행으로 테마를 잡고 준비하였다. 최종적으로 정한 코스는 시흥초등학교에서 광치기 해변까지 가는 15.1Km의 난이도 중인 1코스와 남원포구에서 시작해 쇠소깍 다리까지 가는 13.4 Km의 난이도 중인 5코스(실제로는 15.6Km)로 정했다.  숙소는 1코스와 가까운 성산일출봉 내에 펜션을 예약했고, 성산일출봉 근처에 숙소를 잡은 것은 2일 차 새벽에 성산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서였다.


<<올레 1코스, 힐링의 시작>>


알람 소리에 잠이 깼다.

4시 20분, 평소보다 1시간 이상 일찍 일어난 몸이 조금은 무겁게 느껴진다. 잠이 덜 깬 눈으로 부지런 아닌 부지런을 좀 떨었더니 몸은 금세 각성을 했고, 곧 2주를 기다려온 올레길을 만날 생각에 몸은 자기 전 설렘에 연장 모드로 돌아왔다.

  서둘러 아침을 커피와 모닝빵 조금으로 해결 후 공항 가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시간적으로 여유는 있었지만 오랜만에 공항 가는 길이라 설레고, 새벽녘 싸늘한 공기덕에 조금은 떨리기까지 한다.


  공항 도착, 새벽 5시 30분도 안된 시간인데 김포공항 국내선 입국 청사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평일 이른 새벽시간부터 이리 여행길에 오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에 조금은 놀라웠고, 함께 가지 못하는 가족들에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6시 15분. 드디어 비행기는 서울 땅에서 하늘로 솓았고, 1시간이 채 안되어 제주 별에 도착했다. 비행기 도착 후 공항에서 간단히 비상식량(물, 초코바)을 구비하고, 1코스 시작점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제주 별 안에서도 차량이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한 이동은 어느 정도 시간 소요될 것을 감안해야 했고, 나 또한 어느 정도의 시간 계산하에 번의 환승과 총 86개 정거장을 가는 지루한 아침을 감수했다. 버스가 달리는 길이 제주 별이기에 망정이지 출근 교통편이 이렇게 지루하면 회사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도 벌써 갔을 거 같다.



1시간 40분 이동 끝에 1코스 출발점인 시흥초등학교 근처.

출발점은 시흥리 시흥초등학교 근처. 적당한 높이의 말미오름과 알오름을 연속해서 지나는 초반 코스는 약 1시간 정도 소요가 되는 길이다. 등산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제주의 오름은 낮은 구릉이나 동네 인근의 뒷산과는 또 다른 매력을 주는 것 같다. 말미오름은 말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것이고, 말미오름을 따라 오르다 어느 순간 나도 몰래 탄성이 나오는 풍경이 펼쳐졌다.

  정면에 우뚝 솟아 펼쳐진 성산일출봉과 좌측 길게 한눈에 들어오는 우도를 볼 수 있었다. 날씨가 맑지는 않아서 시계가 좋지는 않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서 감탄을 쏟아내기에는 충분한 그림을 보여준다. 가끔 길옆 풀숲에서 소나 말이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1코스에서 볼 수 있는 덤이다.


   잠깐을 내려왔다 다시 오르는 오름은 알오름. 날이 좋을 때는 한라산과 제주 동부의 오름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오름이다. 알오름을 내려와 만나는 첫 마을은 종달리이다.  종달리에서 만나는 느낌은 '백 투 더 퓨처', 걷다 보면 잠깐이지만 과거로의 여행인가 착각이 들게끔 한다. 아기자기한 느낌의 카페, 엔틱 한 느낌의 식당 그리고 7080 느낌의 올드한 가게까지 크지는 않지만 1번 길의 시작다운 '테마가 있는 마을'의 느낌이다.


  길 위를 걷다 보면 평소 꽃집이나 꽃 시장에서 보지도 못하는 야생 꽃이 한껏 청순한 얼굴을 보이다가도, 어떤 때는 요염한 자태를 뽐내는 것도 볼 수 있다. 그 색상도 어찌 그리 다양한지 가을이라는 계절이 무색하게 알록달록 그 빛깔이 참 곱다. 이리 쁜 녀석들을 이 계절에 길 위에서 보다니 난 참 운이 좋구나 싶다.



  종달리를 벗어나 조금만 더 걷다 보면 드넓은 바닷길이 열리고 바다 건너 아주 가까이 우도와 성산 일출봉을 두 눈에 담느라 가는 길이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해안도로 따라 뻗어진 해변은 한적한 마을에 운치를 더하고, 조용히 스며드는 파도 끝 저 멀리 유유자적 떠있는 요트 한 대가 한층 더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길 위를 걷다 보니 눈에 들어온 우뚝 솟은 봉우리  하나.  어느새 성산 일출봉의 웅장함은 길 위의 여행자에게 자연 앞에 겸손하라는 가르침을 주고, 깎아지른 절벽을 보며 나는  날 선 마음에 비장함으로 숙연해지는 기분이다. 태고적의 모습 그대로인 것처럼 멀리 보이는 일출봉의 모습은 장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절벽 위 손님이 조금은 북적이는 카페에는 천국으로 오를 수 있을 듯한 하얀 계단이 인상적이고, 계단 뒤로 보이는 검푸른 바다가 판타지 한 느낌까지 더 한다.

어느새 짧은 길은 끝을 보이고, 나의 1일 차 힐링 발걸음은 이젠 한없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마지막 광치기 해변을 따라 걸으면 길의 끝이자, 또 다른 길의 시작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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