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도 아닌데 시험을 볼 수 없다니요

아이들 시험도 코로나가 만든 또 다른 일상의 모습입니다

by 추억바라기

"지수야, 오늘은 좀 일찍 자. 이제 시험이 며칠 남지도 않았는데 컨디션 조절해야지"


시험을 며칠 앞두고 딸아이는 마음도, 몸도 급한 것 같아 보였다. 학원을 다녀와서 방에 들어가면 좀처럼 방을 나오는 일이 없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책상을 벗어나지 않고, 며칠 남지 않은 시험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아내는 이런 딸아이의 공부법이 늘 불만이었다. 기말고사 보기 한 달 전부터 아내는 딸아이에게 기말고사 준비를 미리미리 해야 한다고 얘기를 해왔다. 이런 아내의 말에 딸아이는 대답만 할 뿐 며칠 전까지 정작 시험 준비는 뒷전이었다.


딸은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더니 시험을 치르기 불과 며칠 전부터 마음이 급해진 듯 보였다. 딸은 당장 눈앞에 시험 날짜가 다가오자 전혀 준비가 안된 상황을 후회했다. 하지만 평일 저녁시간에는 학원을 쫓아다니고, 학원을 다녀와서는 학원 숙제를 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좀처럼 학원에서 배우는 수학과 영어를 제외하고 나머지 학과목에 대한 시험 준비를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딸아이가 택한 방법은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며칠 전 '가정학습' 신청을 하고 학교를 가지 않는 대신 낮 시간에 시험 준비를 하는 선택을 했다.


이렇게 시험 며칠 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믿었지만 이틀간의 가정학습은 하루 만에 상황이 바뀌어 버렸다. 가정학습을 하면서 공부했던 딸아이는 다음날 아침에 머리가 어지럽고, 아프다고 통증을 호소했고, 결국에는 가정학습을 낸 이튿날에는 제대로 공부도 못하고 몸을 쉬면서 컨디션 조절에 나섰다. 그렇게 딸은 하루를 쉬고 나자 조금은 올라온 체력으로 다시 주말을 시험 준비에 몰두했고, 일요일 오후까지만 해도 그런 텐션을 유지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평소 몇 배 이상을 책과 씨름하던 딸의 얼굴은 '나 너무 피곤해'라고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이틀을 늦게 잠을 잔 딸의 눈 밑은 어느새 검게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었고,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은 창백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런 딸아이가 안쓰러운 건 아내도 마찬가지였고, 결국 아내는 딸에게 휴식을 권했다.


"지수야, 오늘은 좀 일찍 자. 이제 시험이 며칠 남지도 않았는데 컨디션 조절해야지"

"할게 많아서 안돼요. 시험 끝날 때까지만 지금처럼 할게요"


난 공부를 하겠다는 자식을 말릴 수가 없어서 침실로 들었고, 늦은 시간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딸아이 방을 보며 잠이 들었다. 하지만 늦은 시간까지 불빛이 새어 나오는 딸아이 방을 자다 깨다 하면서 나까지 잠을 설쳤고, 덕분에 출근하는 월요일 아침이 개운하지가 않았다. 그렇게 또 하루가 갔고, 월요일 퇴근을 앞둔 늦은 오후가 되고서야 상황이 나빠졌음을 알게 되었다. 갑자기 아내에게서 카톡 메시지가 들어왔고, 메시지 내용에는 딸아이가 열이 난다는 내용이었다. 딸아이의 발열과 몸살처럼 몸이 아프다는 소식에 며칠간 무리한 게 원인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아픈 딸아이가 너무 걱정스러웠지만 당장 더 큰 걱정은 코로나 의심증으로 내일 등교가 어려워졌고, 기말고사를 치를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시간은 이미 여섯 시에 임박했고, 아이가 늘어져 잔다는 말에 우선은 아내에게 잠을 좀 자게 두라고 하고 퇴근을 서둘렀다. 집에 갔더니 여전히 딸은 잠을 자고 있었고, 아내는 학교와 연락한 결과를 내게 알려줬다. 발열이 있거나, 다른 코로나 의심증상이 있으면 시험을 치를 수 없고, 코로나 음성 결과지가 있더라도 발열 증상이 있으면 학교에 등교할 수 없다고 했다. 학교의 방침은 명확했고, 딸의 중학교 기말고사 시험기간이 이틀이기 때문에 내일 아침 코로나 검사를 받고, 모레 결과가 음성이라고 하더라도 열이 떨어지지 않거나, 감기 증상이 있으면 시험을 치를 수 없게 됐다. 시험이야 둘째치고 우선은 아이의 상태를 확인해야 했기에 집에 있는 진단키트로 선행검사를 했고, 다행히 결과는 음성이 나와서 죽을 먹이고 일찍 재우는 게 최선이었다.

다음날 아침 아내는 딸아이와 함께 선별 진료소에 방문해 코로나 검사를 받게 했고, 검사 다음 날 '음성' 결과를 통보받았다. 하지만 검사 결과와는 상관없이 딸은 열이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학교를 갈 수가 없었고, 며칠간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딸은 기말시험을 볼 수가 없었다. 시험을 치를 수 없다는 말에 딸은 처음엔 무척 실망한 눈치였지만 정작 시험기간이 지나고 학교를 갈 수 있는 몸 상태가 되자 언제 그런 마음이었냐는 듯 예전과 똑같은 학창생활을 보내고 있다. 불과 시험이 끝난 지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딸아이는 예전과 같은 중학교 2학년 모습으로 돌아가고 후회하거나, 아쉬워하는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안타까워해야 할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프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하는 게 맞을 듯싶다.


연일 칠천 명이 넘는 숫자를 갱신하며 코로나가 보편화, 일상화되어 가는 요즘 살아가는 생활 요소요소에 예전과 다른 기준이나 규칙들이 생겨나고 있다. 과거와는 다른 기준과 규정, 규칙들로 인해 많은 불편함이나 불안감은 있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조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래도 지금의 우리 아이들 세대보다는 많은 걸 해보고, 지금과 같은 불편함, 불안감이 없던 시절을 살아왔던 세대로서 지금의 세대들이 불편함을 잘 견뎌내고, 이겨내는 게 대견스러워 보일 때가 많다. 우리 아이들만 봐도 코로나 사태가 심해진 2년여 동안 학교에서 하는 수학여행, 졸업식, 수련회 등은 생각할 수도 없는 호사가 되어버렸다. 당장 큰 아이의 졸업식부터 대학 입학 후 아이가 누려야 할 많은 생활들이 걱정이다. 늘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학교생활을 잘 이어나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딸의 이번 시험 사건으로 막상 아이보다 어른인 우리가 더 놀랐다. 우리 세대에서는 시험을 칠 수 없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인생의 사건으로 기억이 되었겠지만 요즘은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고등학교 3학년인 큰 아이 지난가을 중간고사 기간에도 수시를 준비하던 친구 한 명이 시험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이유는 가족 중에 한 명이 코로나 확진이 되는 바람에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 학교를 나올 수 없게 된 일이 있었다. 아들의 친구는 결국 중간고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내신 등급이 1등급이었던 그 친구는 결국 내신으로 가는 수시 입시를 포기하고 수능으로 대학 진학하는 정시로 목표를 바꿨다고 들었다. 잠시는 확진이 된 가족에게 화가 나고, 속상했겠지만 아들 말로는 친구는 씩씩하게 다시 학교를 다녔고, 수능까지 무사히 잘 치렀다고 들었다.


코로나로 많은 걸 포기하고, 새로운 기준과 규칙 아래 우리들은 살아가고 있다. 오늘 가능했던 게 내일은 안되고, 새로운 기준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생겨난다. 귀찮고, 불편하지만 우리는 또 지금처럼 살아간다. 언젠가는 예전과 비슷하게라도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오늘을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정말 언젠가는 좋아지겠지 하는 막연함을 안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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