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이 모두 일 닭 했더니 사장님이 나섰다

좋은 핑계는 언제나 사람에게서 나온다

by 추억바라기

일 년 만이었다. 코로나가 지금보다는 조용한 날 작년 언제 이후 일 년 만이었다. 종로 3가 옛 피맛골 뒷골목 술집에서 수육과 막걸리로 목을 축이며 웃었던 그날 이후 딱 일 년 만이었다. 올해는 코로나도 코로나였지만 내 아들과 한 친구 녀석 딸이 수험생인 관계로 다들 알아서 모임을 자제하고 쉬쉬하는 눈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중 한 녀석이 운을 뗐다. 사십 대인 우리가 코로나 예방접종 시기가 되었을 때쯤 안부도 물을 겸, 생사(?) 확인을 이유로 단체 톡에 모임 얘기를 꺼냈다. 안부는 뒷전이었고, 다들 얼굴 보며 술잔을 기울이며, 머리 아프게 계산도 필요 없고, 저울질이 필요 없는 벗을 그리워하는 눈치였다. 친구들 모두는 기다렸다는 듯이 모임을 적극 찬성했고, 최종 일정은 코로나 예방 접종 후를 기약했다.


얼마 전 읽었던 '김호연 작가'의 『망원동 브라더스』의 '결국 내가 연락해야 되겠다. 솔직히 그들이 보고 싶었다. 역시 좋은 핑계는 언제나 사람에게서 나온다'라는 구절이 생각났다. 다른 이유 없이 우리도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모이고, 모이니 그냥 좋았다. 그렇게 모임 이야기를 꺼낸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우리는 종로 3가의 장작 냄새가 나는 훈제 바비큐 치킨집에서 모였다. 미리 약속 장소를 잡은 것이 아니라서 여기저기 기웃거려 봤지만 사람이 많은 곳, 시끄러운 곳을 선호하지 않는 녀석들 때문에 다른 곳에 비해 조금은 한산하고, 매장이 넓은 곳을 찾아들어가다 보니 눈에 보이는 훈제 치킨집이 답이었다. 다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직진했고, 허기진 배와 갈증을 채우기 위해 치킨과 맥주를 시켰다.


원래 모임이라는 게 제시간에 정확히 맞춰서 오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꼭 한 두 명씩은 빠지거나, 늦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섯뿐인 이 모임에 오늘도 한 친구가 나오질 못했고, 일이 바빠서 한 친구가 늦었다. 늦게 온 친구까지 모두 모이자 모두 모임에 빠진 친구가 왜 빠졌는지, 어떻게 하면 다음 모임부터 함께 할 수 있을지를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다. 사실 모임에 빠진 친구는 상습적이다. 그 친구를 모임에서 함께 하려면 한 달 전에는 약속을 잡아놔야 된다는 얘기도 나왔고, 친구는 모임에서 아예 술을 입에 대지 못하게 하고 얼굴만 보고 들여보내야 된다는 의견들도 나왔다.


다들 입으로는 모임에 빠지는 친구 욕을 하면서도 그 속내는 그리움과 아쉬움이 잔뜩 묻어있는걸 우린 서로가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 다들 모임을 다음 달에 한 번 더 갖자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지금 날짜를 잡고 친구에게 스케줄을 비우라고 얘기하란다. 그런다고 정말 그 친구가 모임에 나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늘 기다려주는 녀석들 마음을 그 친구는 알까 싶었다. 정말 다음 모임에는 어떤 수를 쓰더라도 모임 자리에 앉혀야 되겠다는 생각이 더 절실하게 들었다.


친구 얘기가 끝나자 자연스럽게 수험생을 둔 나와 한 친구의 올 한 해 가장 신경 쓰이는 문제로 화두가 옮겨왔다. 녀석들은 한결같이 조카(내 아들, 친구 딸)들 걱정으로 안부를 묻는다. '애들 컨디션은 괜찮지', '수능 준비는 잘 되어가냐', '합격자 발표난 곳 있냐' 등등. 분위기가 조금 오르면 늘 나서는 한 친구 녀석이 호기롭게 나선다.

"친구들아! 민수하고, 다정이 합격하면 내가 소고기 쏜다. 삼촌이 이렇게 응원한다고 전해줘" 친구는 손바닥으로 가슴까지 팍팍 쳐대면서 응원을 몸소 보여주는 것 같이 행동했다.

"하하, 알았어. 그리고 고맙다. 그나저나 소고기 쏠 때 우리 집사람도 나간다고 할거 같은데 괜찮겠니?" 친구의 얘기를 아내에게 전하면 분명히 따라나선다는 이야기를 할 것 같아 슬쩍 친구에게 겁을 줘봤지만 녀석이 한 수 더 뜬다.

"당연히 되지. 니들도 와라 하하. 그 정도는 안 아까워"


녀석들과의 얘기는 가장 '핫(HOT)'한 수험생 두 아이 얘기에서 자연스럽게 친구들 아이들 얘기로 옮겨갔다. 친구 중 한 녀석은 둘째가 공부를 무척 잘한다고 한다. 하지만 자사고에 몸담고 있는 그 친구는 자신의 아들을 너무 잘 알고, 자율형 사립고나 특목고의 생태를 너무 잘 알고 있어서 한 걱정이었다. 과학고등학교나 특목고를 염두에 두고 있는 자신의 아들이 학교 진학 후가 걱정이라고 한다. 그 배경에는 과학고, 특목고 진학은 문제가 안된다는 자신감이 깔려있었다. 남이 얘기하면 조금 재수 없을 수도 있지만 내 친구의 일이니 잘하고 있는 조카도 자랑스럽고, 친구 걱정도 이해가 갔다.


또 한 친구는 자신의 4학년 아들이 물건이란다. 이번에 4학년이 된 아들이 반장이 되기 위해 썼던 연설문을 보여주며 뿌듯해했다. 연설문에는 친구 아들이 직접 쓴 글이 적혀 있었고, 자신을 풀 뚜껑에 비유하며 꼭 반장이 되도록 뽑아달라는 강한 의지와 요즘 Z세대만의 톡톡 튀는 표현까지 곁들여져 있었다.


"친구야, 그래서 승준이는 반장 됐냐?" 내 물음에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친구는 대답했고, 그 이후 자신의 아들의 변화된 모습에 얽힌 에피소드도 귀띔했다.

"응, 연설을 잘했는지 원래 인기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반장이 됐지. 그런데 이 녀석이 반장이 되고 나서는 좀 변했어"

"어떻게 변했는데?" 궁금한 나머지 다른 친구가 친구 말이 끝나자마자 조카의 변화에 대해 물었다.

"평소에 아침에 세수도 안 하던 녀석이 아침에 매일 샤워를 하지 않나. 늘 등교시간 5분 전에 나가던 녀석이 30분도 전에 학교에 간다고 나서질 않나 암튼 요즘 하는 거 보면 신기하다 신기해"


나이가 들다 보니 우리 얘기보다 자식들 얘기가 더 많아진다. 이러다 더 늙으면 다시 우리 옛날 얘기를 할 날이 또 오겠지만 난 그냥 이런 대화를 격 없이, 저울질하지 않고 나눌 수 있는 이 녀석들이 좋다, 친구가 좋은 건 그냥 이유가 없다. 그냥 보고 있으면 좋고, 이야기하면 재미있고, 가끔 감정이 상하다가도 웃고 나면 그냥 상했던 감정은 고스란히 어디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잠깐 웃다가 얘기하다 다시 웃다가를 여러 번 반복했더니 어느새 시계는 귀가 시간임을 재촉했고, 모임의 종료 시간을 재촉하는 시계가 야박하긴 했지만 아쉬움이 있음을 감사하며 우린 다음 달 모임을 기약했다. 우리 모임에서는 자주 계산하겠다고 나서는 녀석이 있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녀석의 손에 계산서가 들렸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계산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던 터라 녀석의 손에서 계산서를 뺐어 들었다.


"오늘은 김 이사가 내나? 오~ 잘 먹었어" 다들 내가 계산한다는 소리에 더 호응이 커졌다. '역시 진급하더니 사람이 달라졌어'부터 '대표보다는 이사', '대기업 부장보다 낫다'는 둥 막말 퍼레이드다. 밉상 말투지만 밉지가 않다. 그냥 악의 없는 친구의 말이란 걸 잘 알기 때문에. 그렇게 계산을 하고 가게문을 나오는데 가게 사장님이 우릴 쫓아 나왔다. 그러고서는 자신의 손에 들고 있는 진공 포장된 음료를 내밀었다. 손에 들고 있는 음료의 정체를 보니 겉봉투에는 '배즙'이라고 쓰여있었다. 선뜻 음료를 받아 드는 사람 없이 다들 멀뚱멀뚱 눈치만 보고만 있었다. 보다 못한 내가 사장님께 고사하는 말을 건넸다.


"사장님, 감사합니다만 다들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괜찮습니다" 내 얘길 들은 사장님은 예상이나 했다는 듯이 마스크 위로 눈웃음을 지으며 다시 한번 음료 든 손을 더 바짝 우리 쪽으로 들이밀었다. 그러면서 그럴 수도 있다는 듯이 조금은 자신 있고, 힘 있는 말투로 한마디 했다.

"사장님들 이거 배즙 아니에요. 저희 장인이 직접 짠 야관문입니다. 숙취에도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끝으로 친구들은 너, 나 할 거 없이 사장님이 내민 음료를 받아 들고 냉큼 입에 털어 넣었다. 입까지 다셔가며 마실 건 뭔지. 녀석들은 개눈 감추듯이 팩 속에 음료를 모두 비우고 나서야 가게를 나섰다.


"친구들아, 그거 먹고 쓸 때도 없는데 뭘 그렇게 열심히 먹냐"

"숙취에 좋다잖아 크크"

"그나저나 우리가 얼마나 팔아줬다고 이런 것도 챙겨주냐. 저 가게 사장님 인심 후하네"

"적지는 않지. 누가 남자 네 명이 와서 닭을 네 마리나 먹겠냐. 우리가 십 대도 아니고 정말 일인일 닭 했네"

"사장님 쫓아 나오실만하네"


헤어짐이 아쉬웠는지 지하철역까지 가는 내내 친구들의 수다는 이어졌고, 우린 다음을 기약하며 서둘러 지하철에 각자 몸을 실었다. 달라지면 어쩌지, 변했으면 안 되는데. 한동안 연락을 못했는데 서먹하면 어쩌지. 관계에서 오는 대부분의 우려에서 친구는 예외인 거 같다. 친구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그래 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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