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마지막 가을이 가는 것이 아쉬워 아내와 호수공원 산책을 나왔다. 가벼운 복장으로 산책하기에 좋은 코스임을 알기에 편한 복장, 편한 발걸음으로 우린 걷기 시작했다. 입동 절기에 어울리지 않는 포근한 주말 날씨였다. 연일 포근한 날씨가 이어졌어도 신기하게 나무는 계절의 변화를 알고 어느새 색동옷들을 갈아입었다. 그렇게 울긋불긋 그리고 노랗게 물든 나뭇잎들 사이로 올려다본 하늘이 시릴 정도로 파래 보인다.
가는 길 내내 걷다 서다를 반복하며 눈동자 렌즈로 담는 풍경만으로 아쉬움이 남았다. 겨우내 꺼내보려고 연신 눌러대는 셔터로 들어오는 풍경들은 가는 가을이 슬퍼 보이기까지 한 것 같다. 따뜻한 햇살이 머물다 가는 걸 시샘하는지 틈틈이 불어오는 바람에 겨울 내음이 조금씩 묻어난다. 오는 겨울을 말리지 못하는 시간 때문에 나뭇가지에 붙어있는 낙엽들도 어느새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한다.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으로 하늘에서는 때 이른 눈이 내린다. 단지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는 눈이 아닌 울긋불긋한 오색 낙엽의 낙엽 눈이 바람 따라 이리저리 날린다. '바스락, 바스락' 쌓인 낙엽 눈을 밟으면 그 '바스락'거리며 나는 소리가 너무 듣기 좋아서 하얗게 쌓인 눈 위를 뛰어노는 아이처럼 낙엽 눈이 쌓인 곳만 골라서 이리저리 밟아본다.
집에서 가깝지는 않지만 가볍게 트레킹 할 복장으로 아내와 호수공원을 가끔 찾는다. 오늘도 아내와 걷는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피우며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호수공원 근처까지 발걸음이 닿았다. 공원 벤치에서 분위기 있게 아내와 커피 타임을 갖기 위해 공원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했다.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은 오전임에도 삼삼오오 우리 앞을 지나 공원으로 아니 가을 속으로 들어간다. 주문한 커피가 나왔고, 우리도 테이크 아웃한 커피를 들고 가을 속으로 한 참을 걸어 들어갔다. 걸어 들어간 울창한 나무 숲 조용한 벤치에 앉아 우린 여유롭게 가을을 즐겼다. 낙엽 눈이 그득 쌓인 벤치 주변에서 가을 냄새와 함께 맡는 커피 향기는 그 어느 때보다 향기로웠다.
아내는 가까운 곳으로 나오기만 해도 이렇게 좋을 줄 몰랐다며 외출을 부추긴 날 한껏 치켜세웠고, 아내의 그런 말 때문인지 마음은 한껏 더 부풀어 올랐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간 코로나로 강제 방콕 생활했던 아쉬운 세월에 보상이라도 받은 것 같은 밝은 표정들이다. 한참을 벤치에 앉아서 아름다운 풍경과 행복한 모습을 지켜봤다. 울긋불긋 한껏 뽐낸 나무들, 분위기 있게 연출하는 바닥에 쌓인 낙엽들, 나무들 사이로 새파랗게 보이는 하늘과 마스크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마스크 위의 눈웃음만큼은 잊지 않은 사람들을 보며 우린 올 가을 끝자락의 휴일을 즐겨봤다. 당장 일요일에 비가 오고 나면 겨울이 바짝 다가와 있을 테니 올해 보는 가을 정취는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하루가 더욱더 아쉽게 느껴졌다.
이렇게 좋은 가을을 보내려니 젖어든 감성에서 쉽게 벗어나질 못하고 우두커니 하늘과 나무와 바람을 찾았다. 생각해보니 이리 맞을 가을도 몇 번이나 다시 맞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시간이 많이 지났음을 깨닫고 식어버린 커피를 입에 마저 털어놓고 입 끝에 도는 쓴 기운에 정신을 깨운다. 공원을 크게 돌아볼까 하는 욕심은 잊어버리고 조금 더 공원에 머물며 11월의 장미를 보기 위해 우린 몸을 움직였다.
날이 따뜻해서였는지 장미정원 속의 11월의 장미는 생각보다 화려하고, 꽃도 제법 많이 피어있었다. 화려함에 숨겨진 그 이면 뒤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있음에도 장미는 아름다움의 정점임을 뽐내는 것 같았다. 가을의 정원과는 조금 이질적인 모습이지만 아내 말로는 가을에 피는 장미가 가장 예쁘고, 아름답다고 말했다. 그렇게 장미 정원의 달콤함을 천천히 느끼고 나서 우린 이젠 공원을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는 어느새 서쪽으로 많이 기울어가고 있었고, 또 한 번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한 낮이라고 생각되는 오후에 해는 이미 자신의 오늘 일을 다한냥 오늘의 이별을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11월의 오후와 어울리지 않은 날씨지만 더없이 가을을 느끼기에 좋은 하루를 우린 오늘 제대로 누렸다. 4시간의 외출 끝에 아내와 난 다시 우리의 보금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두 발을 움직였다. 공원 밖으로, 가을 밖으로 다시 나오기 위해 아쉬운 발걸음을 한걸음, 두 걸음 떼며 우린 주말 가을의 품에서 서서히 빠져나오고 있었다. 호수공원의 휴일은 그렇게 저물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