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주간 아내는 힘든 날의 연속이었다. 정확히는 아들 수능 전부터 잔뜩 긴장했던 몸이 수능이 끝나면서 긴장감도 함께 풀린듯했다. 아내 몸 곳곳에서 신호가 왔고 아마도 아프지 말아야겠다는 정신력을 내려놓은 탓일듯싶다. 그렇게 참고 견뎠던 아내의 통증과 병증이 하나둘씩 툭툭 불거졌다. 늘 달고 살았던 비염이 더 심해졌고, 추워진 날씨 탓에 감기 증상도 하루가 멀다 하고 아내 몸을 들락거렸다. 아내가 결혼초부터 몸이 약한 체질은 아니었는데 아마 아이 둘 낳고 나이가 들면서 체질도 바뀐 것 같다. 날 만나서 고생해서 그런가 싶기도 해서 난 아내의 건강이 늘 걱정이었다. 오히려 아내는 내 걱정을 하지만 내겐 최근 아내 건강 걱정이 아들 대입 다음으로 높은 순위다.
이런 아내에게 최근 3주간은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큰 아이 수능일을 즈음해서부터 대부분의 수험생 부모가 겪는 스트레스에 지쳤던 정신과 몸을 이끌고 쉼 없이 바로 한 주 뒤 3일간의 전쟁터에 나섰다. 아내는 큰 아이 수능으로 미뤘던 바로 각 가정의 밥상 한 해 농사인 김장이라는 전쟁터에 참전했다. 매년 처갓집에서 해오던 행사였지만 올해는 유독 더 힘든 일정이었다. 매년 함께 했던 처제가 일정상 하루밖에 지원되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80포기나 되는 김장을 아내와 장모님이 도맡아서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처갓집 근처에 사는 아내의 언니인 처형이 김장을 함께해서 다행히도 생각보다는 수월하게 끝났다고 했다.
처갓집 김장이 며칠씩 걸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농사를 지은 배추로 김장을 하기 때문이다. 보통의 가정에서 하는 김장과는 시작부터가 달랐다. 절임 배추를 쓰지 않는 덕에 1일 차는 배추를 잘 씻어서 소금에 절여놓고, 2일 차에는 절여놓은 배추를 잘 헹구고 양념을 만든다. 마지막 3일 차에는 만들어놓은 양념으로 배추를 버무리는 과정까지 마무리하고 나면 식구들 각자의 박스에 잘 싸서 택배로 배송까지 해야 모든 일이 끝난다.
이렇게 하루, 이틀에 끝나는 과정도 아니고 처갓집을 하루 만에 왕복하며 다녀올 수 있는 가까운 거리도 아니어서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내겐 늘 함께하기 어려운 행사가 되었다. 올해도 둘째가 학교를 등교해야 해서 아내만이 홀로 김장 전쟁에 나섰다. 아무리 아내의 집이라고 해도 며칠간의 노동은 마냥 달갑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그렇게 김장을 마치고 난 이후에도 해야 할 집안 행사가 또 있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집으로 복귀 후 잠깐의 휴식도 없이 다시 큰 일을 치러야 했다. 바로 나의 어머니, 아내의 시어머니 제사가 아내 복귀 후 며칠 뒤에 있었고, 아무리 편하다고는 해도 시아버지도 이번 제사에는 오랜만에 올라오시는 터라 아내 입장에서는 더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게다가 가장 손이 필요했던 남편인 나조차도 회사 행사로 금요일 지방에 다녀왔으니 아내로서는 어디 하소연할 때도 없고 몸과 마음이 더 아플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 제사가 있던 주중에는 두 아이 모두 몸상태가 좋지 않아서 코로나 검사까지 받으러 쫓아다니고, 검사 결과 확인 후 병원도 데리고 다녔으니 슈퍼우먼이 따로 없는 날들이었다. 제사를 지내는 당일은 줄곧 음식 한다고 주방에서 나오질 않으니 이를 지켜본 아버지께서도 미안한 마음에 제사를 지내고 나서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따로 하실 정도였다. 아마도 예전 명절 제사에서는 주방에 펼쳐놓고 아들과 나까지 동원되어서 전을 부치고 했던 모습을 기억하고 올해도 그럴 거라 상상했었는데 이번 제사 준비는 전적으로 아내 몫이었고, 혼자 주방에 서서 대여섯 시간을 일을 하는 모습에 아버지 마음도 많이 미안하고, 불편했을 듯싶다.
'영희야, 다음 제사부터는 전은 그냥 시장이나 전 만드는데서 맞추는 게 어떠냐? 네가 너무 고생이다'
아버지 나름의 합리적인 대안을 다음 제사부터 적용하자고 하셨다. 고마운 말씀이었지만 아내가 그리 할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아내도 합리적으로 음식 가짓수를 줄이는 건 좋을 것 같다는 제안을 했다. 아버지와 다음번 타협점을 찾아봐야 하겠지만 어느 정도 현실성 있는 대안인 것 같다. 어찌 되었건 이렇게 힘든 시어머니 제사까지 마무리했더니 아내는 정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이 되었다. 퇴근해 집에 오면 늘 아내가 걱정이었고, 너무 힘든 날 저녁은 배달 음식으로 해결하자고 할 정도로 아내는 지쳐있었다.
하지만 이랬던 내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바로 시어머니 제사를 지낸 한 주 뒤 아내에게 몸도 마음도 힐링을 줄 수 있는 스케줄이 있는 걸 알기 때문이다. 바로 아내의 여행. 가족 여행과는 또 다른 즐거움 중 하나고, 아내에게 이 여행은 무척이나 소중하고, 중요한 의식과도 같았다. 마치 내가 일 년에 한 번씩 떠나는 제주 올레 여행과도 같은 아내의 주기적 혹은 비주기적 일정이다. 이번 여행 멤버는 아들의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 어머니들이다. 올해로 딱 10년이 된 모임이지만 옆에서 보는 내가 봐도 30년 지기 이상의 돈독함이다. 다들 동갑이나 한, 두 살 차이의 비슷한 나이대이기도 하고, 서로 마음이 잘 맞아 지금까지 꾸준히 모임을 이어오는 듯하다. 김장을 하러 가기 전부터 설레 하던 아내는 여행 당일 기분 좋게 훌쩍 집을 나섰다. 이번 일정은 강화도의 1박 2일 일정으로 알고 있는데, 나서면서도 조금은 미안한 듯 집 걱정이다. 늘 이런 아내가 고맙고, 미안하다.
아침 일찍 나선 아내는 점심을 먹고 나서 사진 한 장을 보냈다. 며칠 전 피곤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큰 나무 아래 서서 멍하니 나무를 올려다보는 모습에서 3주간의 피로를 날려버린 지 오래다. 그래서 난 아내의 힐링 여행을 언제나 응원한다. 역시 여행만으로도 행복한 이벤트이지만 누구와 가는지는 바로 그 여행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가장 큰 재료인 것 같다. 여행지에서 함께 찍은 아내와 나란히 서계신 사모님 다섯 분의 얼굴이 너무 밝게 보인다. 아내의 이번 힐링 여행으로 조금은 처졌던 아내의 체력과 마음이 치유가 되었길 빌어보며 남은 여행 일정도 마무리 잘하고 따뜻한 우리의 보금자리로 돌아올 아내를 간절히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