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조금 늦은 퇴근길에 아내에게서 톡이 왔다. 수시 발표일을 하루 앞두고 아들이 지원했던 대학교 중 한 학교에서 조기 발표를 했다고 했다. 면접을 잘 보고도 결과가 좋지 않았던 한 곳과 1차 전형에서 합격을 받지 못한 한 곳을 포함해 3개 대학에서 합격 통보를 받지 못했다. 이제 발표를 남겨놓은 대학은 세 곳. 내 마음도 이렇게 긴장되고 떨리고, 아픈데 당사자인 아들은 오죽할까 싶은 안타까운 마음 때문인지 달리는 지하철이 오늘따라 더디게 느껴졌다. 가는 동안 가끔 아들의 상태를 아내에게물었지만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답변 이외에 더 이상 아들의 자세한 상태는 알 수가 없었다. 당장은 늦어진 퇴근을 자책하며 급해진 마음을 추스르고 지하철이 제시간에 가길 기다리는 일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며칠 전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아들의 대학 발표일이 늦어질 수밖에 없는 뉴스를 접했다. 생명과학 II의 한 항목 출제오류. 소송으로 이어진 사건 때문에 전체 수시 발표일이 이틀씩 미뤄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여파가 그리 클지 몰랐지만. 뉴스를 보면서 날짜 확인을 하고서야 걱정스러운 무언가가 스쳐 지나감을 알았다. 미뤄진 발표일은 우리가 한 달 전부터 잡아놓은 가족여행을 가는 날이었다. 한 달 전 아들의 수능이 끝나고 아들에게 가족여행을 가자고 제안했고, 여행지 추천은 아들의 희망대로 바다를 보러 강릉을 최종 목적지로 선정했다. 열차표와 숙소를 잡아놓고서 아들의 수시 최종 발표일이 여행 가는 날 이틀 전임을 알고서 '합격 축하' 여행이 되리라고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우린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명과학 II 사건으로 발표일은 미뤄졌고, 우연히도 수시 발표일과 가족여행 출발일이 같은 날로 겹쳐버렸다. 잠시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거라는 상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아들의 대학 합격을 어느 정도 낙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여행 전날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퇴근 때 아내로부터 전해 들은 A 대학교 수시 불합격 소식에 우리의 여행에 빨간불이 들어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A대학교는 교과로 지원했던 학교라 바로 합격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아들이 했던 말도 있고 해서 애써 그 불안감을 지우려고 애썼다. 당장은 실망한 아들을 위로하고, 마음을 다독이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들방으로 직행했던 난 아들을 위로하기 위해 굳어진 아들 얼굴을 보며 최대한 덤덤하게 내 마음을 전하려고 애썼다.
"아들, 괜찮아. 남은 4개 학교 중에 단지 한 곳이잖아. 게다가 어차피 예비를 고려했을 만큼 어려울 거라고 네가 얘기했잖아. 그냥 마음 편하게 먹고 내일 발표 기다려보자"
"조금 전에 B 대학교도 발표 났는데 합격 못했어요"
갑작스러운 아들의 고해성사 같은 또 한 곳의 불합격 소식에 준비가 되지 않은 내 머릿속이 조금은 멍해졌다. 하지만 아들의 마음이 더 무거울 거라는 생각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예비 순위를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아들의 대답은 기대가 어려운 중간 정도의 예비 순위였고, 면접도 잘 봤던 학교라 내심 기대했던 아들은 하루 동안 내려앉았던 감정을 버티지 못했다. 어느새 숙여진 머리 아래로 눈물이 떨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고, 속상한 마음에 들썩이는 어깨까지 바라보자니 내 마음도 함께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들 괜찮아. 그래 그냥 울어. 속상하면 울어야지"
달리 해줄 말이 없었고, 그 순간이 얼마나 힘이 들고 무너지는 마음일지 알고 있기 때문에 조용히 방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내에게 조용히 아들의 발표 소식을 전했고, B 대학교 소식을 몰랐던 아내는 가슴 아파할 아들 걱정에 더 얼굴이 어두워졌다. 우린 내일 당장 여행을 가는 게 맞는가 하는 생각에 더욱더 걱정이 앞섰고,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아들이 방에서 잠시 나왔을 때 여행 계획을 취소할까도 물어볼까도 싶었지만 그게 오히려 더 아들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다른 생각하지 말고 일찍 자라고 말하고는 조용히 여행 하루 전을 무거운 집안 공기 속에 우린 억지로 잠을 청해야만 했다.
여행 아침, 우리는 계획대로 출발은 했지만 기차를 타서도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남은 2개의 학교 발표 시간이 오전 10시와 12시임을 알았지만 아들이 얘기하기 전에는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옆에 앉은 아들 눈치만 살피며 마음 졸이며 강릉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출발한 지 2시간이 지나서 우린 강릉역에 도착했고, 시간상으로는 2개의 학교 모두 발표가 났을 시간이었지만 아들의 표정만을 살핀 채 어느 정도 마음을 내려놓고 있었다. 난 아들을 어떻게 위로할까만 생각한 채 강릉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 순간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검색하던 아들이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무릎을 조금 꺾으며 '아아'하는 외마디 한숨과 함께 내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잠시 어떤 상황인지 인지하지 못했지만 이내 좋은 상황임을 깨닫고 아들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화면 속에는 아들 이름과 함께 C 대학교 합격을 알려주는 합격 메시지가 있었다.
잠시 사람들이 많은 역사 내임을 잊은 채 아내와 난 아들을 안으며 즐거움의 표현을 몸과 입으로 발산했다. 너무 잘 됐고, 너무 수고했다고. 아내는 참았던 눈물을 쏟았고, 나도 마음고생했던, 지옥 같은 하룻밤을 보냈을 아들의 어깨를 잡고 한참을 서 있었다. 그렇게 우린 강릉역을 긴 시간 벗어날 수 없었다. 그 감동과 기쁨을 스스로 만끽하느라 그랬고 또 아들의 소식을 너무도 궁금해하는 다른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하느라 도착하고도 한참을 강릉역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여행지 도착과 동시에 좋은 소식을 들었고, 그 소식 덕에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여행은 아주 재미있고, 즐겁게 시작하여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합격 통보를 받은 학교 이외에도 최종 토요일 발표된 나머지 한 개의 학교도 결과가 나쁘지 않음을 그제야 알았다.
얼마 전 브런치에서 가장 큰 프로젝트인 '제9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수상자 발표가 있었다. 아쉽게도 난 올해도 브런치북 프로젝트의 수상자로 선정되지 못했다. 하지만 난 전혀 아쉽지가 않았다.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응모는 했지만 다른 분들이 믿지는 않겠지만 실제 프로젝트에 수상이 될까 봐 걱정을 했었다. 떡 줄 사람은 생각조차 없었겠지만 난 혹시나 이런 운이 날 찾아오면 올해 대학 입시를 앞둔 아들의 운까지 가져오는 일이 될까 봐 브런치북은 제발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믿거나 말거나겠지만. 아내와 했던 말도 올해의 모든 운은 아들에게 가는 게 맞으니 복권도 사지 말자는 얘기까지 했었다. 합격 소식도 받았고, 당장 일 년 동안 미뤄왔던 미역국부터 당장 먹고 싶어 지는 밤이다. 여행을 다녀와 포장 미역국부터 한 그릇 했지만 이번 주는 아내에게 내가 좋아하는 미역국을 끓여달라고 해야겠다. 암튼 한 해 동안 수고한 아들도, 그런 수험생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한 아내도 모두 고생한 한 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