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결혼기념일이 며칠 지난 어느 날에 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이삼일에 한 번씩 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한지도 2년이 훌쩍 넘었다. 통화를 자주 하다 보니 특별히 할 이야기가 없는 이상 안부나 건강을 물어보는 짧은 대화가 오가는 게일반적이었다. 마침 지난주에는 야근이 잦아 나흘 만에 전화를 걸었고, 예상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물음에 난 많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문득문득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때이긴 했지만 어머니 기제사를 지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터라 결혼기념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하물며 난 살아생전에도 음력 생일을 챙기던 두 분이셔서 아내가 두 분 생일 며칠 전 얘기를 해주지 않으면 종종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다행히 결혼기념일은 양력 일을 기준으로 기념한 탓에 어머니 생전까지 아니 어머니 돌아가시고도 작년까지는 기억하고 축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2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난 두 분의 결혼기념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고, 불행히도 아내조차 깜빡하고 넘어가고 말았다. 아니, 정확히는 아버지에게는 지금도 특별한 날일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상황에서 그날의 특별함을 아주 조금은 이해하지 못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끔 생각이 났지만 두 분의 결혼기념일을 기념하려는 생각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아직까지 어머니의 생일뿐만이 아니라 결혼기념일도 기념하고 계셨고, 어머니가 함께 하지 못해도 자식들만은 생일, 결혼기념일과 같은 어머니와 관계된 날을 기억해주길 바라셨던 것 같다. 작년만 해도 아내가 미리부터 얘기해줘서 두 분의 결혼기념일에 아버지에게 안부 전화를 따로 드렸었는데 올해는 그러지 못했던 게 아마도 아버지에게는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었던 듯싶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아버지는 그 시절 대부분의 아버지와 비슷하게 집안일을 많이 돌보는 남자는 아니었다. 늘 바쁘셨고, 모든 일에 열심히 셨다. 아버지와는 상대적으로 어머니는 워낙 몸이 좋지 않아서 외부 활동이 적었던 시절이었다. 당시 어머니는 두 아이의 엄마로 지내는 것도 버거웠던 체력이셨다. 어머니의 잦은 병치레와 저하된 체력 탓에 결혼 후 아버지는 처음 고향을 떠나 어머니 형제들이 있는 타지로 이사를 했고, 그렇게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낯선 업무 탓에 낮밤 없이 열심히 일을 할 수밖에 없었을 테고, 빠른 적응을 위해 친구들도 두루두루 많이 사귀었던 것으로 들었다. 그 바람에 집에 늦을 일도 많았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어머니와 신혼 때 같은 시절을 보내지는 못했다.
그렇게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오랜 연애시절같이 서로만 바라보다 살던 시절과는 조금은 거리가 있는 시간을 이어나갔고, 어느 정도 경제적인 안정으로 여유란 것이 생겼을 때에는 두분도 어느덧 사십 대에 접어들었다. 아마도 사는 게 바빠서 두 분 모두 사십 대에 접어들기까지는 기념일을 챙길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사십 대를 맞았고, 두 분 사십 대 시절이 제일 황금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두 분 생일뿐만 아니라 결혼기념일에도 아버지나 어머니 주변 지인분들의 축하가 이어졌고, 밖에서 식사도 잦았다. 하지만 그 시절은 십 년을 넘기지 못했고,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지자 두 분의 결혼기념일은 누구에게도 축하받을 일 없는 그냥 평범한 하루로 지나가는 날이 많았다. 아니 오히려 특별한 날임에도 특별하지 않게 애쓰는 것 같은 날이 많았다. 두 분만 서로 조용히 자축하는 인사 정도는 했을지 몰라도 집에서 어머니나 아버지 결혼기념일을 이유로 케이크를 자르거나 근사한 외식은 꽤 오랫동안 없었다.
그렇게 어려웠던 시절도 여러 해를 거듭하니 우리에게도 내성이 생겼는지 생일뿐만 아니라 결혼기념일이 되면 조금씩 특별한 밥상이 차려지기 시작했다. 물론 가족 간엔 축하인사도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오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사업이 번창했을 때 어머니에게 보석이 박힌 반지를 사줬는지, 근사한 옷을 사줬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집안의 가세가 기울고 나서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무얼 선물하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늘 어머니를 향한 마음만은 따뜻한 아버지셨지만 아마 생전 어머니는 그런 부분이 아쉬웠을 것 같다. 하지만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고 나서는 아버지는 그간 챙기지 못했던 모든 기념일을 챙기기 시작했다. 아니 오히려 자식들이 더 챙겨주길 바랬던 것 같다. 아버지 딴에는 더 마음 아플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어머니 암 진단을 선고받은 날이 두 분 결혼기념일을 며칠 앞두고 셔서 더 그러지 않았을까. 어머니 암 진단 후 딱 네 번의 결혼기념일이 더 지났고, 마지막 결혼기념일을 십여 일을 앞두고는 어머니는 그렇게 훨훨 아버지와 우리 곁을 떠나가셨다.
"아버지, 이번 주에 제가 대구 내려가는데 목요일에 집에 갈게요"
"바쁘고, 힘든데 뭐하러 와. 안 와도 된다"
"아버지하고 소주 한잔 하고 싶어서요. 작은 아버지도 시간 되면 함께 하자고 얘기하세요"
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으니 최근 2년여간 생일이나 기념일을 특별히 어떻게 보내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을 문득문득 추억하며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번 주말에는 어머니의 생일이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아내는 어머니 생일날 미역국을 끓일 생각이다. 생일 미역국을 받으실 분이 이젠 계시지 않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당신이 왔다 가셨던 날을 남아있는 우리가 조금 더 추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연히 난 주중에 대구 출장이라 어머니 생일을 맞아 아버지를 찾아뵐 수 있을 것 같다. 혼자 술잔을 기울이며 추억하기보다는 아들인 나와 당신을 추억하며 환하게 웃는 아버지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