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나 핫도그 안 사 줄 거야?

핫도그를 사줬던 동네 형의 주머니 사정이 나빠진 이유

by 추억바라기

오늘은 종일 집에만 있어서 그런지 맥주 한 잔이 더 생각났다. 오늘처럼 밖에 나가기 귀찮을 때 그래도 아들이 스무 살이 되어서 좋아진 점은 바로 맥주 심부름을 부탁할 수 있어서다. 슬며시 손에 쥐고 있던 폰에 카톡을 실행하고, 아들과의 대화창을 열었다. 짧은 메시지라서 금세 답이 온다.


'아들 집에 올 때 아빠 맥주 좀 사다 주면 안 될까?'
'알았어요. 맥주는 뭘로 사갈까?'
'코끼리나 없으면 테 X로'


작년까지는 당연히 생각도 못해본 일이지만 이젠 이런 일이 가능하다니 한편으로는 신기하고, 놀라울 뿐이다. 옆에서 아내가 애가 돈이 어디 있냐고 잔소리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시급 9천 오백 원 주말 알바라도 아들의 한 달 급여를 생각하면 지금의 나보다 용돈이 더 많다. 요즘 아들이 나보다 주머니 사정이 좋으니 가끔은 아빠 맥주 심부름도 거절 없이 잘해주는 게 기분 묘하다.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꽤 오래전에는 동네 친구들 중에는 아버지 술 심부름을 다니던 친구가 더러 있었다. 그 시절에는 마트나 편의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마을 여기저기에 식음료 가게가 있었던 시절도 아니었다. 해는 이미 지고 어둠이 골목 곳곳을 잠식해도 밝게 불 밝힌 그 시절 보물창고 같은 그곳에는 가끔씩 아이들이 그렇게 아빠의 술 심부름을 다녔다. 그렇게 심부름 온 아이들이 검은 봉투에 담은 술의 종류도 다양했다. 막걸리, 소주, 맥주까지. 아이들은 그렇게 아버지 술 심부름의 대가로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을 기대했다. 술을 사고 남은 잔돈부터 아이스크림 같은 자신의 입을 달콤하게 해 줄 군것질 혹은 따로 오백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받은 아이들까지 다양하게 대가를 받고 어두워진 밤길을 해쳐서 그곳까지 오곤 했다.


지금은 곳곳에 편의점이 많이 있지만 80년대에 시골만 해도 동네를 끼고 상권이라고는 'OO 상회'라고 간판을 걸고 장사하는 곳 한 두 곳이 전부였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내가 살았던 곳은 'OO읍 XX리'였다. 내 잰걸음으로 5분, 아니 10분 이내에는 장사를 하는 곳이라고는 'OO 상회', 'OO 반점' 두 곳이 전부였다. 물론 '다방'이라고 불리던 커피를 파는 곳도 있었지만 그 시절 내가 들어가 보지 못한 유일한 곳이라 그 시절 향수는 없는 곳이다. 내 기억에는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 술 심부름을 다닌 적은 없었지만 아버지 술 심부름으로 몫 돈을 챙기던 동네 형이 있어서 여러모로 덕을 봤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술 심부름을 다니던 형은 늘 돼지 저금통에 동전이 가득이라고 자랑하곤 했다. 학교 하교 때마다 만나는 형은 내게 그 부를 자랑하듯 내게 간식거리를 종종 제공했다. 50원짜리 핫도그부터 100원짜리 생라면까지. 늘 형을 만나면 내가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게 형의 두둑한 주머니 덕분에 주변에는 늘 아이들이 넘쳤다. 한 번이라도 눈에 더 띄고, 더 불리고 싶어서 아이들은 저마다 그 형과의 친분을 무척이나 뿌듯해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형의 자비도 모든 일이 그렇듯 변화가 생겼다. 그렇게 늘 만날 때마다 아낌없이 사줄 것 같던 형도 어느 날부터 나를, 동네 아이들을 피하는 모습이었다. 어느 날 하굣길에 혼자 핫도그 가게 앞에서 핫도그를 사 먹는 형을 발견하고 평소와 같이 한달음에 형에게 달려가며 알은체를 했다.


"동수 형~!"

"어.. 어. 철.. 수구나"

평소와 다른 형의 태도에 조금은 이상했지만 금방이라도 내 손에 쥐어질 형이 사 줄 핫도그를 생각하며 형의 태도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형은 잠깐 다시 어색하게 나를 흘려보고는 금세 방향을 바꿔 핫도그 가게를 벗어나 버렸다. 달콤한 설탕과 케첩을 바른 핫도그를 금방이라도 입에 넣을 기대를 하고 있던 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어찌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지만 늘 따르던 형의 태도가 왜 바뀌었는지 억울하고, 궁금해서 서둘러 형을 따라갔다. 그러고선 내 서운한 마음과 호기심 가득한 심정을 담아 형의 뒤통수에 대고 대뜸 물었다.


"형~! 나 핫도그 안 사줄 거야?"

"......"

"와~ 형이 어떻게 이럴 수 있냐? 변한 거야? 아니 나한테 화난 거 있어?"

내가 한 말에 형은 화가 난 건지 아님 억울한 표정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조금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내 물음에 답했다.

"아이~씨, 그게 아니고 아버지가 얼마 전부터 술 안 드셔"

그의 울분에 찬 한마디에 난 조금은 주눅 들고 무서워서 더 말을 잇지 못했고, 그 뒤로는 그 형과 어울려 다니는 일이 점점 줄었다. 그렇게 늘 동네에서 아이들을 끌고 다녔던 동수 형의 인기는 예전만 못해졌고, 시간이 더 지나서 형은 이사를 갔다. 시간이 지나서 들은 얘기지만 동수 형네 아버지는 술 때문에 생긴 병 때문에 치료차 큰 도시에 있는 병원에 입원했고, 동수 형 포함 다른 가족들도 병원이 있는 도시로 이사를 갔다고 들었다. 그 시절 우리들의 보물 창고였던 'OO 상회'의 단골손님은 그렇게 우리들 기억 속에서도 차츰 잊혀 갔다.


어렵고, 힘들었던 시간도 있었지만 골목을 뛰어다니며 크게 웃고, 가끔은 울기도 했었던 그런 시절이 가끔 기억이 난다. 웃었던 날은 왜 웃었는지, 또 울었던 날은 왜 울었는지 이젠 그 이유조차 가물가물 하지만 흘러간 시간이 마냥 아쉽지만은 않은 건 그날의 추억 속 행복했던 표정만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좋았었던 시절에 걱정조차 그립다'는 말을 요즘 방송하는 '스물다섯 스물하나'라는 드라마에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 걱정이 무언지 기억조차 없지만 그 시절이 좋았었던 시절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그 시절 글을 쓰는 지금도 슬며시 웃음이 머무는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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