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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Nov 28. 2019

나, 공대 나온 남자야

브런치 작가 도전기

"나, 공대 나온 남자야!"


회사에서 자주 듣는 얘기 중에서 동료들이 하는 말이 있다.

"와, 선배는 어쩜 그렇게 기술직이 글을 잘 써요?"

"김 부장, 공대 출신이 이렇게 책을 많이 보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이러다 정말 책 쓰는 거 아냐?"


 그들 입장에서는 그냥 해본 말일 수도, 아니면 부러워서 일수도 있는 이런 말이 나에게는 조금 지친 창작(?)의 고통에서 의도하지 않은 응원이 된다. 내 나이 마흔에 대학 이후 하지 않았던 독서라는 것을 시작했다. 누가 시켜서라기 보다는 그냥 특별한 이유나 목적 없이 아주 약간의 위기의식과 아이들에게 솔선수범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책이란 녀석과 가까워져 보기로 결심했었다.  이렇게 책을 읽다 보니  남들에게 보여줄 글을 쓰기 시작했고, 글 쓴 지 6개월이 안되어서 내 이름이 쓰인 책을 내고 싶은 꿈이 생겼다.

내 학창 시절은 문학소년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감수성이 충만했었고, 고등학교 2학년 때에는 지역에서  주최하는 전시회에 시로 출품하여 지역 대표 문화제에 전시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대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문학책이나 글 쓰는 것 대신 컴퓨팅 언어, 전자회로 등과 같은 전공서적과 보고서 등과 씨름하며 수년을 보냈고, 그 결과 난 1년에 2,3권의 책도 읽지 않는 독서 결핍자가 되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책 살 돈 있으면 맛있는 음식을 먹었고, 글은 업무상 메일 쓰는 게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는 평온한 평일 저녁, 식사 후 TV 시청을 하던 내가 큰 결심을 하게 된 사건이 생겼다. 그 당시 초등학생인 아들과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둘째의 교육 목적으로 1주일에 책 2~4권 정도를 배달해 주는 서비스를 받고 있었다. 큰 아이는 4년을 넘게, 작은 아이도 2년째 하고 있었던 일이었고, 그전까지는 큰 잡음이 없었다. 하지만 그 날 저녁 아내의 평소 같지 않은 목소리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고,  아이들과의 대화를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며 사건의 전말을 이해했다.


 "민수야, 1주일에 책이 2권, 3권 오는데 이걸 매번 1권도 체 못 읽고 보내면 어떡해."

 "......"

큰 아이는 말이 없었고, 아내의 말에 반응을 하지 않았다.

난 나의 어린 시절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고, 초등학생인데 벌써 책을 읽지 않으면  중, 고등학교에서는 더 시간이 나지 않을 거고, 책 읽는 습관을 들이기는 더 어려울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해 보았다.

'솔선수범(率先垂範)'

그리 멀리했던 책을 다시 잡은 가장 큰 결정적인 요인은 아이들 책 읽는 습관을 잡아보기 위함이었다. 그 이후 6년이 지났지만 책 읽는 습관은 아쉽게도 나만 잡혔다. 우리 아이들은 스마트폰이 생긴 이후로는 더 이상 통제가 안된다. 어찌 되었든 책을 읽기 시작하며, 독서 때문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업무용 메일이나 업무용 문서를 쓰는데 조금 더 수월하고, 편하게 써내려 져 간다는 느낌이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글쓰기를 제대로 뽐냈었던 사건이 있었다. 업무 관련 외부기관에 수상 등록 기회가 생겼고, 기획팀의 제안으로 제안서와 구축 사례집을 만들어 기관에 제출했다. 나름 자신도 있었고, 어느 정도 경쟁력도 있다고 생각했다. 개인 시상 분야도 있어서 회사에서 별도 제안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준비해왔었던 자료를 취합, 정리하여 함께 기관에 제출하였다.

  두 달이 되어 최종 발표가 났고, 기업 분야와 개인 분야 모두 대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여러 곳에서 축하의 메시지가 쏟아졌고, 기획팀에서는 관련 기사를 기자에게 넘겨야 하는데 기사도 부탁하여 작성해서 전달하였다. 생각해보면 공식적으로 불특정 다수 대상으로 대외에 쓰인 나의 두 번째 글이었다. 참고로 첫 번째는 회사 SNS에 진행 사업 관련 성과 글을 올릴 예정인데 그 글을 써달라고 해 작성해서 전달한 글이 그 첫 번째다.


   잠깐의 영예로 끝났지만 전혀 소득이 없지는 않았다. 기획팀에서 써 달라고 한 기사를 타 부서의 매니저가 보고는 '김 차장, 글 잘 쓰네요. 기사 손볼 곳 없냐고 기획팀에서 도움 요청이 왔는데, 손을 댈 필요가 없더라고요.'라고 칭찬을 하였다. 글로 칭찬받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고, 내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처음 갖게 되었다. 이 날 이후 글에 대한 '욕심'이 마음속에서 '꼬물꼬물' 자라나고 있었다.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이후 쉽게 접할 수 있는 플랫폼이 '블로그'였고, 이때부터 책 서평을 시작으로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고, 내 글을 함께 읽는 이웃들과 소통하며 소소한 행복감으로 어느 정도 창작의 기쁨을 누리고 살았다. 하지만, 꾸준히 글을 쓰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고, 채워지지 않는 글 욕심에 도화선이 된 일이 있었다.

  다른 블로거의 글을 읽다가 '브런치'라는 서비스 플랫폼에 '작가'로 승인받았다는 글이었고, 그 블로거의 글을 통해서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접하고, 읽으면서 블로그와는 다른 전문적인 느낌의 글들이 모이는 서비스 플랫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도전의 욕심이 생겼다.

블로그를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났을 때쯤 나는 브런치에 첫 번째 도전했고, 내 블로그 이웃분들의 많은 격려와 힘찬 응원 속에 글을 기획하고, 쓰고 그리고 제출했지만, 보기 좋게 떨어졌다는 메일을 받았다.  조금은 분했지만 내 글솜씨와 기획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다시 재도전을 해봤다. 결과는 '안타깝게도...' 메일을 다시 받았다. 아쉬움은 컸지만 조금의 시간을 두고 다시 준비했고, 3개월의 자중과 연마 후, 세 번의 도전 끝에 브런치에서 '작가님'이라는 호칭을 받고 글을 실을 수 있게 되었다.

  준비된 글들도 많았고, 블로그 포스팅 한 글들에 글이 좋다는 여러 이웃들의 칭찬도 들었던 상태여서 첫걸음마를 내디뎠을 뿐인데 더 큰 욕심을 내봤다.


     '브런치 출간 프로젝트' 공고.

열심히 글을 탈고해서 날마다 글을 새로 등록했고, 마감 하루 전 주말에 매거진에 실었던 글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며 '브런치 북'으로 묶으려고 책상 앞에 앉았다.  아내에게 미리 출간 프로젝트 등록 작업을 해야 해서 토요일에는 개인적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해놓은 상태였다. 난 책상에 앉아 조용히 써 놓았던 글들을 찬찬히 보고 있었고, 잠시 뒤에 아내가 다가와서 잘 되어 가냐고 물어봤다.


"이제 매거진에 등록한 글 하나씩 살펴보고 브런치 북에 하나씩 담으려고."

 조금은 의욕적이고, 조금은 들뜬 목소리에 아내는 빙긋이 웃으며 내가 좋아하는 일 해서 좋겠다고 격려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도움 줄게 없냐고 물어보길래 잠시 고민하며 아내에게 부탁했다.

"여보가 내가 쓴 글은 모두 읽었고, 어차피 우리들 이야기니 제일 잘 알 테니 혹시나 글에 대한 평가나 조언이 있으면 해 주라."

 이 이야기를 해놓고, 크게 박한 평가나 조언은 하지 않을 거라는 마음이 있었던 듯하다. 내 이야기 뒤에 나온 아내의 평가에 난 온몸이 아팠고, 의욕도 팍 꺾였으니.


"굳이 하라고 하니까. 음~, 당신 글은 편안하게 읽기에는 좋은데, 그게 다야.  

뭐랄까, 너무 평범한 이야기고, 당신 같아서 큰 재미도 없어. 당신 책 많이 읽잖아. 

창작은 모방에서부터라잖아.  다른 책에서 재미있는 문구 같은 건 좀 벤치마킹도 해봐. 

이야기를 풀어가는 설명은 재미있는데 무언가 임팩트 있는 언어구사도 좀 부족하고,  

위트 있는 문구들도 좀 넣었으면 좋을 거 같아."  


말 안 시켰으면 어쩔뻔했나 싶다. 내 글 읽으며 저런 생각을 했구나 하는 마음이 드니 조금은 괘씸하고, 아내가 얄밉기까지 하다. 정말 뼈 때리는 이야기들 뿐이고, 칭찬은 너무 인색하다. 가까운 사람이니까 이런 조언, 박한 평가를 한다나 뭐래나 하면서. 정확히 어떤 부분이 그런지 일러달라고 했더니 자신은 창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 정도 의견을 줄 수 있는 게 다란다. 그러면서 상처 받은 날 위로한다는 말이 글 안 써지면 산책이 좋다는 조언을 하고는 방을 휙 나가 버렸다.


내 몸 구석구석 뼈 때리는 말로 독하게 쏟아내고는.

오늘도 브런치 인기글로 글이 두 개나 올랐고, 글 조회수도 1,000회가 넘게 찍혔다고 '카톡'으로 자랑했다. 이래도 내 글이 임팩트도 없고, 위트도 없냐고 했더니. 아내가 던진 말, 변함이 없다. 역시 사람은 바뀌면 안 되나 보다. 좋아는 하는데, 재미는 없단다.



아, 내 뼈다귀야. 당신은 안 아프지? 난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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