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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Aug 08. 2022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친절을 베풀었다

말 한마디 하는데 돈이 드는 일도 아니잖아요

 "김 이사님 안녕하세요. 그간 잘 지내셨죠?"


얼마 전 통화했던 모 기관의 OO님은 일면식도 없는 분이다. 얼굴뿐만 아니라 이렇게 통화하는 것도 처음이다. 하지만 너무도 익숙하게 OO님은 편하게 말씀을 하셨다. 정년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나이에 그것도  공공기관에 있는 분이면 보수적이고, 권위적일 것이라는 걱정과는 다르게 귀로 전해오는 그의 목소리는 옆집에 있는 편안한 이웃 아저씨 같았다.


  "진행하시는 건 잘 되고 있어요?"

  "그럼요. OO님께서 이렇게 신경 써주시니 더 열심히 하게 되네요"


상대방에 동화가 되었는지 나도 어느새 부쩍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이어간 통화는 3, 4분간 이어졌고, 처음 전화를 걸 때 들었던 부담은 금세 사라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비즈니스 통화고, 일면식도 없는 어려운 분과의 통화임을 감안하면 새로운 느낌이었다. 잠깐 긴장도 있었지만 금세 옆집 아저씨 같은 그분의 태도에 피어올랐던 긴장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쓸데없는 걱정을 한 내가 오히려 부끄러웠다. 전화를 끊고 나니 살짝 웃음까지 나는 게 오랜 선배와 통화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생각에 머무르고 있을 때쯤 아직까지 손에서 놓지 않은 전화 진동이 왔다. OO님 연락처를 전달해준 회사 대표님이다.


 "김 이사, 통화는 잘했어? OO님이 뭐라셔"

 "네, 대표님. 별말씀은 안 하셨고요. 편하게 대하면서 어려운 일 있으면 연락하라고 하시더라고요"

 "편하게 통화해도 돼. 그분 공공기관에서 '셀파'로 활동하시는 분이라 컨설팅이 공식적인 활동이야'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대표님, 제가 예전에 OO님을 뵌 적이 있나요? 너무도 편하게 안부를 묻는데 제가 예전에 뵌 분에게 실수하는 거 아닌가 걱정이 돼서요"

  "하하, 걱정 안 해도 돼. 원래 그러셔. 그분도 하도 많은 분들 만나니까 그렇게 인사하는 게 습관이 되셨나 봐"

 

회사 대표님의 말을 듣고 나니 그분의 태도가 이해가 되었다.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통화와 대화법에 기본적인 예의까지 갖췄으니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사람들마다 차이는 있지만 유독 대화 시에 친절하고,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 있다. 대화는 양손이 마주쳐야 소리 나는 손뼉과 같다. 대화 자체만 놓고 보면 말하는 상대끼리 주거니 받거니 말하기 듣기가 반복되는 유기적인 행동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화를 꾸준히 이어가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의도적으로 배려하는 마음도 있지만 배려가 습관적으로 몸에 뵌 사람도 있다. 나에게도 이런 배려가 몸에 뵌 정도는 아니지만 의도하는 배려와 원래부터 몸에 뵈인 습관 중간 정도쯤 어딘가에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된 지자체의 담당자에게서 우리 시스템에 연동할 제품의 회사 담당자라고 얘길 들으며 연락처를 받았다. 가볍게 인사하는 차원에서 전화를 했다가 생각지도 못한 불친절과 퉁명스러운 말투에 기분 나쁜 경험을 했다. 당연하지만 그는 나와 일면식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우선 계약하였던 업체임을 강조하며 서로 다른 제품임에도 호환과 연동을 위해 무조건적으로 자신들의 제품에 맞추라는 불합리한 요구를 해왔다. 먼저 사업 진행된 제품이어서 당연히 계약을 먼저 했을 뿐인데 아직 구축되지 않은 양사 간 어느 한쪽이 맞출 의무는 계약상 어디에도 없는 조건이었다. 당연히 그의 사람 상대하는 방식에 기분이 상했고, 배려를 기본으로 하는 내 마음도 좀처럼 그에게는 원칙만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규격에 그런 사항이 들어가 있으면 어쩝니까? 시스템에서 제대로 연동할 방안을 마련해 주세요"

첫 통화에서 기분 좋게 시작하려던 내 마음은 그의 강압적인 말투에 금세 기분이 상했다. 한 지자체에 사업을 수행하려는 업체 간의 동지애는 사라졌고, 호의적으로 대하려는 내 말투도 금세 사무적으로 바뀌어 버렸다.

 "부장님, 저희도 표준을 따를 뿐입니다. 대부분 지자체 규격서에도 나와 있어요. 표준 프로토콜 정의서 보고 개발하셔야 할 것 같아요"


 비슷한 통화를 여러 차례 그와 했지만 그의 말투와 태도는 바뀌지 않았고, 아쉬울 게 없었던 나로서도 상대방의 그런 태도에 배려라는 단어를 잃고 말았다. 결국 그는 본인이 듣고자 하는 말이나, 설명을 전혀 들을 수 없었고, 나로서도 협조의 의무가 없었으므로 문서로 대체하는 형태로 더 이상의 도움은 주지 않았다. 오는 말이 곱지 않았으니 나로서도 가는 말을 곱게 보낼 수 없었다.


내가 하는 일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하는 업무가 많다 보니 사람에게서 오는 스트레스가 다른 직군보다 많은 편이다. 어떤 사람은 말투나 태도만 보더라도 상대방을 존중해주는 마음이 느껴지는 반면에 또 어떤 사람은 말 한마디로 상대방을 하대하거나, 무시하는 듯한 자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즉 말만 잘하면 어려운 일이나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다. 누군가에게는 '스치듯 지나가는 인연'이라 배려할 이유도, 챙길 예의도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스치듯 지나가는 인연'의 판단은 본인이 아닌 맞닥 뜨린 상황이나, 조건이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황, 조건을 맞닥 뜨리기 전에는 미리 예견할 수 없으므로 대인 관계는 섣부르게 판단하면 안 된다. 그런 실수로 생각지도 못한 낭패를 볼 수 있다. 물론 그런 일을 마음에 두고 계산하며 관계를 맺는 것 자체가 문제지만. 말 한마디에 돈이 드는 일도 아닌데 이런 말 한마디로 많은 것을 얻을 수도 혹은 잃을 수도 있다면 얻는 쪽을 선택하는 게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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