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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Aug 01. 2022

우영우를 보다 아들에게 화가 난 이유

권모술수 권민우가 MZ세대를 대표한다고?

"난 권모술수 권민우의 말이 공감이 되는데요"


얼마 전부터 본방을 사수하려고 애쓰는 드라마가 하나 늘었다. 용어도 낯선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는 천재 변호사의 성장기를 그린 드라마다. 인지도가 없는 방송사에서 1퍼센트도 안 되는 시청률로 시작했지만 지난주엔 무려 15퍼센트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회사에서도 이 드라마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돌 정도다. 말 그대로 요즘 대한민국은 우영우 앓이 중이다.


자신의 라이프 타임을 철저히 지키는 딸아이를 제외하고 종종 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아들, 아내와 함께 보는 날이 많다. 유쾌하고, 따뜻한 드라마여서 그런지 이 드라마를 보면서는 우리 집에서는 호불호가 따로 없었다. 이렇게 함께 드라마를 보다 보면 자신의 생각들을 이야기할 때가 있다. 대부분의 장면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끄는 장면과 대사여서 한 사람이 얘기하면 특별한 이견 없이 공감하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지난주도 우린 함께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때마침 극 중 우영우 변호사의 동료인 최수연과 권민우의 말다툼을 하는 문제의 장면이 나왔다.


 '우영우가 강자예요!'

 '우영우가 약자라는 거 그거 다 착각이에요'


극 중에서 권민우는 번번이 업무능력에서 우영우에게 밀리고, 자폐를 가진 사람이라 양보해야 하는 현실에 강한 분노와 불만감을 드러내곤 했다. 결정적으로 로펌 입사 시 대표이사 특채로 채용된 사실이 '불공정함'의 좋은 예임을 대놓고 비난하고 나서기도 여러 차례다. 이 장면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아들이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기 전까지는 적어도 우리 가족은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들의 입을 통해서 나온 말은 생각지도 못 한 말이었다.


 "난 권모술수 권민우의 말이 공감이 되는데요"

아들의 이 말 한마디에 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본적인 도덕관념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아들의 생각이 틀렸다고 얘기해 주고 싶었다. 그저 보통의 평범한 일반인이면 당연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아들, 그 말이 어떤 입장으로 공감되고, 이해되었는지 모르지만. 보통의 사람들이 자폐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는 기본이 아닐까.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이런 사람들에 대한 일반적인 시선은 모두들 곱지 않잖아. 적어도 그런 시선으로부터는 차별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하는 거잖아. 그런 사람들도 함께 살아가야 하니까"

논리적으로 하려고 애썼지만 마음속에선 아들의 생각이 틀렸음을 몰아세우는 듯한 태도로 발끈했다. 이미 난 아들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고 있었다. 아들의 다른 생각에 당황도 했지만 그 순간엔 조금은 화도 났던 게 사실이었다.  설명을 가장한 설득과 강요하는 태도에 더 이상 아들은 반론을 얘기하지 않았고,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권민우의 말에 공감된다는 아들의 말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드라마가 끝나고 아들의 입장에서 차분하게 생각해 봤다. 아들은 소위 말하는 MZ세대다. 판단의 기준 자체가 우리 세대와는 다를 것이고, 그들이 바라본 세상 또한 당연히 다를 것이다. MZ세대는 무엇보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독립적이고, 학연과 지연보다는 SNS 등을 통한 자신이 구축한 관계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게다가 항상 우선시 되는 게 자신의 행복임을 이해한다면 아들의 발언이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우리 세대들의 보편적인 눈높이에서는 자폐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서울대 로스쿨 수석, 변호사 시험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받아도 다수의 로펌에 입사하지 못한 것이 차별이고, 불공정이다. 하지만 아들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MZ세대들이 봤을 때는 아무리 뛰어나고, 특별해도 취업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과의 경쟁 없이 대표 이사를 통한 특채는 당연히 불공정으로 비칠 수 있다. 다른 사람보다 능력이 뛰어나지만 자폐인이라는 이유로 무조건적인 배려와 양보, 견제를 받지 않는 것 또한 불공정으로 이해되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보편적 사회적 통념이라고 생각했던 일조차 세대 간의 견해차가 있을 수 있다. 물론 세대뿐만 아니라 이성간, 개개인간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통념이나, 관습들 또한 많은 사람들의 생각들이나 의견이 모여서 대부분 사람들이 동의하거나, 공감하는 쪽의 의견이 오랜 시간 쌓이고, 모아져서 생긴 사회적인 사고다. 말 그대로 많은 사람들의 공감된 의견일 뿐이다. 즉, 모두가 공감하는 의견은 아니다.


의견과 이견은 한끝차다. 


의견(意見)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대상에 대하여 가지는 생각이고, 이견(異見)은 어떠한 의견에 대한 다른 의견을 말한다. 지금까지 일반적인 통념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이견을 '잘못되었다' , '틀렸다'는 생각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이견이 또 다른 세대에서는 일반적이고, 통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의견임을 수긍하고,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오늘 아들의 대화에서 느낀 건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닌 '다른' 생각에 대한 포용에 문제임을 깨닫게 됐다.


주말 아내, 아들과 함께 셋이서 외출을 했다. 여름 게으름뱅이가 된 딸아이는 한사코 외출을 거절하는 통에 아쉽게도 오늘은 우리 셋만이다. 호수공원 가로수길 식당에 자리를 잡고 우린 저녁 한때를 오늘도 소통의 시간으로 채웠다. 성인이 된 아들에게 술잔을 권하고, 또 그런 술을 넙죽넙죽 받아먹는 우리 부자 사이에는 그래도 아직까진 세대 간의 불통의 벽은 없는 듯하다.


 "아들, 아빠보다 술이 더 센데. 천천히 마셔"

 "네, 친구들하고 먹던 습관이 됐나 봐요"


해 성인이 된 아들과는 세, 네 번의 술자리가 있었다. 마실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역시 젊음이 좋긴 하다. 마주할 때마다 술이 느는 느낌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 가족 외식 때 식당에서 술 한잔 하려고 막상 소주 한 병을 주문해도 절반을 먹고 나오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든든한 지원군(?) 덕에 소주 두 병은 다 비우고 나온다. 아들 덕에 나도 술이 늘었나 싶은 착각이 들 정도다. 덕분에 취중진담(?)도 듣고 거부할 수 없는 시간임에는 틀림없다. 오늘도 공감, 이해, 포용의 생각으로 아들과는 손을 맞잡은 기분이다.


MZ세대, X세대, 386세대, 베이비붐 세대. 세대가 뭐 별건가. 세대 차이는 어쩔 수 없지만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고, 소통하면 불통 일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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