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온지 6년이 다 되어간다. 아내는 가끔 이사 온 햇수를 물으며 이곳 생활이 꽤 지났음을 상기시킨다. 결혼 후 15년의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된 것도 아주 기막힌 운이었다.
갑작스러운 집주인의 계약 만료 통보로 퇴근하면 늘 이곳저곳 이사 갈 곳을 알아봤다. 처음엔 살던 곳 근처를 알아봤고, 여의치 않아 조금씩 살던 곳에서 거리가 떨어진 동네를 알아봤다. 마음으로는 10년을 살았던 곳을, 함께 어울려 지냈던 이웃사촌을 떠나기 싫었던 이쉬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살던 곳이 워낙 저렴하게 있어서였는지 비슷한 가격대의 우리 네 식구가 들어가기에는 모든 집들이 좁거나, 주거 환경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전세 가능 금액을 조금 올려도 봤지만 무리하지 않고서는 절대 눈높이를 맞춰서 이사 갈 수가 없었다.
아내와 내겐 큰 결단이 필요했다. 처음 집을 알아볼 때만 해도 중학생, 초등학생 두 아이의 학교 등을 고려해 최대한 환경이 변화가 없어야 한다는 조건을 세웠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첫 조건이 불발이 된 순간 두 번째가 아내의 활동 반경을 고려했다. 십 년을 함께 지내온 이웃 언니들과 매일까지는 아니어도 잦은 교류가 있어야 할 듯싶어서 내린 결정이었다. 한 동네는 아니어도 근처로 이사 가면 어느 정도 충족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러 가지 상황상 충족되지 않자 마지막 카드를 들었다.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이상 누군가는 수혜자가 있어야 했다. 결국 세 번째 조건으로 내 출퇴근을 고려했었다. 당시 근무하던 회사에서 가까운 경기도권을 알아보기로 아내와 결정을 했고, 검암을 포함해 몇 곳을 찾았다. 깨끗하고, 가격도 맞는 곳이 여러 곳이 있었다. 하지만 살던 곳을 떠나 이사하는 곳이 낯설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좀처럼 마음이 가지 않았고, 계약 만료 날짜는 다가오고 있어서 초조한 마음은 계속됐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찾은 곳이 지금 사는 일산이었고, 여러 집을 찾아보던 중에 지금 사는 집을 보게 됐다. 아내와 난 다른 조건을 이것저것 재보지도 않고 계약을 결정했다. 그렇게 긴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지금 사는 이곳 일산으로 이사 오게 됐다.
"우리 처음 이사 왔을 때만 해도 크게 변화가 없을 것 같은 동네였는데 요즘 보면 그래도 변화는 있네요"
"그러게요. 동네 변화도 천천히지만 조금씩 바뀌고, 우리 애들은 어느새 부쩍 컸네요. 아들은 이제 어엿한 성인이고, 지수도 키가 이젠 영희 씨보다 커버렸네요"
이사 오면서 우린 살던 집에 맞게 또 한 번 큰 마음을 먹었다. 십여 년의 서울 생활 동안 여러 차례 이사하면서도 바꾸지 않던 가구와 가전을 바꿨다. 침대, 소파, 화장대, TV 등. 여러 가구들 중에서는 이전에는 전혀 구매해 사용할 일이 없었던 가구도 있었다. 우리 식구가 식사하고, 차 마시고, 이야기를 할 공간인 식탁이다.
이전 집들은 주방과 거실 구분이 없었고, 또 크지 않았던 거실과 주방 때문에 전혀 구입을 고려하지 않았다. 게다가 서울살이 할 때만 해도 우리 가족의 구성원은 다섯이었다. 두 아이, 아내, 나 그리고 처남이 마지막 다섯 번째 구성원이었다. 우린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살았다. 네 명이 앉는 게 기본이었던 식탁은 크지 않는 집에서 5인용 식탁은 사치 같은 생각이 들었나 보다. 그래서 더더욱 식탁을 고려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 오랜 생활 함께 지내던 처남은 먼 출퇴근 거리와 여러 가지 이유로 독립을 선언하고 오랜 기간 함께 머물던 주민등록등본에서도 이주해 나갔다. 그렇게 이사 오게 된 곳에는 우리 네 식구만 이 공간을 채우게 됐고, 네 명 구성에 맞게 식탁을 구입했다. 처음 4인용 식탁을 집으로 들인 우린 식탁 위치에 맞게 예쁜 전등도 함께 달았다. 그렇게 식탁에서 식사하고, 차 마시고, 이야기 꽃도 필 줄 알았던 내 생각과는 달리 식사를 하는 일 이외에는 큰 효용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예쁜 등이 켜질 일도 식사할 때를 제외하고는 없었고, 본연의 일을 못하는 주방등은 미색 삿갓만이 주방 디자인의 포인트로 지금까지 남았다.
"영희야, 너희 집은 식탁을 놓은 위치가 너무 이뻐. 앉아서 밥도 먹고, TV도 보고, 차 마시며 식물 보며 바깥 풍경 보기도 좋고. 무슨 카페 같아"
"그렇지, 언니? 저도 이렇게 바꿔놓고 나서 잘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갔더니 원래 있어야 될 식탁 위치는 비어있고, 베란다 창 가까이 거실 한쪽에 떡 하니 식탁이 자릴 차지하고 있었다. 처음엔 생뚱맞게 거실을 차지한 식탁이 주변과 너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자주 보니 활용성이 있어 보였다. 게다가주방도 넓게 쓸 수 있고 넓은 거실에 티 테이블 같아서 더 좋아 보였다.
"철수 씨, 식탁 위치 어때요? 여기 나란히 앉아서 초록이 보며 차 마시면 좋겠죠"
"그러네요. 밖에 근사한 카페 갈 이유가 없겠네요. 영희 씨 아이디어 좋네요. 굿~! 영희 씨 칭찬해요"
처음에는 밥만 먹던 곳이 자리를 바꾸고서는 활용도가 많아졌다. 식사뿐만이 아니라 차도 마시고, 앉아서 TV도 보는 곳이 됐다. 종종 책상처럼 사용할 때도 많아졌다. 내가 식탁에 앉아 글을 쓸 때면, 아내는 종종 맞은편에 앉아 책을 읽는다. 당연히 아이들과도 이곳에 앉아 이야기도 많이 하게 됐다. 우리는결과적으로식탁의 위치를 옮긴 것만으로도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젠 식탁(食卓)이 단순하게 음식을 차려놓고 먹는 탁자의 의미가 아닌 한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과 공간의 의미가 더 크다.
식구(食口)의 사전적 의미는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밥을 함께 하는 사람을 식구라고 할 만큼 그 식구가 모여 함께 식사하는 탁자 또한 의미가 크다. 단순하게 음식을 함께 하는 공간뿐만 아니라 소통의 공간으로서 더 크게 와닿는다. 밥을 차리고, 먹고 다시 접어서 치우던 밥상 환경에서 늘 제자리를 지키며 가족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준비된 모습의 식탁이 오늘따라 든든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그래서 우리 집 식탁의 위치는 여전히 거실이다. 오늘도 가족들과 함께 밥 먹고, 함께 이야기하며 웃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우리 집 4인용 식탁과 함께 기억하고, 채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