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아들 하나, 딸 하나다. 성별이 다른 두 자녀를 둔 난 자식을 하나만 뒀거나 같은 성별을 둔 지인, 동료 가끔은 친지분들께도 부러움을 사곤 한다. 알아서 큰 건 아니지만 그래도 두 아이 모두 건강하고, 무난하게 잘 자라준 것 같아 수월하게 키웠던 것 같다. 게다가 아내나 나의 성향이 온화하고, 따뜻해 항상 집안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래서인지 두 녀석 모두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밝고 , 따뜻한 성격으로 자랐다. 두 아이만 보면 주변 지인들은 잘 키웠다고 늘 칭찬 일색이지만 다른 집과 똑같이 커가면서 두 아이 간의 다툼은 어쩔 수 없었다.
흔히들 격이 없이 종종 티격태격, 가끔은 티키 타카하는 남매를 에둘러서 현실 남매라고 하곤 한다. 우리 아이들도 현실 남매다. 한 동안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이 티격태격과 티키타카의 중간 어디쯤 되어 보이는 경우가 많다.
딸아이방학을 시작하자 큰 아이가 두 팔을 걷어붙였다. 동생의 수학 과외를 맡아서 하겠다고 했다. 대학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학기초에 한 번 부탁은 해봤으나 처음 대학교에 입학한 아들의 마음은 대학교를 오롯이 즐기고 싶었고, 주말에는 따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터라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동생의 걱정을 늘 하는 부모님이 마음도 쓰였고, 동생의 학업도 걱정되어 큰 결정을 한 듯 싶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음에도 큰 결심을 해준 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정작 3주간 수업을 하는 동안 둘 사이가 더 현실 남매가 된 것을 빼고는 달라진 게 없었다. 아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려고 했으나 받아들여야 하는 딸아이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숙제가 많다', '수업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수학은 체질이 아니다' 등의 말로 늘 불만을 쏟아냈다. 결국 아들도 딸아이와 수학 과외를 하는 저녁이면 늘 얼굴로 그 답답함을 참는 게 다 보일 정도로 표정 장인이 된다. 오히려 몸이 힘든 주말에 나가는 백화점 아르바이트를 더 기분 좋게 다니는 걸 보고는 난 다시 한번느꼈다. 부부간에는 운전을 가르쳐주는 거 아니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가족 간에는 공부도 가르치면 안 될 듯싶다.
"야 김지수, 너 과외비 토해내. 난 가르친다고 가르쳤으니 과외비 받아야 하는데 과외 성과가 없으니 엄마 대신 네가 내야지"
"그런 게 어딨어. 나도 할 만큼 했다고. 오빠가 내 눈높이에 맞췄어야지"
그렇게 매일, 매일 두 아이는 풀리지 않는 난이도 최상의 수학 문제 같은 시간을 보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 3주의 시간이 모두 지나갔지만 아들도, 딸도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진 못했다. 굳이 얻은 성과를 꽂으라면 현실 남매 케미 만 더 뽐내는 시간이었다. 책임감으로 똘똘 뭉쳤던 아들도 마지막 3주 차에는 지친 모습이 역력했고, 표정뿐만 아니라 말로도 동생 잡는 내공이 사춘기 때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아주 어릴 때는 밖에 나가면 동생 손을 꼭 잡고 다닌 적도 많았고, 둘이 함께 방을 쓸 때만 해도 같이 어울려 놀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아예 남이 따로 없다. 아니 오히려 남보다 못할 때가 많다. 그래도 두 녀석의 나이차 때문에함께 사춘기를 보낸 위험천만한 시절은 없었다. 아들이 사춘기 시절과 고등학교 3학년 때에는 딸아이 사춘기 수위가 조절이 가능했었다. 그래도터져 나올 것 같은 말 폭탄을 제거하느라 아내와 난 종종 애꿎은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아들은 대학교를 다니면서 아들 스스로가 딸아이에게 할 잔소리를 제어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제어해도 나보다 잔소리는 더 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의 자제력과 인내심으로 둘 간 '파이팅'하는 날은 흔하진 않다.
그래도 예전부터 변하지 않는 게 있다. 둘 모두 무심한 듯 하지만 서로를 걱정은 하며 사는 눈치다. 학교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늘 눈에 보이지 않는 '오빠는' 아직 안 왔냐고 묻는 딸이나, 약속이 있어 늦게 들어와서 거실에 동생이 없을 때 '얜 어디 갔어' 묻는 아들이나 그래도 남보다는 낫다. 그렇게 물을 때마다 아내가 '왜'라고 물으면 두 녀석 어디 입이라도 맞춘 것처럼 시크한 표정으로 똑같은 답이다.
"아니, 그냥"
한 창 성장기에는 남보다 못하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형제간의 우애는 부모의 바람과는 크게 벗어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시간은 항상 우리 편에 서지는 않는 것 같다. 키워준 부모님 슬하에서 벗어나 자신의 가족을 이루고, 자식들을 키우면서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해 갈 때쯤 항상 곁에 계실 것 같은 부모님은 우릴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렇게 부모님을 보내고 나면 자신의 가족뿐만 아니라 부모님이 이룬 가족을 돌아보게 된다. 바로 내 형제, 남매, 자매들을.
나도 여동생이 있고, 아내도 남동생이 있는 남매다. 현실적으로 커온 성장과정이 다른 아내와 난 어릴 때 남매간의 우애나 형제간의 표현이 달랐을 것이다. 당장에 아내의 남동생인 처남과 함께 살 때만 봐도 아내에게 하는 표현이나, 행동이 나와는 많이 달랐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함께 늙는다는 표현이 어울리게 될 때쯤 되니 가족은 가족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툴툴거리긴 하지만 늘 누나를 챙기고, 조카들을 챙기는 모습이 영락없이 가족이다. 그래 함께 살 때는 잊고 있었지만 형제, 자매, 남매들 모두 가족이다. 한 부모 아래에서 함께 밥 먹고, 공부하고, 놀면서 성장한 바로 그런 존재였다. 이만큼 나이 들고 보니 혼자보다는 당연히 둘, 둘보다는 셋있는 게 좋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