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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Jul 11. 2022

아름답지 않았던 중년의 꽃 선물

꽃을 도대체 어디서 꺾어 오신 건가요

 "예비 사위가 처음 집에 인사 오는데 꽃을 선물해 주고 싶어서요"


동네에는 아내의 단골 꽃집이 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지 못하듯 아내는 근처를 지날 때면 늘 꽃집에 들른다. 식물을 사기도 하지만 대부분 방문 목적은 꽃집 사장님과 함께 수다 떨며 보내는 시간이 즐거워서이다. 이런 아내를 꽃집 사장님도 늘 반긴다.


 "영희 씨, 오늘 저녁에 약속이 생겼어요. 저녁 먹고 늦지 않게 갈게요"

 "네, 철수 씨도 없고, 아들도 약속 있다고 하니 지수랑 저녁 시켜 먹어야겠네요"

 "그렇게 해요. 근데 어디 나가는 길이에요?"

 "네, 꽃집 가서 사장님하고 수다 좀 떨다가 들어가게요"


서울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온지도 6년이 지나간다. 주변에 만날 사람 하나 없던 아내였지만 본인만의 친근감으로 꽃집과 몇몇 사람들과의 친분을 쌓았다. 그중에 늘 찾아가면 열려있는 꽃집은 아내의 단골 '핫플레이스'다. 오늘도 이 '핫플레이스'를 방문해서 점심에 커피까지 풀코스로 즐기고 집으로 귀가했다. 이렇게 꽃집에 가면 식물 이야기도 많이 하지만 주변 이야기나 사는 이야기들을 하다 보면 가끔은 내게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하고는 했다.


 "영희 씨, 다녀왔어요. 오후에 꽃집에서는 재밌었어요?"

 "당연히 재미있었죠. 그나저나 오늘 꽃집 갔다가 들은 얘긴데 사장님 정말 어이없고, 당황스러우셨겠더라고요"

 "무슨 일이 있었나 보네요"


궁금함을 유발하고 나서 아내의 얘기는 시작됐다. 얘기의 주는 이랬다. 꽃집에 한 육십 대 중후반 정도 돼 보이는 남자분이 찾아왔다. 꽃을 보관하는 냉장고 앞을 서성이던 남자분에게 무엇을 찾느냐고 사장님은 물었고, 그 손님에게 돌아온 답변이 놀라웠다고 했다.


 "예비 사위가 집에 처음 인사 오는데 꽃을 선물해 주고 싶어서요" 그 순간 중년 남자의 전화벨 소리가 울렸고, 그는 폰을 들여다보더니 꽃집 사장님에게'잠시만요'라고 말하고서는 전화를 받았다.

 "아 내가 알아서 할게. 문제 될 것도 없는데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거 아냐. 아무튼 알았어. 끊어" 중년 남자는 전화를 언짢은 말투로 끊고서는 다시 꽃집 사장님에게 얘길 했다.

 "제 아내 전화인데 꽃다발은 아닌 것 같다고 하네요. 혹시 그럼 코사지라도 만들어 주실 수 있을까요?" 그 얘길 듣고 조금은 의아해서 꽃집 사장님은 다시 되물었다.

 "코사지를요? 그걸 누구 가슴에 다시게요?"

 "물론 예비 사위에게 달아줘야죠. 왜요? 좀 이상한가요?"


꽃집 사장님이 생각해도 그건 아니다 싶어서 조심스럽게 아내분과 상의해보는 게 좋을 듯하다고 대답했다. 그 남성은 잠시 굳어진 얼굴로 매장 안을 서성이더니 '금방 오겠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꽃집을 나섰다.

시간이 한 시간도 체 지나지 않아 그 남성은 다시 꽃집을 찾았고, 한쪽 팔에 잔뜩 안아 든 꽃을 내밀며 포장비를 낼 테니 꽃다발을 좀 만들어 달라고 말했다. 잠시 당황하던 꽃집 사장님은 유심히 그가 안고 온 꽃을 보더니 이내 표정을 굳히며 손님의 요청을 거절했다. 그렇게 거절당하자 그 남성은 이내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씩씩대며 꽃집을 나가버렸다.


꽃집 사장님은 다른 곳에서 들고 온 꽃으로 꽃다발을 만들어달라는 말도 안 되는 주문도 황당했지만 거절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정말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던 이유는 그가 한 아름 고 온 꽃 때문이었다. 꽃은 형형색색 색깔별로 너무 예뻤다. 백합과 나리와 보랏빛의 리아트리스 그리고 애키네시아까지 화려한 꽃들이 한가득이었다. 문제는 그 꽃을 어디에서 갖고 왔느냐의 문제였다. 꽃집 근방에는 다른 꽃가게가 없다. 꽃은 역 주변 공원에 한창 만개한 꽃들이었고, 그 중년의 남자분은 바로 그 공원에서 시민들이 함께 보는 꽃을 꺾어온 것이었다. 그것도 팔 한가득 안아 들 정도의 많은 양을 양심 없이 꺾어온 것이다. 당연히 그 꽃이 어디서 온 것인지 알기에 그가 한 주문 요청을 부득이하게 거절해야만 했다. 정말 어이가 없고, 황당했던 사건이라고 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끔 접한다. 그런 일들 중에서는 가벼운 도덕적 양심의 문제도 있겠지만 심각한 범죄로 얽힌 사건들도 종종 있다. 내가 좋아서 한다고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피해를 준다면 그 일을 기획한 동기가 어찌 되었건 간에 그 과정이나 결과는 결코 선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나만 아니면'이라는 말로 자신의 양심에 조금은 어긋난 일들을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런 '나만 아니면'의 자기중심적 이기주의가 가끔은 어떤 사람에게는 아물지 않을 상처가 될 수도, 평생의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다.


오늘 들었던 중년의 한 남성의 꽃 소동은 꽃을 선물하려던 중년 남자의 흔하지 않은 따뜻한 사연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처음 꽃을 선물하려던 자신의 '예비 사위'에 대한 마음과는 달리 꽃을 구하는 과정에서 그는 큰 실수를 했다. 공익을 목적으로 산책로를 따라 심어놓은 꽃들을 자신의 앞마당에 있는 꽃인 양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욕을 위해 꽃들을 꺾었다. 산책로를 따라 걷는 많은 사람들에게 휴식 같은 공간을 내어주며 해마다 쉼터가 되었던 꽃밭의 꽃들을 무참히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꽃들에게도, 주민들에게도 희생을 강요한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꽃을 받아 든 '예비 사위'도 자신이 받은 꽃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면 고맙고, 감사할 마음더는 없을 것이다.


살아가며 저마다의 목표가 있지만 자신의 목적이나 목표를 위해서 어떤 사람의 희생을 바라거나, 강요할 수 없다. 당연히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위 또한 없어야 한다. 시간이 지나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해도 타인에게 피해를 입혀가며 이룬 성공은 결코 아름답지 못한 반에 반쪽짜리 성공으로도 인정하지 못할 테니까. 오늘은 일부러 지하철역을 나와 퇴근 경로를 바꿨다. 예상했던 대로 꽃이 있어야 할 자리에 풀만 무성했다. 이런 현실에 마음은 씁쓸했지만 꽃은 내년에 또 필 거라는 생각에 풀만 무성한 꽃밭을 보면서도 작은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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