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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Sep 05. 2022

부서가 변경된 팀원을 외근 보낸 이유

당신도 틀 안에 갇혀 살면서 무조건 'No'를 말하나요

항상 한계를 그어놓고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걸 어떻게 해요', '이건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시간과 돈이면 다 된다지만 이건 아니죠' 틀린 말이 아니다. 가능성을 가지고 할 수 있는 한계는 분명히 있다. 모든 게 가능하면 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이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리부터 한계를 정해놓고 바라보는 일과 객관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로 받아들이는 일은 차이가 있다.


십여 년 전 직장에서 팀장 직책을 수행하던 때의 일이다. 회사 내외부 사정이 좋지 않아 구조 조정에 부서 간 편제 이동이 있었다.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불필요한 조직은 없애고, 작은 조직은 큰 조직에 흡수됐었다. 내가 맡고 있던 팀은 회사에서도 두 번째로 큰 조직이라 다른 부서의 인원 일부가 우리 팀으로 전배 되어 오는 변화가 있었다.


그중 한 동료가 제품 품질부서에서 우리 팀으로 전배 되어 왔다. 입사한 지 2년이 넘었지만 워낙 조용한 성격이라 눈에 띄지 않는 동료였다. 하지만 꼼꼼하고, 차분한 성격이라 새로운 업무에도 금방 적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어려워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같은 제품을 다루는 엔지니어라도 우리 팀은 고객을 만나서 일하는 대외적인 업무가 주였고, 그 동료의 업무는 주로 새롭게 출시한 소프트웨어를 내부에서 검증하고, 리포팅하는 내부 업무가 주였다. 하지만 팀의 업무 대부분이 대외적인 일이라 새롭게 전배 되어 온 동료를 많이 배려하기엔 다른 팀원들 형평성에도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었다. 함께 부딪쳐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시점이었다.


그 동료가 우리 팀으로 전배 받은 지 2주가 지난 어느 날 난 그에게 고객사 중 한 곳에 다녀오라고 지시했다. 업무 내용은 난이도가 그리 높지 않은 고객의 요청으로 사용 중인 제품에 대한 추가 개발이나 요구사항에 대한 개발 미팅이었다. 처음에는 무척 당황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당연히 생각했던 반응이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말고, 2년이나 해오던 솔루션이니 마음 편하게 다녀오라고 그를 안심시키려고 애썼다. 그럼에도 그의 표정은 편해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는 옮겨온 부서의 첫 업무이다 보니 걱정이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직접 다녀오면 아무 일도 아닌 것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모른 체하고 하던 업무에 열중하며 동료가 외근 가는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봤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서야 그는 다시 사무실로 복귀했고, 동료의 표정은 나갈 때와는 너무도 다르게 변해있었다. 자신의 책상 위에 짐을 놓고 난 뒤 내 자리로 오는 동료의 얼굴은 마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개선장군' 같이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자리 앞에 우뚝 선 동료는 내게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다녀왔습니다. 팀장님"

 "어, 어 그래 우람 씨. 잘 다녀왔어?"

기대했던 것보다 더 밝은 표정에 조금 놀랐지만 내심 보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네, 걱정했었는데 직접 부딪쳐보니 그렇게 걱정할 일은 아니었어요"

 "거봐. 막상 해보니 별일 아니잖아. 우람 씨가 외부 고객을 만나지 않았을 뿐이지. 내부에서도 개발팀하고 얘기하고, 회의하고 그러는 거랑 크게 차이 없어. 그냥 사람 상대하는 일이 다 거기서 거지지"

막상 말은 이렇게 해도 분명 상대하는 고객이나, 업무의 난이도에 따라 차이는 있다. 하지만 오늘 동료에게 준 자신감만큼은 큰 선물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늘 틀 안에 갇혀 생각하면, 틀 밖의 세상을 보지 못한다.


과거 한 직장에 있을 때에 내가 하던 주요 업무는 무선 LTE 기반의 보안 제품을 사용하여 여러 고객사의 대형 사업 수주를 제안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번번이 고개를 숙여야 했다. 데이터를 사용하면 할수록 늘어나는 요금제를 쓰는 LTE라는 특수성 때문에 과금의 걱정을 줄여야 했고, 늘어나는 요금을 줄이기 위해 평소에도 데이터 사용량이 많은 암호 채널을 하루에 정해진 횟수만큼 연결과 해제를 반복하는 알고리즘 개발로 무언가 기회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 직장에 와서야 어렵게 생각했던 기술 자체를 뒤집는 시장 환경을 이해했다. 현 직장에서는 상시 전원이 불가한 시장 환경임을 감안해 배터리를 사용하여 하루 수차례 전원이 켜지고, 꺼지는 방식으로 제품을 동작시킨다. 당연히 보안에 대한 요구도 있지만 과거 다녔던 회사만큼 암호화 채널을 사용할 정도의 중요도가 높은 시장 환경은 아니었다. 게다가 배터리를 사용한 전원 온오프 방식은 우리 회사만의 기술이 아닌 현 시장 환경의 대부분 제품군들의 보편적인 기술이다.


과거 회사에서 난 배터리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고려해봐야겠다는 제안을 했지만 하드웨어 설계하는 담당자는  상시 전원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제시하며 불가한 이유를 설명했다. 설계 영역은 엄연히 하드웨어 개발팀의 영역이기 때문에 더는 얘기할 수 없었고, 당연히 그들의 말을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재 다니는 회사의 주요 타깃 시장과 환경이 요구하는 기술을 보면서 씁쓸함을 금할 수가 없다. 생태계 영역이 다를 뿐이지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 시장이 아니다.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였고, 한계를 미리 정해놓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었음을 알게 됐다.


변화와 혁신은 쓰던 기술의 확장이 아니라 쓰던 기술을 덮어놓고 보지 말아야 한다.


이미 사용되고 있는 회사의 제품을 토대로 기술을 확장하려고 했으니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고, 새로운 설계 방식에서 다시 고민하고, 검토했으면 조금 더 긍정적이고, 우수한 성능의 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쉽게 고민을 해결할 수 없었을지라도 불가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미 만들어놓은 제품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틀과 한계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마음에서 변화와 혁신은 일어날 수 없다. 아깝다고, 아쉽다고 들여다보고, 또 보고 할 일이 아니고 아예 덮어놓고 보지 말아야 한다. 없던 녀석처럼. 단순하게 뒤집어서 생각하면 해결이 어려운 부분도 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늘 한계를 정해놓고 생각을 하면 틀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생각들 뿐이다. 명확한 건 그 틀도 자신이 정한 것임을 인지해야 한다. 한계라는 굵은 글씨체로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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