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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Sep 30. 2022

나 꼰대 탈출이 가능할까

누가 뭐래도 전 오늘을 마음 편한 꼰대로 삽니다

"지수야, 아빠가 꼰대 같을 때가 있었어?"

아내, 딸과 함께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문득 우리 아이가 바라보는 아빠는 어떨까 하는 궁금증에 딸에게 평소에도 궁금했었던 얘길 꺼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조금은 놀랐지만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고 딸아이가 고개를 끄덕대며 고민하다 입을 뗐다.

"음, 글쎄~"

반응과는 다르게 딸아이가 명쾌한 답이 없이 얼버무리자 아내가 조금 구체적으로 의견을 물었다.

"얘 이러는 거 보니까 별로 그런 적이 없었나 보네. 아빠가 치마 짧다고 그런 얘기 안 해?"

"우리 아빠는 교복 치마 짧다고 그러진 않아요. 어머니"

아내의 구체적 예시에도 딸아이는 '내' 편을 들어주며 우린 제법 한 편 같은 모양새를 자랑하듯 얘기해주는 바람에 가만있던 어깨가 들썩이고, 가슴까지 쫘~악 펴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그 한마디만 없었으면 난 완벽하게 꼰대의 누명을 벗을 수 있었는데 말이다.

"굳이 얘기하라고 하면... 지난번에 했던 얘기 중에 아빠가 이성 교제에 대해 중학생 땐 좀 이르다는 식의 아빠의 생각이  구식 같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아무래도 그건 좀 꼰대스러웠거든"

"딸, 그건 꼰대이기 앞서 대한민국 딸 가진 아빠들이 가지는 공통된 생각일 걸"


나이가 한 살, 두 살 더 먹어가며 예전엔 내가 말했던 얘기들이 이젠 내 귀에 들려오는 단어들이 있다. 그중에 요즘 안팎으로 많이 고민하고, 스스로를 절제하려고 애쓰는 한 단어가 바로 '꼰대'다. 나이 들면 자연스럽게 붙는 단어 같지만 실제 나이 듦과는 전혀 상관없는 단어이기도 하다. 정확한 어원은 알 수가 없지만 꼰대는 대한민국 표준어에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다.


 *꼰대란 일반적으로 나이 든 사람, 즉 늙은이를 가리키는 은어로 사전상 소개된다. 가끔 학생들 사이에서는 '선생님'을 가리키는 은어로도 쓴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하는 꼰대라는 의미는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은 아랑곳없이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고, 가리키려고 드는 사람들의 행동이나 말을 일컫는다. 그래서인지 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기성세대를 통칭하는 표현으로 젊은 세대들이 많이 쓰고는 한다.


돌이켜보면 내 나이 십 대 때는 부모님이 내 생각을 존중해주지 않고, 당신들의 경험을 빗대어서 내 생각이 틀렸음을 강요할 때가 있었다. 당시 꼰대라는 단어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꼰대와 비슷한 단어들을 머릿속에 떠올리곤 했었다. 이삼십 대 직장을 다니면서도 위 상사와 의견 조율이 되지 않고, 결국 내 의견이 묵살된다고 느꼈을 때 '직급이 깡패다'라는 생각을 자주 가졌었다. 단순한 사고 차이였던 일도 나이 든 상사가 '경험'을 빗댄 자신의 주장을 피력할 때면 내 의견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생각만이 큰 반감으로 그들의 '권위'가 잘못되었음을 말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듯이 멈춰 설 것 같던 내 십 대, 이십 대, 삼십 대의 시간이 어느덧 훌쩍 흘러갔다. 당신들의 경험을 얘기하던 그 시절 부모님보다 더, 권위적으로 느껴졌던 이, 삼십 대 때의 상사보다 더 어느새 내가 더 나이 들어서 지금은 두 아이의 아빠이자, 직장에서는 젊고, 활기 넘치는 후배들과 함께 일하는 관리자가 되어 있다.



처음 관리자를 시작했던 삼십 대 중반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내가 해왔었던 것처럼 업무 할당을 했고, 나 역시 그렇게 팀원들과 동등하게 일을 처리했다. 그렇게 일해왔으니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게 일을 지시했다. 보안 소프트웨어 회사였고, 비슷한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부서 내 모여 있었던 삼십 대 시절이라 많은 대화 없이도 큰 잡음 없이 그렇게 일들을 했었다.


내게 꼰대스럽다는 말을 한 첫 동료를 만났다.


그렇게 삼십 대 시절 팀장을 보냈고, 이직 이후에 맡은 사십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회사에서 복병을 만났다. 그는 나와 큰 나이 차이가 없었음에도 나와 생각이 달랐고, 옳다고 여겼던 내 생각들을 흔들어 놓았다.


팀에서 맡은 프로젝트 진행 과정 중에 발생한 이슈 때문에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다. 이슈 해결을 위한 개발 일정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야근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가 된 지 오래였다. 당장 이번 주말이 지난 월요일이면 해결이 되어야 하는 문제담당하고 있는 개발자가 수정된 이미지를 전달해주기 전까지 그날도 무작정 대기 중이었다. 하지만 막상 해당 이슈를 수정할 담당자는 퇴근을 서두르고 있었고, 이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는 나로서는 담당 개발자를 붙들며 한마디를 할 수밖에 없었다.

 "박 과장, 지금 A 고객사 개발을 차주 월요일까지 마무리해야 하는데 수정된 소프트웨어는 언제 주게?"

 "정 팀장님, 월요일까지 수정 완료 아닌가요? 월요일 퇴근 전까지 수정된 소프트웨어 전달드릴게요"

그의 말이 너무 황당했지만 고객사 적용 일정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다시 한번 그에게 고객사 적용 일정에 대해 설명했다.

 "박 과장, 월요일 저녁에 고객사 적용해야 하는데 월요일 퇴근 전에 주면 실제 고객사에 가서 작업할 우린 어떻게 하라고. 문제 안 생길 자신이 있는 거야?"

이렇게 튀어나온 말이 그에게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급박한 상황을 이해 못 하는 그를 이해하고, 설득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말에 퇴근하던 그가 다시 가방을 내려놓고 노트북을 꺼낼 것을 기대했지만 당연히 나올 거라고 생각했던 내 반응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는 내게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팀장님, 개발 입장에서는 문제가 없게 하려고 하지만 그래도 만일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걸 어떻게 자신해요. 그리고 월요일에 문제 생기면 고객에게 얘기해서 다시 수정해서 전달하면 되잖아요"

그의 생각지도 못한 답변에 난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이십 년 가까이해 온 직장생활에 이런 경험이 없어서인지 대응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박 과장, 이거 너무 무책임한 거 아냐. 이런 식으로 업무 처리하는 건 처음 봐. 당장 나가서 문제 있으면 깨지는 건 우린데. 너무 한다 정말"


상황이야 어찌 되었든 그는 내 이런 얘기에도 아랑곳없이 퇴근을 감행했고, 그가 약속한 대로 월요일 오후 늦게 가 되어서야 수정된 소프트웨어를 받을 수 있었다. 다행히 고객사 사정으로 적용 시기가 이틀이 미뤄져서 결과적으로 최소한의 내부 시험 및 추가 수정할 시간을 벌었지만 그의 행동과 업무 처리 태도를 그냥 넘길 수 없었다. 그날 이후 그와 잠시 대화할 시간이 있어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박 과장, 지난주 업무 처리는 좀 문제가 있지 않아? 고객사 약속한 일정도 있고, 개발팀이 수정 완료하면 내부 테스트 늦게라도 하려고 남아있는 우리 팀원들 고려하면 말이야"

 "팀장님, 애초에 고객과 협의하실 때 개발팀 일정은 따로 조율하시지 않으시잖아요. 급하다고 하시니 월요일 일정에 맞추긴 했지만 금요일까지 완료해서 달라고 하신 것도 아니잖아요. 이럴 때 보면 팀장님도 꼰대스러울 때가 있어요"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에 반박하지 않았고, 고객과의 약속이 우선한다고 생각했던 내 사고방식이 옛날과 크게 다르지 않음이 꼰대스럽게 보였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로는 그의 태도를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고, 급한 일정이 아니고서는 개개인의 역량 및 태도를 배려한 협의를 우선시하게 되었다.

꼰대, 자기 검열과 인내심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작년에 새롭게 이직을 하면서 임원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이직해 옮겨온 회사에서는 나이만큼이나 무거워진 직책과 직급이 새롭게 생겼다. 하지만 나는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최근에는 나름의 자기 검열과 인내심을 키우고 있다.


 "이사님, 관리자 페이지 요청사항 설계문서 메일 드렸는데 확인하셨나요?"

 "응, 아직 메일 확인 못했어. 확인하고 의견 줄게"


얼마 전까지 개발팀 관리자 역할도 내가 맡고 있는 업무 중 하나였다. 개발 경험은 없었지만 오랜 기간 소프트웨어 제조사에 있었던 커리어 때문인지 선 듯 직책을 맡았다. 쉽지는 않았지만 개발팀 리더로서 역할도 스스로 만족스러웠다. 다만 '세대차'라는 말이 늘 머릿속에 있을 만큼 나이차가 많이 나서 늘 단어 선택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적게는 17~8년부터 많게는 두 곱절 띠동갑보다 더 많은 나이차가 나는 팀원도 있을 정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근무지가 떨어져 있다 보니 얼굴 보며 소통할 기회는 흔치 않았다.


 "박 전임, 메일 확인했어. 시간 괜찮으면 화상 회의할 수 있을까?"

 "네, 이사님. 방 만들어서 초대하겠습니다"


그렇게 화상회의 방을 통해 담당 개발팀과 회의를 시작했고, 설계 문서를 검토한 내 의견을 내기 전에 설계 의도 및 개발 구현 시 동작에 대한 설명을 물었다.

 "설계 의도는 입력된 조건에 따라 유연하게 동작되는 형태로 구현을 의도했습니다. 구현 시 동작은 완성된 문자열을 기준 선택 날짜의 조건식에 맞는 값이 출력되도록 했습니다"

 "그래. 수고했네. 개발 기간은 어느 정도 걸릴까?"

 "아 다른 급한 개발 건들도 있고 해서, 실제 개발은 다음 달이나 되어야 시작이 가능할 듯싶습니다"

 "아... 그래. 우선은 다른 개발 관련 일정 확인 다시 한번 해보고 개발 시작 기간은 다시 논의하자"

 "네, 알겠습니다"

마음속에서는 무슨 말이든 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며 내 주장을 피력하는 게 오히려 더 좋지 않은 결과로 나타날까 조금은 우습게 결론 내리며 화상회의 연결을 끊었다.


 '근데 입력되는 문자열과 선택 조건이 조금 더 다양했으면 하는데. 거기다가 기준 날짜를 범위로 줬으면 더 활용도도 높을 텐데'

 '의사결정이 필요한 보고용 문서가 형식도 없고, 구체적이지도 않아. 오죽하면 내가 다시 설명해달라고 묻겠니'

 '예전 나 때는 일정이 있는 것도 조절이 가능한지, 혹은 우선순위를 다시 조정해본다던지 하는 말이 우선일 텐데...'


머릿속을 맴돌던 여러 가지 생각들은 결국 내 입을 통해 터져 나오진 못했다. 남의 말을 듣지 않고, 결국 고집스럽게 내 주장만을 내세우는 모습에 안 그래도 세대 장벽이 높은 사이인데 더 높이 담을 쌓을까 두려워 결국 생각을 접고, 입을 닫았다. 내 인내심과 자기 검열의 승리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최근 조직이 바뀌면서 MZ세대로만 구성된 개발팀의 관리자의 책임은 다른 임원분에게 넘겼다. 다행히도 함께 일하는 동료 후배는 40대다. 거기에다 첫 관리자였던 내 30대 중반 시절에 함께 일했던 동료다. 이젠 '세대차'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후배는 자기 검열과 인내심도 적당히 수위 조절하며 뱉어낼 수 있는 나이차다. 십 년도 차이 나지 않는 후배에겐 오늘도 예전과 같은 방식의 업무 지시와 함께 내 주장도 잊지 않고 말한다. 적어도 '꼰대'라는 시선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 후배의 말을 빌자면 이미 십여 년 전 자신의 첫 직장시절에 날 꼰대로 낙인찍었다고 했다. 그래서 난 당분간은 마음 편하게 꼰대로 살아도 될 듯하다. 나름 소통이 가능한 꼰대 정도로 살면 되지 않을까 싶다. 나이는 다른 의미에서 숫자에 불과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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