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서 살다 보면 편안함이 익숙함이 되고, 그 익숙함에 무뎌짐까지 더하면 권태기가 찾아온다. 삶의 방식이나 태도에 따라 다르지만 시기와 기간의 문제일 뿐 한 번쯤은 오는 중년의 병이다. 하지만 이런 권태기도 부부간 극복하려는 노력이나 물리적인 힘, 때로는 주변의 도움으로 이겨내곤 한다. 단지 그 시기와 기간의 문제일 뿐.
요즘 내게는 소위 얘기하는 글 태기가 왔다. 글 쓰기 권태기. 10년 만에 이직해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일들로 분주한 날들을 보내긴 하지만 글만큼은 놓지 않았다. 올해 초부터 입으로는 늘 글 태기가 왔다고 했지만 정작 마음으로는 내가 뱉어내는 말에 여유가 있었다. 그만큼 글 쓰는 시간은 내게 행복감을 줬고, 놓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이젠 정말 글 태기가 왔다.
하지만 어느 날엔가부터 내겐 정말 글 태기가 왔다. 얼마 전까진 노트북을 펴면 늘 자판 위에 손은 쉬는 날이 없었고, 평상시에도 글감이 문득문득 생각나는 순간이 많았다. 그런 생각들을 놓칠세라 메모를 했고, 저녁이면 메모된 내 생각들을 정리하며 또 글을 썼다. 하지만 이젠 자주 하던 메모도 줄었고, 종종 떠오르던 생각들도 사라진 지 오래다.
생각해보면 브런치를 시작하고 요즘처럼 글 발행이 줄어든 것도 처음이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일주일에 여 서일곱 편의 글을 발행했었다. 그땐 모든 생활이 글이 되었고, 일상에서 쏟아지는 글감으로 스마트폰 메모장은 늘 텍스트로 빼곡했다. 회사에서도 '짬'만나면 글을 썼다. 그렇게 쏟아내던 글도 한 해 한 해 지나며 일주일에 세네 편으로, 또 일주일에 두 편으로 글 발행이 줄었다.
요즘은 일주일에 한 편 글 발행이 목표일만큼 글쓰기가 어려워졌다. 아니 예전보다 내 의욕이 많이 사그라들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건 모두 브런치 탓인 것 같기도 하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브런치 메인에 글이 걸렸다. 글 하나가 올린 조회 수가 처음 1,000회를 넘었을 때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싶을 정도로 신기했다. 지금은 누적 조회 수가 10만을 넘은 글만 해도 다섯 개고, 1만 조 횟수를 넘은 글도 70개를 훌쩍 넘었을 만큼 조회 수는 내게 큰 감흥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고 이젠 발행 글이 메인에 걸리지 않으면 서운한 마음이 크다. 조회 수 천 회가 그리워질 만큼.
브런치가 버릇을 잘못 들였다??
브런치에 몸 담은 지 만 삼 년이 지났다. 내 글의 고향까지는 아니지만 이젠 옮기고 싶지 않은 삶의 터전 같은 곳이 되었다. 옮겨가기에도 몸집도 많이 무거워졌다. 어제 브런치에서 자주 소통하고, 오마이뉴스에서 함께 기획 기사를 쓰는 작가님들을 만났다. 두 분 모두 글로는 누구보다 진심이고, 부럽게도 두 분 모두 여러 권의 책을 집필했을 만큼 필력도 좋은 분들이다.
브런치를 통해 소통을 한지는 2년이 됐지만 실제 오프라인 모임을 한 건 처음이라 만나기 전 마음은 들뜬 마음도 있고, 서먹하면 어쩔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자그마치 다섯 시간이 넘는 시간을 중년의 수다 삼매경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셋 모두 서로의 구독자였고, 대부분의 글을 정독한 터라 서로의 과거, 현재, 감정 등을 너무도 잘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었다.
두 분 작가님들과 이런저런 얘기 중에 브런치에 대한 생각들이 오갔다. 벌써 책을 다섯 권이나 집필하고, 올해도 책 출간을 기다리는 한 작가님이 이젠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그 작가님은 브런치에도 훨씬 오랜 시간 머물렀고, 브런치에 올린 글 때문에 출간도 했었던 분이다. 하지만 본인이 생각하는 브런치의 방향은 너무도 명확하다고 생각했다. 새롭게 등록된 브런치 작가들에게 기회를 주고, 그렇게 기회가 주어진 작가들은 브런치가 연동 가능한 포털이나 카카오를 통해 많은 홍보를 해준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내게도 이런 수많은 기회가 주어졌었다. 지금의 구독자와 누적 조회 수가 같은 방법으로 채워진 것이라고 생각해보니 브런치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일정 기간 새로운 작가를 위한 홍보도 끝나면 브런치는 정을 떼고, 매몰차게 연을 끊는다고 한다. 어느 정도 스스로 일어날 힘이 생겼다고 판단하면 가졌던 관심을 거두고, 또 다른 작가 발굴과 새로운 작가 홍보에 힘쓴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브런치 작가들이 처음에 받은 관심이 시들해지고, 힘이 빠지면 많이들 브런치를 떠난다고 한다. 글을 열심히 쓴다고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는 것도, 돈을 버는 것도 아닌 플랫폼에서 유일하게 받을 수 있는 관심에서 멀어지니 생기를 잃는 것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단순히 쓰기에 만족하지는 않는다. 많은 작가분들의 희망은 내가 쓴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고 공감하고, 좋아해 주기를 바란다. 그런 이유로 많은 아마추어 작가들이 브런치를 찾는 것이고, 브런치를 떠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글을 써야 한다. 써야지 읽을 것이고, 읽혀야 공감이 되었든, 질타가 되었든 관심을 받을 것이다.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난 올해 브런치 북도 어김없이 포기하지 않고 노크를 했다. 2년이나 물을 먹었지만 난 행동을 해야 무슨 일이든 일어난다는 믿음을 놓지 않는다. 글 태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하겠지만 권태기도 스스로 극복보다 부부간의 극복이 필요하듯이 내게도 글 태기를 위한 동기부여가 필요한 요즘이다. 그래서 난 오늘 하루도 글로 하루를 채워본다. 열기 위해 오늘도 두드려보련다. 그래도 '브런치'에게 굳이 한마디 하라고 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