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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Nov 07. 2022

너 때문에 완전히 망했잖아

타이밍이 이리도 절묘할 수 있을까

11월 3일 기준 코로나 누적 확진자 수는 25,717,277명이다. 대한민국 인구가 5,160만 명이 넘으니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코로나를 경험했다. 물론 처음이 아닌 두 번 이상 확진된 사람도 포함이니 정확히는 2,570만 명보다는 적을 수 있다. 하지만 일부 이런 중복 확진의 경우를 제외하고라도 대략적으로도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코로나에 노출된 셈이다.


11월 2일 난 내 생애 첫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그것도 매년 가는 제주도 올레길 여행을 하루 앞두고 확진 판정을 받았다. 저렴하게 다녀오기 위해 미리부터 예약해놓은 왕복 항공권부터 편안한 숙박을 위해 예약해 놓은 호텔 숙박권까지 눈물을 머금고 예약 취소를 진행했다. 물론 예약 취소와 함께 일부의 위약금 지출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예 취소 환불이 되지 않던 상품이었던 호텔 숙박권의 환불을 받았다는 정도이다. 그것도 원래부터 코로나 환불 규정이 없다던 숙박 예약업체를 잘 설득해 10퍼센트의 위약금만 지불하고 90퍼센트를 환불받았다. 물론 고객센터 상담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코로나 양성 확인서까지 제출하고서야 가능했지만.


코로나를 너무 얕봤다


코로나가 확산된 지 어느덧 3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많은 위험들이 있었다. 같은 사무실에 동료들이 돌아가면서 걸릴 때도 무사히 넘어갔고, 올봄에는 아들까지 확진되어서 이젠 정말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주변 다른 사람들은 전염이 되어도 내게는 남의 일처럼 느껴질 정도로 무사히 잘 피해 갔다. 오죽하면 주변에서 '슈퍼 면역자'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스스로가 신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중교통으로 긴 시간을 출퇴근하고, 사람들하고 어울리길 좋아하며, 외근도 많은 직군이다. 나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이 신기해하는 게 정상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훅'하고 치고 들어올지 몰랐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별다른 증세가 없었다. 다만 확진을 받기 이틀 전 저녁, 조금의 피로감과 약간의 오한이 잠깐 있었다. 잠깐 걱정은 했지만 주말에 맞은 독감 백신 때문인가 하고 말았다. 다음날 중요한 업무차 지방 출장이 잡혀있어서 더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문제는 출장 업무 이후 몸의 이상을 느꼈지만, 극심했던 긴장과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자가진단 후 늦은 저녁 출장에서 복귀했다. 하룻밤 약 먹고 푹 자면 괜찮아질 거라 믿고서, 아니 꼭 그래야 한다고 빌면서 잠이 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 다음날 찾은 병원에서 난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매년 가는 제주도 올레길이지만 올해는 다른 해와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바로 아주 오랜만에 아내와 둘이 가기로 한 여행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이들까지 함께한 여행은 많았지만 이렇게 둘이만 가는 여행은 정말 오랜만이다. 작년에 결혼 20주년이었지만 큰 아이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관계로 아내와 난 20주년 결혼 기념이 될 만한 어떤 이벤트도 갖지 못했다. 그래서 올해 제주 여행길을 내가 아내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오랜만에 둘만 가는 여행을 아내도 무척 기대하는 눈치였다. 입고 갈 옷을 걱정도 하고, 숙소나 여행코스도 물어보면서 당장 여행 갈 날만 우린 손꼽아 기다렸다.


제주 여행 취소는 약소하고, 그보다 더 큰 손해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린 여행을 가지 못했다. 그것도 우리의 자의가 아닌 '코로나'라는 악재를 만나서 말이다. 속상하지만 세상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이 한두 가지인가. 하지만 막상 코로나 환자로 안방을 차지하며 격리되고 나니 막상 거실에서 잠자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다. 격리된 나야 그냥 주는 밥 삼시세끼 꼬박꼬박 받아먹으면 그만이지만 아내는 평소보다 신경 쓸 일이 더 늘었다. 게다가 잠자는 공간도 소파 위라니 마음이 편치 않다. 이 못된 '코로나' 녀석이 아내나 아이들에게 손을 뻗지 않았으면 좋겠다.


코로나! 너라는 녀석 때문에 난 올해 아내의 생일도 화상으로 축하해야 할 판이다. 확진을 받고 자가격리 기간을 보니 딱 아내 생일인 8일까지가 격리기간임을 알게 됐다. 40대 마지막 생일인데 몇 미터를 사이에 두고 얼굴도 못 보고 '생일' 축하를 해야 한다니. 코로나란 녀석이 제대로 시샘을 하는 듯싶다.  


이 글을 쓰고 난 다음날. 안타깝게도 아내도 확진 판정을 받았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결국 두 아이를 두고서 아내와 난 코로나 전과 같이 한 방을 쓰게 됐다. 다르다면 자가격리로 인한 방 안에서의 생활이 전부다. 아내의 확진 덕분에 생일날 얼굴을 볼 수는 있게 됐지만 가족이 고생이다. 스스로 밥을 챙겨 먹어야 하는 아이들과 몸도 아픈데 스스로를 돌봐야 하는 아내와 나까지. 불쑥 찾아든 녀석 때문에 괜찮겠지 했던 마음에도 어느새 파문이 들었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며칠이 더 지나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일상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하루다.


살면서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일을 겪곤 한다. 아쉽고, 안타까운 일을 겪을 때면 번번이 생각한다. 이런 일이 도대체 왜 내게 일어난 거야 하고. 하지만 이렇게 자신 앞에 생기는 많은 일들의 대부분은 원인이 있으니 생긴 일들이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다. 내가 조금 더 신경 쓰고, 조심했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인과응보. 원인과 결과에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이미 발생한 일을 후회하기보다는 스스로를 용서하는 자세나 여유 있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너그러움이 중요하다. 물론 이런 좋지 않을 일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한 교훈을 얻는 것 또한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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